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아전자(옛 위니아대우) 중국 톈진 공장은 2월 말부터 부분 재가동에 들어가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나 톈진 공장 가동이 멈춘 지 2년 만의 재가동이다. 위니아대우의 경우 톈진 공장은 중국 내 유일한 생산거점으로 아시아 전역을 커버하는 공장이다. 냉장고·세탁기·전자레인지 등 주요 제품들을 생산한다. 위니아는 공장이 정상화되면 직전 감소했던 약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맞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하나둘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위니아전자가 공장을 재가동한 것을 시작으로 합성섬유 기업 효성티앤씨가 최근 생산라인을 증설했고, 한국타이어도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 공장 가동이 원활하게 추진되면 수출 부진과 실적 악화에 신음하고 있는 산업계 전반에도 큰 호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위니아전자는 2월 말 중국 톈진 공장에서 소형 냉장고 라인을, 3월 중에는 전자레인지 라인을 각각 가동한다. 이곳 톈진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아시아 전역으로 수출된다. 중국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로 전자업계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수익성 회복 국면에 접어든 LG전자에 대해 증권가에서도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키움증권은 최근 LG전자에 대한 목표주가를 기존 13만원에서 15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본격적인 세트 수요 회복에 앞서 물류비와 재료비 등 비용 절감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며 “가전의 수익성이 예상보다 대폭 개선되고 TV와 비즈니스솔루션도 흑자전환을 넘어 양호한 수익성을 달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TV 사업이 그동안의 부진에서 벗어나 실적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침체된 TV 패널 수요는 본격적으로 올해 2분기에 회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주요 TV 제조사의 올 2분기 액정표시장치(LCD) TV 패널 수요가 전년 대비 19%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50인치 이상 대형 패널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해 1억6140만 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옴디아의 예상대로라면 TV 패널 시장은 2020년 구매량의 최대 수준으로 돌아오거나, 지난 4년간 평균 구매량보다 3% 높은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옴디아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해 14년 만에 최저치였던 패널 수요가 올해 22% 급증할 가능성을 대비해 구매 물량을 선제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주요 TV 제조사도 패널 구매량을 늘릴 것으로 관측된다.
데보라 양 옴디아 디스플레이 연구 부문 수석 애널리스트는 “올해 1분기에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약하겠지만 중국 TV 제조사들이 구매 물량을 늘릴 것”이라며 “하반기 계절적 수요가 급증하기 전 2분기부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만큼 국내 스마트폰 업계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달라진 분위기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스마트폰 재고와 중국 브랜드 완제품 재고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분기만 해도 스마트폰 세트업체 재고 일수가 10주 이상이었지만, 최근 들어 정상 수준인 6주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중국 스마트폰 소비심리가 되살아나 재고 소진 속도가 빨라졌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최근 신제품 갤럭시 S23을 출시하며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조직과 제품전략, 소프트웨어 등을 중국 소비자에게 더 특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되살아나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을 납품하는 업체들도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으로 샤오미,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기업에 MLCC를 공급하는 삼성전기가 꼽힌다. 삼성전기는 MLCC 매출 50%, 카메라모듈 매출 30%가 각각 중국향으로 추정된다.
최근 업황이 안 좋은 반도체업계도 중국 리오프닝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 메모리 반도체 수출에서 약 50%를 차지하는 만큼 중국 스마트폰과 PC 시장 등이 되살아나면 반도체업계에도 호재다.
중국 리오프닝으로 업황 회복이 기대되는 것은 전자업계뿐이 아니다. 효성티앤씨도 스판덱스를 생산하는 중국 닝샤 공장에 160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말 생산라인 증설을 마쳤다. 중국 소비가 살아나면서 중국 내 범용 스판덱스 제품인 40D(데니아) 가격은 춘제 이후 일주일 만에 약 8% 상승했다. 중국 내 스판덱스 재고 일수는 35일에서 28일로 줄었다. 지난 1월 초 63%였던 가동률은 최근 82%로 뛰어올랐다. 한 달 새 무려 20%포인트가량 급증한 것이다.
한국타이어도 현지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중국 내 성(省)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자동차 교통량이 늘어날 것”이라며 “타이어 수요가 증가하는 대로 중국 현지 공장 가동률을 높일 계획”이라고 했다. 이처럼 한국의 중국 현지 공장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면서 실물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와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중국 리오프닝이 본격화하면 글로벌 경기를 진작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업계도 벌써부터 가격이 들썩이는 등 중국 리오프닝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가 잡히고 있다. 철강 가격은 지난해 12월부터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글로벌 열연 기준으로는 한 달 사이에 중국(3.8%), 미국(9.8%), 유럽(7.8%) 등에서 가격이 올랐다.
국내에서도 같은 기간 열연 강판과 후판의 t당 가격이 10만원가량 뛰면서 최근 100만원을 넘어섰다. 이달에는 포스코·현대제철을 중심으로 열연 강판 가격이 t당 3만~5만원 오를 예정이다. 지난해 최악의 실적으로 고전했던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무엇보다 중국 리오프닝에 가장 목마른 상황이다.
중국은 국내 석유화학 제품 수출 가운데 40%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이다 보니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중국 봉쇄로 인한 타격이 컸다. 현재 국내 업체들이 직접 체감하는 부분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이르면 2분기께 리오프닝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ICIS는 최근 중국 내 석유화학 제품 성장률을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특히 내구 소비재, 건설, 자동차에 사용되는 폴리올레핀 수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올해 연간 폴리에틸렌(PE) 성장률은 당초 4.5%로 예상됐으나 5.9%로 상향 조정됐다. 폴리프로필렌(PP) 예상 성장률은 6.0%에서 7.5%로, 폴리에스터(PET) 섬유 성장률도 당초 6.9%에서 8.4%로 높아졌다.
정유 산업 역시 중국 리오프닝으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리오프닝으로 경제 상황이 개선돼 중국과 전 세계 석유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OPEC은 지난해 9955만b/d(하루당 배럴)였던 글로벌 석유 수요가 올해 1억177만b/d로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다. 중국의 원유 수요 역시 1527만b/d로 예상돼 전년 대비 51만b/d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올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8%로 전망되는 등 전 세계와 비교했을 때 높은 편”이라며 “1분기는 춘제, 2분기는 제조 건설업 활동 증가로 석유 수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업계는 물동량 상승에 따른 수주량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 조선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려 하더라도 수요를 따라잡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내에서만 소화하기 어려운 물량이나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은 한국에서 수주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수주량은 중국 업체에 몰릴 수 있지만 한국 조선업체가 수익성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리오프닝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중국이 벌크선을 많이 가져갈 것”이라며 “중국이 벌크선 위주로 도크를 채우면 수주 경쟁은 오히려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리오프닝에 따라 한국 조선사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늘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기관들도 최근 중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을 종전 4.4%에서 5.2%로 상향 조정했다. 중국 리오프닝의 막이 본격적으로 오르면서 국내 기업들도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과거 중국의 주요 수출 품목이었던 스마트폰·철강·석유화학·정유 등을 중심으로 한 수혜를 예상하는 가운데 일부 산업에서는 이미 소비 진작의 ‘청신호’가 들어오면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수출 부진 여파로 올해 1%대 저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리오프닝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산업계 전반에 큰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중국의 회복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안정화하면서 수출에도 활로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 최대의 시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는 5000억달러(약 631조원)의 추가 수요 발생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 경제에 대략 나이지리아의 국내총생산 규모 하나가 더 추가되는 효과다.
오찬종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