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한화, SK, 풍산, GS리테일, KT&G… 글로벌 연기금, 국내 기업 15곳 블랙리스트에
박지훈 기자
입력 : 2021.03.25 16:11:18
수정 : 2021.03.25 16:17:14
‘ESG 없이는 투자도 없다.’
최근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으로 구성된 ESG평가항목에서 밀린 기업들은 생존의 필수요소인 자금유치의 어려움에 처할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ESG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떠 오른 이유다.
미국은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뱅가드(Vanguard) 등 자산운용사들이 ETF 상품을 출시함에 따라 ESG가 빠르게 보편화되었으며, 블랙록을 중심으로 자산운용사들의 ESG 요구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ESG 투자의 선구자로 꼽히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1월 주주서한을 통해 친환경 투자 방침을 강조한 바 있다. 요지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인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넷제로(Net Zero, 탄소중립)’ 달성 운동에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블랙록의 펀드 투자군에서 이러한 목표달성에 실패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블랙록은 지난해 미국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ExxonMobil)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것과 이사회의 독립성 결여를 사유로 경영진 선임에 반대투표를 행사했다. 또한 일부 회사들의 투자배제와 석탄 및 환경오염 기업들을 포트폴리오에서 제외시키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에 ESG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
블랙록과 함께 세계 양대 자산운용사로 꼽히는 뱅가드 역시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펀드 인력 확충에 한창이다. 이전까지 블랙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뱅가드의 가세로 ESG 투자에 대한 운용업계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뱅가드와 블랙록이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글로벌 석탄기업들에 대한 투자액이 가장 많은 양대 기관투자가로 꼽힌다. 지난달 대형 기관투자가들의 석탄업계 투자 현황을 분석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1위 뱅가드는 가장 많은 860억달러, 블랙록은 그 다음인 840억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투자액 가운데 두 업체의 비중이 17%로 가장 높았다. 이러한 대형 투자회사들이 ESG평가항목을 통해 석탄 출구정책을 실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의 투자유치를 위한 치킨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기, 환경오염, 담배생산, 아동착취 등
ESG 반하는 사업 관련 기업들 줄줄이 리스트에
유럽의 주요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을 중심으로 책임투자가 보편화됨에 따라 ESG 투자원칙이 수립되어 내재화하는 추세이다. 연기금들은 앞서 스튜어드십 코드와 함께 주주권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기업이 ESG 경영을 지향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ESG 투자전략 중 대표적으로 ESG에 반하는 기업을 제외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Negative Screening)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곳도 다수다. 대상이 되는 기업은 주로 무기, 환경오염, 아동착취, 담배생산, 투자금지된 국가에 무기판매 등과 관련 있는 기업들이다. 이와 반대로 우수한 ESG 성과를 보이는 기업 혹은 프로젝트를 선별해 투자하는 포지티브 스크리닝(Positive Screening) 전략도 병행하여 사용된다. 주로 연기금의 경우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 국부펀드인 GPFG는 2017년 환경오염과 관련이 있는 매출액이나 전력생산량의 30% 이상을 석탄에서 얻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완전히 배제하여 약 122개 기업의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 기업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연기금들의 투자회피 기업리스트에 국내 기업들이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지난 1월에 발표한 보고서 ‘해외 주요 연기금 및 자산운용사의 책임투자와 투자제한 동향으로부터의 시사점’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을 포함해 군수업체, 담배생산 기업 등이 주요 글로벌 연기금의 투자배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업은 한화, 포스코, 포스코인터내셔널, SK이노베이션, SK홀딩스 등 대기업들을 비롯해 KT&G, BGF 리테일, GS 리테일 등 담배제조 및 유통사 외 풍산, 풍산홀딩스, S&T 다이나믹스, S&T 홀딩스, LIG, LIG 넥스원, 경동인베스트 등 군수기업과 석탄채굴 기업을 포함한 중견기업들 15곳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투자배제 사유로는 ‘집속탄, 대인지뢰, 노동권 침해, 인권 침해, 석탄 채굴, 담배 유통 및 생산’ 등이 적용됐다.
국내 대표적인 연기금인 국민연금 역시 이러한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은 오는 2022년까지 ESG 50% 투자 확대(400조원 이상)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석탄 발전이나 집속탄 등 무기 제조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투자하지 않는 해외 연기금처럼 적극적인 ESG 투자를 펼치겠다는 의미다. 포스코 등 산업재해 발생 기업이 주주대화 등 중점관리 대상 기업으로 지정하는 제도 기준도 마련했다. 국민연금은 또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개정됨에 따라 법 취지에 맞게 산업재해가 빈번한 기업이 중점관리 대상이 되도록 관련 기준을 개편하기로 했다. 기존에도 산업재해가 빈번한 기업은 중점관리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조금 더 강화한다는 방안이다.
국민연금 한 관계자는 “대규모 산재나 심각한 환경훼손 등 ESG 관련하여 예상하지 못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사안 에 대해 국민연금기금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비공개대화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1~3년간 대화를 실시한다”며 “그 결과 개선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관련 기준에 따라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검토 및 기금운용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통하여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