과거 재건축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10평대 소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면 추가분담금을 거의 내지 않고 30평짜리 아파트 입주가 가능했다. 실제로 개포주공4단지(현 개포자이프레지던스)의 경우 전용 50㎡ 소유자가 전용 84㎡(34평형)에 입주하려면 1억원가량의 분담금만 내면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포 외에도 반포·잠실·청담·도곡 등의 저층 재건축 단지들 상황도 비슷했다. 용적률 70∼130% 안팎의 5층 아파트가 250∼280%의 고층 아파트로 변신하면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은 물론, 일부 단지는 일반분양 수입에 따른 환급금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점점심해지는 공사비 갈등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가분담금 문제가 재건축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존 15층 아파트를 대상으로 하는 중층 재건축 시대가 열리면서 예고됐던 상황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제 ‘재건축은 골칫덩이’라는 비아냥도 있다.
하지만 재건축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전 같은 ‘로또’는 기대할 수 없지만 적절한 조건을 갖춘 단지를 고르면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 일정 부분의 시세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우선 용적률이 200%보다 낮으면서 가구당 평균 대지지분이 50㎡(15평) 이상인 중대형 평형 위주의 단지를 찾아야 한다. 도시계획상 종상향을 기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마지막으로 ‘억대’ 분담금을 내면서까지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소유주들로 구성돼 있는지 여부를 봐야 한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18차 337동’ 조합원들은 최근 사업 초기 예상치보다 3~4배 많은 분담금을 통보받고 혼란에 빠졌다. 5년 전 재건축을 처음 추진할 때는 같은 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가구당 분담금이 3억~4억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최근 조합이 시공사가 제시한 공사비를 근거로 분담금을 다시 계산하자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전용면적 111㎡를 보유한 조합원이 면적을 줄여 97㎡ 아파트를 받아도 내야 하는 분담금은 12억1800만원에 달했다. 이에 놀란 조합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결성했다. 사업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없다는 조합과 시공사의 판단에 이 분담금을 받아들이는 관리처분계획을 결국 통과시켰지만 서울 재건축 시장은 이미 술렁이고 있다.
이 아파트는 한강변에 자리 잡은 1개 동 13층 아파트를 2개 동 31층으로 다시 짓는 재건축을 추진했다. 가구 수는 재건축 전과 똑같은 182가구로 이주와 철거까지 모두 마치고 입주만 남겨뒀다. 재건축 분담금은 정비사업에 들어가는 총공사비에서 일반분양 수익을 빼고 조합원들이 나눠 부담해야 하는 돈이다.
문제는 다른 재건축 아파트들도 비슷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서울 강남 재건축 핵심 지역인 압구정3구역도 예상보다 높은 분담금에 술렁이고 있다. 이번에 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용 84㎡를 소유한 조합원이 같은 넓이의 새 아파트를 받기 위해서는 분담금 3억300만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사업성이 꽤 좋은 것으로 알려졌던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나 부산 삼익비치 등도 5억원이 넘는 분담금 폭탄에 시끌시끌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정비사업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하고 있지만 주요 재건축 단지 집값은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수요자들은 어떤 규제 완화로 인한 비용 감소보다 재건축 분담금 부담을 더 크게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잠실 재건축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잠실주공5단지의 전용 82㎡는 2월 26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최고가 29억4600만원 대비 2억7600만원이나 떨어진 금액이다. 상계주공5단지의 전용 31㎡는 3월 4억6000만원에 손바뀜됐다. 이는 2021년 기록한 역대 최고가 8억원에서 43% 급락한 금액이자 지난해 최고가인 5억4500만원과 비교해도 16%가량 빠진 금액이다.
5~6년 전만 해도 일반분양 가격을 높게 받아 조합원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활용해 가구당 재건축 분담금은 많아도 3억~4억원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금리가 높은 데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등 공사비용이 급증하면서 일반분양가를 높게 받아도 조합원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재건축으로 인한 집값 상승을 고려하면 분담금은 감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점을 고려한다 해도 공사비가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주거환경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비사업(재건축, 재개발 등) 연도별 3.3㎡당 평균 공사비는 2018년 455만6000원에서 2023년 687만5000원으로 50.9% 올랐다.
실제로 최근 서울지역 재건축 단지의 공사비는 가장 낮은 수준이 3.3㎡당 800만원대다. 3~4년 전만 해도 3.3㎡당 공사비는 500만∼600만원대였다. 요즘 재건축 조합들이 시공사에 잇달아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청구서를 받으면서 갈등도 심해지는 모습이다.
반포지구의 ‘재건축 최대어’인 반포주공1·2·4주구의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최근 조합에 인건비와 자재비 인상, 설계 변경 등을 이유로 공사비 4조원을 청구했다. 애초 계약한 2조6000억원에서 55%(1조4000억원)나 뛴 것이다.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도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해 4월 3.3㎡당 510만원이던 공사비를 660만원으로 올렸는데, 또다시 889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해 조합과 갈등 상태다.
공사비 갈등은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걸림돌이다. 최근 시공사 선정 입찰을 마감한 송파구 송파동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사업은 조합 측이 3.3㎡당 810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는데도 유찰됐다. 지난해 입찰 설명회 때만 해도 대형 건설사 8곳이 참여해 관심이 집중됐던 곳인데 결과는 달랐다. 신반포27차, 잠실우성4차 등도 건설사들이 낮은 공사비를 이유로 시공사 선정 절차에 참여하지 않자 공사비를 올릴 예정이다.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강남에 고급 브랜드를 붙이려면 공사비가 3.3㎡당 최소 1000만원은 돼야 한다고 조합들에 통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대부분 재건축 조합이 선호하던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초고층 단지로 개발할 경우 조망권 등을 확보해 랜드마크 단지로 자리잡아, 주변 아파트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 대다수 조합이 이를 선호해 왔다.
하지만 공사비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층수가 많을수록 부담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분담금 폭탄’을 걱정해 50층 이상 재건축을 추진했던 조합이 다시 50층 미만 재건축을 선택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서울 개포주공6·7단지는 지난해 서울시의 35층 룰 폐지에 따라 49층 재건축을 타진했지만 기존 안대로 35층 재건축안을 진행하기로 했다. 층수를 높이면 사업 기간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비용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도 최고 층수를 49층으로 높이는 것을 검토했지만 35층 높이로 재건축 추진을 결정했다.
물론 압구정이나 여의도, 이촌동 한강맨션 등은 여전히 50층 이상 재건축을 선호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초고층 재건축·재개발을 바라보는 조합의 시각 차이 때문이다. 초고층 정비 사업에 회의적인 쪽은 사업 속도가 더딜 위험이 있어 오히려 손해가 아니냐는 반응이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하부층이 더 많은 무게를 버텨야해 건축 자재 양과 강도가 높아져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인허가 절차도 층수가 올라갈수록 복잡해져 공사비를 끌어올리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안전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30층 건물과 60층 건물을 비교하면 건축 자재는 고려하지 않더라도 중간에 대피용 층을 만들고 엘리베이터 성능을 높이는 등 추가로 드는 비용이 생각보다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반면 더 높은 층을 선택한 조합은 다른 단지와의 경쟁력을 걱정한다. 초고층을 선택하지 않았다가 자칫 재건축·재개발이 완료된 후 저층 단지라는 평가를 받으면 가격 경쟁력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탓에 재건축 시장은 앞으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업 진행 가치를 철저히 따져보고 접근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하는 것은 기존 용적률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기존 용적률이 높고 규모가 작았던 단지는 재건축 사업성이 좋지 않다. 재건축 업계에서는 평균 용적률은 200%이하, 규모는 1000가구 이상은 돼야 재건축을 진행할 만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신반포18차 337동은 ‘나홀로’ 15층 아파트라 강남 한복판임에도 추가분담금이 많이 나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 요건은 평형 구성이다. 대형 평형이 많아 평균 대지지분(아파트가 가구별로 갖고 있는 땅 면적)이 큰 단지가 재건축이 유리하다. 용적률이 낮아도 소형 평형이 많다면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상계주공5단지는 기존 용적률이 93%지만, 모든 가구가37㎡(11평)로만 구성돼 있어 가구 당 평균 대지지분이 적었다. 기존에 보유한 땅이 적다 보니 전용 84㎡를 받기 위해선 분담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낮은 확률이지만 종상향을 기대할 수 있다면 사업성은 크게 달라진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 재건축 후 오히려 환급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 점이 좋은 사례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 변경안에 따르면 전용면적 84㎡ 복도식인 A~C동에서 새 아파트 동일 평형을 받을 때 9131만~1억4298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 계단식인 D~E동은 전용 110㎡를 받을 때 9997만~1억4242만원을 돌려받는다. 여의도 시범도 지난해 3월 공고된 정비계획에 따르면 전용 84㎡ 소유자가 84㎡를 분양받는다면 2억1500만원의 환급액이 주어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일반분양가를 3.3㎡당 6400만원, 공사비는 850만원을 적용한 결과다. 여의도 금융중심지 조성에 따른 종상향으로 일반분양 가구 수를 늘릴 수 있게 된게 사업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마지막 요건은 주민들의 재건축 추진 의지다. 보통 소유주 연령이 높고 직접 거주하는 경우가 많으면 만만찮은 추가분담금을 감수하고 4~5년 공사 기간 동안 다른 집으로 옮기기가 싫다. 물론 1만 가구 안팎의 헬리오시티나 둔촌주공 재건축과 한창 공사 중인 강남 일대 중층 아파트 재건축을 보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해당 지역 공인중개업소를 통해 재건축 단지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매매 결정 이전에 전·월세 등으로 직접 살면서 느끼는 방법도 있다.
[손동우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