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완성차 업체인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리더십이 4월 1일부로 바뀐다. 14년 만의 선장 교체다. 회장인 ‘미스터 프리우스’ 우치야마다 타케시가 퇴임하고, 회사의 부활을 이끌었던 창업자 4세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최고경영자(CEO)는 회장 자리에 오른다. 도요다 아키오 신임 회장은 도요타자동차를 만든 도요다 기이치로 전 회장의 증손자다. 도요타에서 회장은 경영 전면에서 한발 물러난 자리다. 신임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에는 최고 브랜드 책임자(CBO)였던 사토 코지 집행임원이 선임됐다.
도요타는 2020년 5년 만에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 1위에 복귀한 이후 작년까지 3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세계 정상의 자리에서 회사 수장을 바꾸는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지금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기차(EV) 시대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함이다. 도요타를 상징하는 단어였던 ‘하이브리드’와의 점진적 결별을 공식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기차 등장 이전까지 하이브리드는 고연비·친환경의 대명사였다. 특히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전 세계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선도했고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국제사회가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관심을 갖기 전부터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친환경 에너지의 대안이 될 것임을 예감하고 기술 개발에 몰두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중심에 한때 일본은 물론, 미국 하이브리드 자동차 시장에서 80% 넘는 점유율을 자랑했던 도요타 ‘프리우스’가 있다. 1977년 도쿄모터쇼에서 하이브리드 콘셉트카를 처음 선보인 도요타는 1997년 같은 장소에서 양산형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를 공개했다. ‘기존 자동차의 2배로 연비를 늘린다’는 목표로 개발된 프리우스는 출시 15년 만에 판매량 300만 대를 넘기며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와 더불어 도요타를 상징하는 단어로 등극했다. 그런데 바로 이 ‘하이브리드 신화’가 전동화의 길로 나서야 하는 도요타의 발목을 잡았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이끌기 시작한 지난 2009년 당시 도요타는 위기의 정점에 있었다. 도요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창사 이래 첫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와타나베 가쓰아키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도요타 아키오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격시켰다. 당시 도요타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경쟁 과정에서 자동차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렸다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다. 700만 대 수준이었던 연간 생산능력을 3년 만에 1000만 대까지 늘리면서 미국 GM을 누르고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당시 시장에서는 도요타가 집중한 픽업트럭·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아닌 소형차가 인기를 끌었다. 회사 경영전략이 시장 트렌드와 어긋난 것이다.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300만 대 생산과잉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같은 공격 경영 과정에서 ‘고장 나지 않는 차’로 불릴 정도로 품질 면에서 경쟁 차종 대비 우위를 점하고 있던 도요타가 리콜(문제에 대한 제조업체의 무상수리 조치)을 실시하게 됐다. 그것도 2009~2010년 당시 무려 1000만 대나 말이다. 도요타가 미국에서 자동차를 판매한 이후 최대 규모의 리콜이었다. 도요타가 생산한 렉서스 ES 350 세단이 시속 120마일(192㎞)의 속도로 주행하다 충돌사고가 나는 일이 생겼는데, 도요타는 사고 당시 가속페달이 차량 매트에 끼어 브레이크가 듣지 않았다고 보고 대대적인 리콜을 실시했다. 도요타의 위상은 추락했고, 기업은 존폐의 위기를 겪었다.
2011년 2월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도요타 재출발의 날’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날부터 ‘하이브리드 신화’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2011년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은 63만 대 정도였지만 2012년 121만 대, 2013년 150만 대까지 늘면서 전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성공신화는 전동화의 변신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됐다. 실제로 작년 말까지만 해도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자동차 업계 종사자 중 ‘침묵하는 다수’는 전기차를 유일한 선택지로 갖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라며 “이들은 전기차가 일종의 트렌드로 흘러감에 따라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전기차가 정답인지는 불명확하다”라고 말했다. 전동화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하이브리드 차량이 전기차보다 더 우수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발언이었다.
다른 도요타 관계자도 “하이브리드 3대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는 전기차 1대와 동등하다”라며 “현 시점에서는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를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만큼, 신재생에너지 보급 비중이 낮은 지역은 하이브리드 차량 보급이 탄소 중립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요타 하이브리드 차량은 중요 시장에서 전기차에 밀렸다. 이를 상징하는 데이터가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신차 판매 기록이다. 지난해 캘리포니아주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하이브리드(HEV·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캘리포니아주의 2022년 EV 판매량이 전년 대비 62% 증가한 28만5199대를 기록한 반면, 차량용 반도체 부족 등의 영향으로 HEV는 10% 감소한 23만3496대를 찍었다.
차종별 판매 실적을 보면 1위가 전년 대비 44% 증가한 테슬라 모델Y(8만7257대)였고, 2위는 47% 확대된 테슬라 모델3(7만 8934대)였다. 도요타의 라브(RAV)4는 3위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캘리포니아주는 소비자 환경 의식이 높아 지금까지는 연비 성능이 좋은 도요타 차량 판매가 많았고, 특히 프리우스의 인기에 불을 붙인 지역이기도 했다”며 “캘리포니아에서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 차량이 베스트셀링카 자리를 내준 건 2017년 이후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적도 안 좋았다. 지난해 4~12월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 순이익은 18% 감소했다. 2년 만에 이익이 쪼그라든 것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이에 따른 부품 공급 업체의 부담 경감을 지원하다보니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2022년 회계연도 생산 전망도 기존보다 10만 대 줄어든 910대에 그쳤다. 결국 신임 사토 코지 사장은 차세대 배터리 전기차(BEV)를 중심으로 하는 새 사업 전략을 추진키로 했다.
엔지니어 출신 53세로 사상 첫 50대 도요타 수장이 된 그는 “우리가 상속해야 할 것은 지난 13년간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토대를 만들어온 ‘상품과 지역을 축으로 한 경영’”이라면서도 “차세대 EV를 기점으로 ‘EV 퍼스트’라는 발상으로 사업의 방식을 크게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키워드로 전동화·지능화·다양화를 제시했다.
사토 차기 사장은 “도요타가 해야 할 일은 에너지 안보를 고려한 자동차를 만들고, 탄소 중립 사회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 고객에게 옵션을 제공하고 싶다. 이 가운데 BEV가 중요한 선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법으로 BEV 개발을 가속하겠다”라며 “구체적으로 2026년을 목표로 배터리나 플랫폼, 자동차 개발 방식 등 모두 BEV를 최적으로 고려한 ‘차세대 BEV’를 렉서스 브랜드로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2030년 100만 대의 렉서스 EV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35년에는 모든 렉서스 차량을 EV로만 출시한다는 방침이다.
도요타는 또 2025년부터 미국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켄터키주 공장 생산 설비를 개보수해 가솔린차와 함께 EV도 생산한다는 구상이다. 2025년 월간 전기 SUV 생산 목표량이 1만 대이며, 2026년 이후에는 연 20만 대로 생산규모를 키운다는 계획이다. 또 미국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약 20%를 전동화 모델로 채울 예정이다.
그 밖에 2025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차량용 배터리 공장도 건설해 핵심 부품부터 차량 조립까지 EV를 일관 생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인도 등에서도 전기차를 생산, 2026년에는 전 세계에서 연간 100만 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2030년에는 전 세계에서 연간 350만 대의 EV를 판매한다는 목표다.
도요타의 속도감 있는 전동화 계획은 한국 시장에서도 감지된다. 한국토요타자동차는 지난 2월 ‘모두를 위한 전동화’라는 전략을 소개하며 2023년을 변화의 원년으로 렉서스·도요타의 사업 전략과 신차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도요타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 각 지역의 에너지 사정과 다양한 고객 수요를 반영해 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수소연료전지차(FCEV), BEV 등 ‘멀티 패스웨이’로 다양한 전동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보조를 같이하며 한국토요타는 올해부터 HEV, PHEV, BEV 등 총 8종의 전동화 라인업을 순차적으로 도입한다. 렉서스는 BEV SUV 모델 RZ, 두 번째 PHEV 모델인 완전 변경 RX 등 2종의 전동화 모델을 도입한다. 도요타는 RAV4 PHEV 모델을 시작으로 플래그십 HEV 세단 크라운 크로스오버, 대형 럭셔리 HEV 미니밴 알파드, 준대형 HEV SUV 하이랜더, 5세대 모델로 완전 변경된 PHEV 프리우스 그리고 도요타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인 bZ4X 등 6종의 전동화 라인업을 강화한다.
최근 새로 부임한 콘야마 마나부 한국토요타 사장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자 하는 도요타의 멀티 패스웨이 전동화 전략 아래, 한국토요타 역시 다양한 고객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매력적인 전동화 모델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요타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전동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하이브리드 성공신화가 강렬했던 만큼, 전동화에 나서는 타이밍도 늦어버렸다. 전기차 시대에도 도요타의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 품질 제품을 만든다는 뜻의 일본어)’ 정신이 빛을 발할지 주목되는 시기다.
이유섭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소니는 혼다 손잡고 전기차 진출
미쓰비시車, 전동차에 1.4조엔 투자
도요타뿐 아니라 최근 미쓰비시자동차에서도 전기차 등에 대한 움직임이 나왔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쓰비시자동차는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 전동차의 연구개발과 설비에 약 1조4000억엔을 투자하기로 했다. 1조4000억엔 가운데, 연구개발 투자와 설비 투자가 각각 절반가량씩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자동차는 향후 5년간 가솔린차를 포함해 15종가량의 신형차를 내놓을 계획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전기차,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전동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2030년에는 경전기차를 기준으로 연간 75만 대분의 배터리를 조달하는 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미쓰비시자동차의 전 세계 판매량 가운데 전동차의 비율은 현재 10% 전후인데, 2030년에는 이를 50%가량 끌어올린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혼다는 지난해 2030년까지 전기차·소프트웨어에 5조엔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30년에는 전기차를 연간 200만 대 이상 생산한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혼다는 또 2040년 신차를 모두 전기차나 연료전지차(FCV)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다.
소니와 혼다는 전기차 사업을 위해 손을 잡았다. 소니·혼다가 함께 개발하는 전기차는 2025년 주문을 받아 2026년 북미 시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출하될 것으로 보인다. 소니와 혼다는 지난해 3월 전기차 사업 제휴를 발표했고 이후 작년 9월 말 공동 출자를 통해 사업 주체가 될 소니·혼다 모빌리티를 설립했다. 혼다는 차량의 개발과 생산, 애프터서비스 등을 담당하고 소니는 센서와 통신, 엔터테인먼트 기술 등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쓰다도 2030년까지 전기차를 비롯한 전동화 대응과 관련해 1조5000억엔가량을 투자하기로 작년 말 결정했다.
김규식 매일경제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