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종영한 tvN의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하숙>은 말 그대로 스페인 하숙집에서 밥 짓고 청소하는 이야기다. 출연자인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 배정남이 스페인과 프랑스를 잇는 산티아고 순례길 작은 마을에서 순례자들을 맞는다. 동트기 전 일어나 밥을 안치고 5,6첩 반상을 차려 한식을 대접하는 이 프로그램의 숨은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김치찌개와 라면, 돼지불고기를 소담하게 품는 그릇이다. 라면을 담는 면기, 과일과 아이스크림을 얹은 디저트 그릇 등이 방송 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이 프로그램에서 사용한 모든 그릇은 CJ ENM 오쇼핑 부문에서 제작한 ‘오덴세’다. 지난 3월 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4월 말까지 매출은 방송 전 같은 기간보다 78% 상승했다. 리빙 편집숍, 백화점 단독 매장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매출 증가율은 92%로, 온라인 매출 증가율(33%)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스페인하숙>에 등장한 오덴세 ‘얀테 아츠’와 ‘레고트’라인 중 ‘레고트’는 전국 40여 개 매장에서도 재고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CJ ENM 오쇼핑 부문 오덴세, 북유럽 스타일·간결한 디자인 힘입어 경쟁사 채널· 백화점까지 섭렵
오덴세는 CJ ENM 오쇼핑 부문에서 홈쇼핑 자체 브랜드(PB)로 개발한 제품이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일반 PB가 자체 유통 채널을 통해서만 주로 유통되는 반면, 오덴세는 CJ 오쇼핑뿐 아니라 경쟁사인 GS샵이나 롯데홈쇼핑에서도 판매한다. 오프라인 판로도 다양하다. 지난해 한샘에 입점한 테이블웨어 브랜드 중 매출 1위에 올랐고, 백화점 매장도 냈다. 3월 방송 시점에 맞춰 롯데백화점 잠실점에는 ‘오덴세 다이네트’ 매장을 열었다. 이 매장에서 20여 일 동안 오덴세 매출만 1억원이 나왔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도 스페인하숙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지난달 말에는 롯데백화점 노원점에 ‘오덴세 다이네트’ 2호점을 오픈했다. 해외 진출도 시도한다. 지난달 16일에는 대만 1위 홈쇼핑 사업자인 동삼홈쇼핑에 아틀리에 노드 6인조 세트 500개를 수출했다.
오덴세가 처음부터 인기를 끌지는 않았다. CJ오쇼핑은 2010년부터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브랜드 개발에 나섰고, 오덴세는 그 일환으로 2013년 만들어진 테이블웨어 브랜드였다. 초기의 오덴세도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했다. 하지만 매일 쓰는 그릇으로는 무겁고, 색이 강했다. CJ측은 “당시 테이블웨어 시장은 포트메리온과 덴비, 로얄코펜하겐, 노리다케 등 해외 브랜드가 점령하다시피 했다”며 “국내 식문화에 맞는 제품 구성을 갖춘 가볍고 튼튼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강조하며 리브랜딩했다”고 말했다.
CJ 오쇼핑은 스타벅스와 자주에서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이너를 초빙했다. 가볍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티타늄을 넣은 소지(흙)를 사용했다. 간결함을 강조하는 북유럽 스타일이면서도, 여러 그릇을 다양하게 내놓고 쓰는 한국 식문화에 적합한 제품이 필요했다.
리브랜딩 이후 오덴세는 ‘예쁘고 쓰기 좋다’는 평을 받으며 입소문을 탔다. 이후에는 상품(그릇)보다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 전략을 썼다. 고객 대상 플레이팅 클래스를 열고, 2017년 음식을 맛있게 담는 전문 서적 <그대로 따라하는 플레이팅 레시피>를 발간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오덴세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스토리를 담은 잡지 <댄스>를 1년에 2회, 1만부씩 찍어냈다.
오덴세는 홈쇼핑 PB의 틀에서 벗어나면서 새로운 옷을 입었다. 수채화 색감을 지닌 ‘얀테’(2017년 10월), 핸드 크래프트 카빙과 무광 유약을 써 담백함을 살린 ‘아틀리에 노드’(2018년 3월), 쌓기 쉬운 모듈형 제품 ‘레고트’(2018년 9월)등을 잇달아 론칭했다. 2만2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계정에 오덴세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사진을 게재해 공감대를 높였다. <윤식당> <미스터 션샤인> <스페인하숙> 등 식기를 맥락에 맞게 노출되는 TV프로그램과 협업하면서 매출에 폭발력이 더해졌다. 오덴세 가격은 다른 국내 테이블웨어보다 싸지 않다. 아틀리에 프리미엄 6인조 세트(39개)가 26만9000원, 얀테 아츠 프리미엄 6인조(35개)가 36만9000원이다. 타원 접시나 대형 사각 접시는 개당 5만원 이상에 구입해야 한다. 가격이 아닌 디자인과 브랜딩으로 승부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CJ ENM 오쇼핑 부문은 올해 오덴세로만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쿡웨어와 소형 주방가전 등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해 글로벌 리빙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다.
CJ ENM 오쇼핑 부문 오덴세 다이네트 (롯데백화점 잠실점 10층)
▶이마트 쇼앤텔, 이탈리아 현지 생산 제품 등으로 2060 男 공략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편집숍이 해외 유명 모델을 섭외하고, 자체 제품을 해외 현지서 제작하는 사례도 나온다. 이마트 쇼앤텔(Show&Tell)은 20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를 겨냥한다. ‘남성 패피(패션피플, 패션에 신경쓰는 사람)들의 선물가게’ 콘셉트로, 이탈리아 소싱 브랜드와 자체 브랜드 의류, 국내 신진 디자이너 등 60여 개 브랜드를 모았다. 평일과 주말에 모두 입을 수 있는 과하지 않은 패션을 선보인다는 매장이다.
쇼앤텔은 매년 1,6월에 열리는 세계 최대 남성패션 박람회인 ‘피티워모’와 밀라노의 브랜드 쇼룸들을 직접 다니며 발굴한 가성비 위주의 해외 브랜드를 구매한다. ‘Tee Library(티 라이브러리)’ ‘DBSW’ ‘Art of Scribble(아트 오브 스크리블)’ 등 티셔츠 브랜드와 가죽 브랜드 ‘마벨로’ 우산 브랜드 ‘키 웨스트’ 등 국내 브랜드도 다양하게 들여왔다. 이 편집숍에서는 자체 상품 비중에 주목해야 한다. 봄 시즌 470여 개 상품 중 티셔츠, 데님 재킷, 블레이저 등 자체 상품은 30%에 달하는 140여 개다. 매출 기준으로는 50%에 육박한다. 편집숍이 단순히 큐레이션에 그치지 않고 자체 상품을 제작한 것이 성과를 낸다는 의미다.
odense-레고트
쇼앤텔 PB는 이탈리아 공장에서 제작한다. 본사에서 디자인 오더를 내리고, 이탈리아에서 샘플 생산을 한 후 수차례 핏 수정을 거친다.
이마트 측은 “자체 상품을 제작하면 시장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감성의 편집숍을 지향하지만, 한국인의 체형이 유럽인과 다른 점을 감안해 한국 남성 체형에 최적화한 디자인도 가능하다. 통이 넓은 바지, 가슴둘레가 여유 있는 셔츠가 제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원단, 유럽의 감성은 유지하되 세부 디자인은 한국인에게 맞게 변형했다는 평가다. 모델에도 공을 들였다. 올해 봄·여름 시즌 카탈로그 모델로는 이탈리아 모델 지롤라모 판체타와 변준서를 선정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를 아우르는 쇼앤텔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양극단의 인물을 골랐다는 설명이다.
지롤라모 판체타는 이탈리아인으로, 일본에서 남성 패션잡지 <레옹>의 간판 모델로 16년 이상 활동한 인물이다. 레옹 표지 모델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변준서는 캐나다에서 국내로 역진출한 패션모델로, 독일 명품 브랜드 MCM의 모델로 활동한다.
조윤희 쇼앤텔 팀장은 “쇼앤텔은 유러피안 감성에 한국인 핏을 결합한 자체 브랜드 상품과 가성비가 뛰어난 패외 브랜드를 함께 선보인다”며 “‘꾸안꾸족(꾸민 듯 안꾸민 듯한 패션을 선호하는 사람)’의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tvN <스페인하숙>에 나온 오덴세
▶현대홈쇼핑 알레보·오로타
산업디자이너가 만든 간결한 선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생활가전 자체 브랜드 ‘오로타 2018’을 새롭게 내놨다. 현대홈쇼핑이 업계 최초로 선보인 생활 가전 PB인데, 여기서도 세련된 디자인이 화제가 됐다. 현대홈쇼핑은 ‘디자인’을 제품 개발 최우선 순위에 두고, 최적의 디자인을 만들 디자이너를 선정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게임기 ‘엑스박스’와 삼성·LG휴대폰 등 다수의 상품 디자인으로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차례 수상한 유영규 디자이너가 제품 디자인과 개발에서 협업했다. 현대홈쇼핑 측은 “유영규 디자이너는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에서 대통령 산업포장을 받을 정도로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라며 “유통업계와의 협업은 현대홈쇼핑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오로타 2018은 원과 직선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기존 오로타 제품보다 간결하고 날씬해졌다. 직사각형 모양의 크로스팬이었던 전면부를 원형 서큘레이터팬 2개로 나눴다. 열을 배출하는 통로는 위에서 아래로 배치했고, 기존 오픈형 물탱크는 매립형으로 바꿔 소음도 줄었다.
같은 해 론칭한 생활용품 PB ‘알레보’도 고객 의견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호응을 얻었다. 첫 상품인 ‘알레보 IH스타일팟(냄비세트)’은 IH인덕션 판을 제품 하단에 부착해 가스·인덕션·하이라이트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사이즈가 다른 두 냄비에 쓸 수 있는 ‘투인원’ 덮개를 함께 개발했다. 제품별로 냄비 덮개가 따로라, 보관할 때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는 고객 의견을 반영했다.
식탁 등에 둘 때 냄비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컬러도 차별화했다. 제품 몸체에는 네이비 컬러, 손잡이에는 로즈골드 컬러를 각각 적용했다. 회사 관계자는 “스타일팟 출시 이후 방송마다 매진을 기록해 초도 물량 약 2만 개가 조기 판매됐다”며 “냄비를 비롯해 다른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개발해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쇼핑 샤벳 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자주
초저소음 ‘예쁜 선풍기’ 여름 가전 대표제품으로 출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는 최근 여름가전 ‘프리미엄 선풍기 시리즈’를 출시했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서큘레이터 선풍기와 조용한 바람 선풍기를 각각 업그레이드했다. ‘리버스윈드 서큘레이터 선풍기’는 회오리 바람을 통해 공기를 순환시켜 에어컨 냉기를 구석까지 전달하는 서큘레이터 기능을 추가했다. 상하 90도, 좌우 120도까지 각도 조절이 가능하다. 5엽 날개 대신 7엽 날개를 달아 바람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는 설명이다. 제품 하단에 자석으로 탈부착하는 리모컨이 있어 편리하다. 일반 모터 대비 소음이 적고, 최대 60%의 에너지 절감효과가 나는 DC모터를 탑재했다.
지난해 처음 판매한 후 첫 달 판매율 85%를 넘었던 히트상품 ‘조용한 바람 리모컨 선풍기’는 13데시벨(dB)의 초저소음이 특징이다. 올해는 저소음 7엽 날개가 적용돼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고, 주변 온도에 따라 풍량이 조정되는 온도측정센서가 들어갔다.
▶롯데백화점, 냉감 소재로 만든 여름 청바지 ‘에토르 샤벳라인’
이 제품들은 ‘PB는 가성비가 좋지만 디자인은 투박하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유사한 성능에 유통과정을 줄여 가격 거품을 뺀 것이 PB 1세대였다면, PB 2세대는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며 ‘PB도 멋지다’는 인식을 심으려고 한다. 최종 목표는 다른 일반 브랜드와 경쟁하기에도 손색없는 품질과 디자인을 갖춘 브랜드다. PB 기획 시에는 대부분 유통채널이 갖고 있는 기존의 고객 판매 데이터와 설문 조사 결과 등을 기반으로 기존 제품 시장의 ‘빈틈’을 공략한다. 롯데백화점의 청바지 전문 PB ‘에토르’는 지난달 초부터 여름용 청바지 ‘샤벳’라인을 판매했다. 청바지는 여름에 입기 답답하다는 고객 불만, 여름에도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청바지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 수요를 접수해 ‘시원한 청바지’로 개발했다.
대표상품인 ‘샤벳 진’은 쿨맥스와 마이크로 쿨 소재로 만들었다. 면과 스판을 섞어 몸에 감기지 않는다. 함께 출시한 티셔츠에는 찰랑거리는 고밀도 쿨링 원사를 썼고, 뒷면 기장을 길게 트는 디테일을 넣어 밋밋함을 덜었다. 여름옷은 자주 세탁해 쉽게 늘어나는 점을 감안해 넥라인에 이중 원단을 덧댔다.
김재열 롯데백화점 PB운영팀 팀장은 “추후 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가을겨울 시즌 상품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평창 올림픽 시즌에 맞춰 선보였던 PB ‘평창 롱패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PB운영팀을 신설했다. 선글라스 ‘뷰’와 청바지 ‘에토르’ 외에도 PB상품을 추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