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콘솔게임 시장에 한국 게임사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콘솔게임은 전용 게임기(디바이스)를 TV나 디스플레이 기기에 연결해 즐기는 비디오 게임을 말한다. 콘솔게임은 전 세계 게임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를 넘는 큰 시장이다. 콘솔은 구매력이 가장 큰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높고 성장세가 가파르지만 PC·모바일게임 위주로 시장이 형성된 국내 게임업계 특성상 ‘불모지’로 불려왔다.
그동안 한국 게임업계는 중·장기적 경쟁력 관점에서 ▲특정 장르에 매몰된 게임 지식재산권(IP)과 수익(과금) 모델 ▲모바일 일변도의 플랫폼 ▲한국·중국 등 일부 지역에만 집중된 사업 구조 등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게임사들은 콘솔 등 플랫폼 다변화, 서구권 등 해외 시장 공략,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신사업 개발 등 돌파구 마련에 안간힘을 써왔다. 특히 한국 게임사들이 모바일 일변도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준비해온 것은 서구권 시장 공략과 이를 위한 콘솔게임 출시다.
넥슨 ‘데이브 더 다이버(데이브)’를 비롯해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등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공들여 개발해온 신작 게임들은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줄줄이 콘솔 버전으로 출시된다.
닌텐도 스위치용으로 연내 출시가 유력한 데이브는 콘솔로 나왔을 때 가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게임으로 지목된다. 넥슨은 인기 IP ‘데이브’의 콘솔게임 출시를 위해 일본 게임사 닌텐도와 판매 시점, 출시 가격 등을 협의 중이다. 현재 콘솔 버전 개발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고, 협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연내 출시가 유력하다. 특히 넥슨은 우선 닌텐도 스위치(콘솔)로 데이브를 출시하고 이후 다른 콘솔 기기로의 플랫폼 확장 가능성도 열어두는 것으로 파악된다.
6월 말 PC 버전으로 우선 글로벌 시장에 정식 출시된 데이브는 출시 1일 만에 스팀 내 유가게임 기준 글로벌 판매 1위에 이름을 올렸다. 7월 8일 기준 누적 판매량 100만장(얼리 액세스 판매 포함)을 돌파하며 매출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데이브는 넥슨이 ‘재미의 본질’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신규개발본부 산하에 출범한 조직 ‘민트로켓’에서 20여 명의 개발진이 개발했다. 해산물을 수집하는 액션 어드벤처와 초밥집을 운영하는 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를 혼합한 게임이다. PC 버전이 글로벌 최대 게임 유통 플랫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이용자의 상당수가 콘솔과 유사한 느낌을 갖기 위해 별도의 게임패드를 이용해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팀 최고 동시접속자 수가 9만 8000명에 달하고, 3만 4000여 명이 기록한 평가에서 97%가 ‘긍정적’이라고 답할 만큼 인지도와 게임성을 함께 쌓아올린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게임업계에서는 최근 데이브가 국산 게임의 무덤으로 불리는 북미 지역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만큼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는 ‘K콘솔게임’ 탄생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 회사가 성공하려면 업의 본질인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했다”면서 “잘 만든 게임(IP)이라면 콘솔에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했다.
네오위즈의 최대 기대작 ‘P의 거짓’도 콘솔에서 글로벌 흥행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이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PS)과 엑스박스 등 콘솔 플랫폼을 통해 오는 9월 출시될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인 독일 ‘게임스컴’에서 한국 게임사 최초로 3관왕에 오를 만큼 게임성을 인정받았다. 8월 9일 공개된 P의 거짓 데모판은 사흘 만에 PC·콘솔 플랫폼에서 총 100만 다운로드 수를 돌파하는 등 흥행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핵심 IP로 기대 중인 ‘쓰론 앤 리버티(TL)’도 하반기 PC·콘솔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엔씨는 아마존게임즈와 글로벌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에선 엔씨가 게임 서비스를 하지만 국내 게임사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북미, 유럽 등 서구권은 잔뼈가 굵은 아마존과 손잡고 시장 공략을 노리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엔씨는 TL의 사전 글로벌 테스트에서 콘솔(게임기) 이용자를 포함해 피드백을 받았다. 펄어비스는 초기부터 글로벌을 겨냥한 트리플A급 프로젝트인 ‘붉은사막’을 PC·콘솔 게임으로 개발 중이다. 또 크래프톤은 신작 게임 ‘프로젝트M’을 콘솔 타이틀로 개발 중이다.
국내 게임기업의 대다수는 2010년대 초중반부터 PC온라인에서 모바일게임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겨왔다. 이 시장에서는 중국이 절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는 큰손이다. 반면 북미와 유럽에선 콘솔이 대세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PwC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와 유럽의 콘솔게임 시장 규모는 각각 184억달러, 250억달러로 추산됐다. 양대 시장은 523억달러(약 66조5779억) 규모의 전세계 콘솔 시장 중 82.9%를 차지했다.
콘솔게임 시장은 서구권 매출 확대를 노리는 한국 게임사들이 반드시 공략해야 할 시장이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은 PC·모바일게임 위주로 시장이 형성돼 있지만 이 밖에 해외 시장에서는 콘솔게임 시장 규모가 크고 성장세도 높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전 세계 게임 시장 흐름이 멀티플랫폼이 기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PC게임의 상당 부분은 콘솔 시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또 콘솔게임의 경우 패키지 판매량이 주요 수익 모델로 기존 한국 게임사의 과금체계와 차별화도 가능하다.
주요 게임사들이 상반기 성적표를 받아든 가운데 시장에서 흥행한 IP유무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게임사들 모두 ‘킬러IP’가 절실한 상황이다. 최근 한국 게임업계 상황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한국 게임 전성기를 이끌어온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등 국내 톱3 게임사 ‘3N’ 체제에 균열이 생겨나는 모양새다. 주요 게임사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넥슨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신작 부진과 기존 IP 영향력이 줄어든 여파로 어닝쇼크를 기록했고, 넷마블은 만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넥슨은 2분기 영업이익(이하 연결 기준)이 전년 동기 대비 19.8% 증가한 2640억원(환율 100엔당 956.0원 적용 기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매출은 9028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4% 늘었다. 반면 엔씨소프트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35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1.3% 급감했다. 매출(4402억원)도 1년 전보다 30% 줄어들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오랜 시간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던 ‘리니지 IP’의 제품 수명주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넷마블도 2분기 37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6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N에 이어 메이저 게임사 ‘2K’로 불리는 카카오게임즈와 크래프톤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7.3%, 20.7%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회사가 성공하려면 업의 본질인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며 넥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면서 “다른 게임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지난해부터 신작 개발에 상당한 내부 리소스를 투입해온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모바일게임 분야에서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중국 게임사들은 개발자 인건비가 훨씬 저렴해 게임 개발에 유리했고, 기술적으로 이미 한국 게임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IP 경쟁력 측면에서는 중국이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중국의 대표 게임사인 텐센트, 넷이즈 등은 이미 시가총액은 물론 히트작 숫자와 시장 점유율에서도 글로벌 ‘1티어’ 게임사로 도약했다.
한국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모바일 일변도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탈피하고 기존 영향력이 미미했던 서구권 시장 공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수의 게임사들이 콘솔게임 개발에 집중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게임회사들은 주력 시장인 중국에서 수년간 한국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사이 한국 게임사들은 중국 대신 서구권 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왔다. 실제로 한국 게임사들의 콘솔 진출은 중국 게임 시장이 현지 판호 인가 문제로 정체되면서 속도가 붙기도 했다.
콘솔 등 플랫폼 다변화뿐 아니라 게임 ‘장르 다변화’도 한국 게임사들 앞에 놓인 과제다. 이와 관련 한국 게임사들은 ‘서브컬처’ 장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세계 최대 모바일게임 시장인 동아시아(중국·한국·일본)에서 대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브컬처 게임은 일본 애니메이션풍의 소녀 캐릭터를 내세워 세계관을 만든 게임을 의미한다. 과거엔 특정 마니아층만을 타깃으로 했지만 최근엔 주류로 떠오르는 추세다. 팬덤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케팅에 용이하고 다른 모바일게임에 비해 이용자당평균매출(ARPU)이 높아 대규모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굿즈, 피규어, TV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방식으로 IP 확장이 가능하다.
특히 최근 빗장이 풀린 중국 시장에서는 서브컬처 장르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여전히 비중이 높은 MMORPG 게임은 시장 비중이 3%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은 국내와 달리 장르가 매우 다변화된 시장으로 분석된다. 특히 가장 큰 인기 장르인 수집형 RPG의 60% 이상이 서브컬처 게임에 해당한다. 중국 대표 게임사 호요버스의 서브컬처 게임 ‘원신’은 2020년 9월 출시 이후 7조원이 넘는 글로벌 누적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