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통신비가 진정한 ‘등골브레이커(?)’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가구당 통신비 지출이 소득 구간별로 20만원까지 치솟는 등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가계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1인 가구 포함) 월 평균 통신비 지출액이 2020년 11만9775원에서 2021년 12만3815원으로, 2022년 12만8167원 등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2년 만에 월 지출액이 거의 1만원 가까이 뛰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3분기부터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 지출액은 13만1373원으로 높아진 뒤 4분기에는 13만4917원으로 통계 역대 최고수치를 기록했다. 소득 5분위 기준 통신비는 20만원을 상회 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통신비가 많이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물가 급등으로 어려워진 가계 살림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통신비 부담이 지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이에 칼을 뽑아 들었다. 대통령실에서 지난 2월 15일 통신업계 과점 폐해를 지적하며 경쟁 체제 도입 방안 및 서비스 품질과 요금 개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과기정통부는 알뜰폰 활성화, 중간요 금제 출시 유도, 제4이동통신 등 신규 사업자 진입 방안 등을 준비 중이다. 정부는 오는 6월까지 통신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정부의 알뜰폰 활성화 정책에 힘을 얻은 중소사업자들은 신규 요금제에 각종 판촉을 선보이며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중소 알뜰폰 업체들은 무약정 ‘0원 요금제’ 등을 선보이며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이고 있다.
티플러스, 모빙, 아이즈모바일, 이야기모바일, 이지모바일, 인스모바일, 스마텔 등의 알뜰폰 사업자들은 일정 기간 과금하지 않는 ‘0원 요금’ 프로모션을 시행 중이다. 이통 3사의 자회사로 있는 알뜰폰 사업자들도 신규 요금제를 출시하며 모객에 나서고 있다. 최근 미디어로그, KT엠 모바일 등 주요 알뜰폰 사업자들은 신규 요금제를 출시했다. LG유플러스의 알뜰폰 자회사 미디어로그는 5월 1일 데이터 50~125GB(기가바이트) 구간 5G 중간요금제 3종을 출시했다. 신규 요금제는 ▲50GB+1Mbps(3만9000 원) ▲80GB+1Mbps(4만1000원) ▲125GB+5Mbps(4만 3500원) 3가지다. KT의 알뜰폰 자회사 KT엠모바일은 5월 2일 메가박스 제휴 요금제 3종을 출시했다. 24개월간 매달 메가박스 영화관람권 1매와 2000원 상당 매점 할인 쿠폰 1매가 제공되는 요금제다. 데이터 제공량은 7GB·11GB·110GB 3가지로 각각 월 2만1800원, 3만 8500원, 4만7000원이다. KT엠모바일은 월 최대 데이터 150GB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가격 경쟁이 격화되면서 고물가 시대에 통신비 부담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이 알뜰폰으로 갈아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집계 결과 지난 4월 통신 3사에서 알뜰폰으로 번호를 이동한 가입자는 9 만6795명이다. 알뜰폰에서 통신 3사로 번호를 이동한 가입자 수는 3만1697명에 그쳤다.
지난 4월 전체 번호 이동자 수 중 알뜰폰으로 유입한 이용자의 비중은 56.4%였다. 3사로 유입한 비중은 SK텔레콤(017670) 18.12%, KT 11.82%, LG유플러스 13.65%였다.
3사 중 알뜰폰으로 유출된 가입자가 가장 많은 곳은 SK 텔레콤이다. 지난달 4만625명이 알뜰폰으로 옮겼다. KT는 2만9990명, LG유플러스는 2만6180명이었다.
지난 4월 12일 알뜰폰 사업이 은행의 부수 업무로 지정 돼 금융사들도 별도 허가 및 신고 없이 통신시장에 진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새로운 사업자들을 끌어들여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이동통신 대리점·판매점으로 구성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금융당국이 은행법상 부수 업무로서 리브엠을 ‘사실상 허용’한 데 대해 은행의 알뜰폰 사업 진출에 대한 명확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며 과기정통부와 금융위원회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정부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 ‘리브모바일(리브엠)’을 비롯한 금융권·비통신사의 알뜰폰시장 진출이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사업 초기 단계부터 점유율 규제, 도매대가 이하 판매 금지 등을 적용하면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이용자 후생 제고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국내 이동통신시장을 통신 3사·자회사들이 전체 매출의 약 98%를 차지하는 ‘비경쟁적 상황’으로 규정하면서, 시장에 이동통신 3사 외에도 경쟁력 있는 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존 업종의 견제를 받는 KB의 리브모바일은 가격 경쟁력보다 금융융합 서비스로 점유율을 확대하겠다는 견해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알뜰폰 비교 사이트 ‘알뜰폰 허브’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리브모바일은 월 1만1900원인 LG유플러스망 ‘5G든든2GB 요금제’가 가장 저렴하다.
월 2GB 데이터를 제공하며, 음성통화와 문자가 무제한이다. 국민은행 스타클럽 MVP 4400원 할인을 적용하면 월 기본료는 7500원이다. 최대 할인을 적용해도 5G든든 2GB보다 저렴한 요금제는 16개에 달한다. 다만 이들 요금제는 7개월 또는 12개월이 지나면 9000~1만9800원으로 월 납부액이 오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판매량 순으로 살펴봐도 아직 리브모바일을 앞선 사업자가 상당수다. 일정 기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사업자들 간 ‘파격 요금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KB 측은 “금융융합 서비스로 차별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치킨게임을 통한 공격적인 요금 마케팅보다는 은행 사업자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KB리브모바일의 서비스를 살펴보면 KB모바일인증서를 통해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개통을 할 수 있어 금융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다. 예·적금 등 금융상품과의 패키지 상품, 적금 금리 우대쿠폰 등 자체 멤버십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금융에 관심이 많은 알뜰폰 이용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막강한 소매 영업력을 앞세워 다른 알뜰폰 기업으로의 이탈을 막는다는 전략이다. 은행 고객센터 운영 경험을 살려 알뜰폰 고객센터에 전문 상담을 지원하며, 90여 개 영업점에 매니저를 배치해 어르신들의 금융상품 및 통신 가입을 돕는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리브모바일의 통신 요금 수준은 Mn 자회사와 중소 알뜰폰 사업자의 중간 수준으로, 중소 알뜰폰 사업자와 가격 경쟁을 지양하고 있다”라며 “금융과 통신의 데이터를 통한 혁신적인 상품 출시와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알뜰폰의 5G 요금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알뜰폰은 정부의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정책에 맞춰 꾸준히 성장해 올해 들어 SK텔레콤의 가입자 점유율 40% 선을 무너뜨렸지만, 여전히 경쟁 촉진을 위한 촉매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5G 요
금제로 고수익을 올리는 통신사에 저가 LTE 요금제 가입자의 알뜰폰 이동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
LTE와 달리 알뜰폰의 5G 시장점유율은 0.7%, 가입자는 22만 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알뜰폰을 키워 통신 시장 경쟁을 유도한다는 구상이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알뜰폰의 5G 진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와 알뜰폰 업계는 통신사에 5G 도매대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40~50% 선인 LTE보다 높은 도매가율인 60% 수준의 5G 요금제로는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흐름에 통신 3사는 수익성 악화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 1분기 통신 3사는 5세대(5G) 이동통신 가입자를 크게 늘리며 탄탄한 매출 성장을 달성했지만, SK텔레콤을 제외한 두 회사는 수익성 악화를 면치 못했다. 경영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KT의 영업이익은 역기저효과까지 겹치며 1년 전보다 두 자릿수가 감소했고, LG유플러스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 비용으로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먼저 KT는 1분기 연결 기준 486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분기 6266억원보다 22.4% 줄었다.
KT는 지난해 746억원어치 부동산을 팔며 일회성 이익을 낸 바 있지만 이를 제외해도 올해 영업이익이 11.9% 줄었다. LG유플러스의 1분기 영업이익은 260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0.4% 감소했다. 증권가는 지난해 대비 소폭 성장을 예상했지만 전망치를 밑돌았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따른 소비자 피해보상과 유심 교체, 정보보호 투자 등 일회성 비용이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매출은 가입자 당 평균 매출(ARPU)이 높은 5G 가입자 확대에 힘입어 KT는 2.6% 증가한 6조 4437억원, LG유플러스는 3.9% 증가한 3조5413억원을 기록했다. 전체 가입자 중 5G 비중은 각각 65%, 55%로 모두 1년 새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KT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경영 정상화, LG유플러스는 알뜰폰·신사업 강화로 연간 실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SK텔레콤은 1분기 매출 4조3772억원, 영업이익 4948억원으로 각각 2.2%, 14.4% 성장했다고 밝혔다. 두 자릿수 성장의 비결에는 같은 기간 고객용 휴대전화 회선수가 40만 개 줄었으나 롱텀에볼루션(LTE) 가입자를 객단가(ARPU)가 높은 5G 이동통신으로 전환했고 비용(별도 기준 영업비용)까지 줄인 덕이다. 특히 마케팅 비용은 5G 출시 이후 최저 수준이던 지난해 1분기 1.6% 증가에 그쳤다.
과기정통부는 통신시장의 독점 상황을 깨기 위해 제4이통사 후보를 물색 중이다. 신규 사업자를 대상으로 각종규제를 완화해주고 세제 혜택 등을 파격 지원하면서 5G 28㎓ 주파수도 3년간 독점 제공하기로 하는 등 유인정책도 마련했다. 다만 아직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이 없어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미 MVNO 사업을 진행하고 있거나, 혹은 사업 모델의 유사성, 확장성 관점에서 다양한 후보군이 언급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쿠팡, 네이버, 카카오, 토스, 신세계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아직 관심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기업들의 고민은 투자비용이다. 제4이통사가 들어서면 후보 기업이 수도권에만 기지국을 자체 구축하고 나머지 지역은 기존 통신사 망을 빌려 쓰는 등 정부로부터 특별 지원을 받더라도 초기 구축비만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미국 기업 스타링크도 하반기부터 한국에서 위성통신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정부가 외국 기업에도 제4이동통신 문을 연 가운데 글로벌 회사들도 관심을 보일지 주목된다.
후보 기업으로 꼽히는 쿠팡도 유사한 입장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쿠팡은 최대 주주가 지분 100%를 소유한 Coupang, Inc이며 본사가 미국 시애틀에 있는 외국기업”이라며 “외국인 지분 제한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는 쿠팡의 독자적인 통신 사업 전개가 불가능하다. 정부가 최근 통신시장에서의 외국인 지분 제한 규제 완화 검토를 언급한 것도 쿠팡을 포함한 외국 자본이 가진 법적 한계에 대한고민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는 빠르면 6월 통신 경쟁 촉진 방안을 내놓고 국내외 관심 기업들과 접촉을 이어갈 방침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