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the goal, stupid!’
“전반전인데 5대 0이 말이 돼?” 2014 브라질월드컵의 독일과 브라질의 4강전이 벌어지고 있던 이른 아침에 피트니스클럽의 탈의장에서 복도를 지나가던 이들끼리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경기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체련장으로 들어가서 곳곳의 TV화면을 확인하고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러닝머신에 올라가 TV를 켜고 전반전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독일의 다섯 골을 모두 방영하기도 바빠 보일 정도였다. 이어진 양 팀의 경기내용을 담은 통계에서 더욱 믿기지 않는 숫자가 떴다. 전반전 공 점유율은 놀랍게도 브라질이 55%로 앞서 있었다. 그런데도 브라질의 유효슈팅은 전반전 내내 하나도 없었다. 피파(FIFA) 홈페이지의 경기 전체 통계에서도 브라질의 공 점유율은 52%로 독일(48%)을 앞섰으나 결과는 1950년 ‘마라카냥의 비극’을 묻어버리는 ‘미네이랑의 참극’을 낳았다.
이번 대회에서 세계축구계의 지각 변동의 신호탄 역할을 한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경기에서도 5:1 참패를 당한 스페인이 공 점유율에서는 58%로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짧고 간결한 패스를 통한 높은 공 점유율로 공간을 파고들어 골을 만드는 스페인 특유의 소위 ‘티키타카’ 축구의 종말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아, 다시 패스! 슛은 언제 하나요?”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도 슛을 차지 않고 계속 공을 돌리는 스페인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어느 방송국 축구해설자가 탄식했다. 스페인 선수들도 나름 더 가능성이 높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패스를 시도했을 것이다. 이전에 통하던 그 패스들이 효과가 없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째, 상대방의 수비가 아주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꼭 필요한 공간은 철통같이 막고, 위험하지 않은 공간은 내주었다. 공간축구라는 개념은 꽤 오래 전부터 나왔다고 한다. 압박축구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용어이다. 그런데 불필요한 압박은 절제하고 꼭 막아야 할 곳만 틀어막는 식의 수비를 했다. 스페인 선수들은 이전처럼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격예비선까지 왔지만 거기서 막히니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공을 돌리며 틈을 보기 위한 패스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 더 심각한 경우로 스페인 선수들 사이에 아기자기하게 패스를 주고받는 티키타카 자체는 수단인데,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목적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패스는 골(Goal)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중간 수단을 정교하게 만들어나가는 데 너무 힘을 쏟아버리면서 목표가 멀어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나오기도 하고, 그런 순간을 노리며 연습했던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며 치욕을 당했다. 공 점유율에서 상대를 압도했다는 허울뿐인 훈장만이 남았다.
축구팀 간의 승부에서만이 아니라 마케팅의 경연장으로서의 월드컵에서도 그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아디다스와 나이키 간 숙명의 대결이 올해 브라질월드컵에서도 펼쳐졌다. 아디다스의 완승이라는 평가다. 결승에 오른 두 팀 모두 아디다스가 후원했다. 양사에서 각각 후원하는 선수들 간의 대결에서도 팀 간의 성적처럼 아디다스가 월등했다.
구글 엔지니어들이 ‘IO 2014’ 개발자회의에서 월드컵 16강전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득점 순위 1~3위를 아디다스 후원 선수들이 차지했다. 트위터 멘션에서도 아디다스가 앞섰다. 심지어는 다시금 핵이빨을 선보인 우루과이의 수아레스까지도 그의 이빨이 뚜렷이 부각된 아디다스 옥외광고판이 화제가 되면서 사진촬영의 성지로 부각되어 노이즈마케팅까지 아디다스가 앞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월드컵 경기장의 펜스 광고판에는 공식 스폰서들의 기업 로고나 간단한 슬로건이 순차적으로 돌아간다. 골이 나올 때 마침 펜스 광고판에 나온 기업들의 로고는 그 장면이 수없이 뉴스나 온라인에도 노출이 돼 부가적인 효과를 누린다. 그러다보니 그에 대한 순위가 매겨지고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칫하면 그런 노출의 양을 기업 스스로 자랑을 하는 경우가 있다. 효과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금액으로 환산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아디다스가 자신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노출이나 트위터등 온라인 멘션에서 나이키를 압도하여 금액으로 따져서 투자비용 대비 수십 배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도자료를 돌렸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당장에는 아디다스 관계자들이 일을 잘한 것으로 치하를 받겠지만 장기적으로 다음 월드컵 등 축구 대형 이벤트를 할 때 아디다스의 후원비용이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런 노출 효과가 판매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어떤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왔는지 근본적인 목표를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제는 목표, 즉 ‘Goal’이다.
빛바랜 구글의 빅데이터 승부 예측
브라질월드컵 16강전이 끝난 후 구글이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8경기의 결과를 모두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구글은 16강전 경기가 시작되기 이틀 전(미국 서부 현지 시간 6월 26일)의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의 미래 예측(Predicting the future with the Google Cloud Platform)’이란 세션을 진행하며, 시의성과 재미를 곁들여 승부를 예측했다. 새삼 그 예측들이 모두 적중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세션에서 결승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붙어서 브라질이 이길 확률이 55%라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이 정도면 너무 백중이라 예측 불가(Too close to call)’로 분류해야 한다고 했고, 마치 네이마르의 부상을 예견한 듯이 선수의 부상과 같은 예상치 못할 변수들이 있어서 확신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캐주얼한 분위기처럼 재미 이상은 아니었다.
어려운 기술용어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고 딱딱한 공식들로 채워진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에서 주의를 환기하는 빅데이터 사용의 작은 예로서 붙인 것이었을 따름이었다. 질의응답 빼고 30분가량 진행된 전체 프레젠테이션 시간에서 축구 얘기는 3분 정도에 그쳤다.
실제 경기가 종료된 이후의 관심과 그들 예측의 정확도에 고무되었는지 구글 클라우드팀은 이후에도 계속 경기가 열리기 전에 예측을 발표했다. ‘16강전 8경기, 8강전 4경기, 4강전 2경기 등 모두 14경기 중 13경기를 맞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굳이 그들이 그렇게 발표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차라리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마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음성인식 비서인 ‘코타나(Cortana)’가 100%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다는 기사 때문에 나온 발표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렇게 계속 대응하다 보면 경기 결과 예측은 앞으로 구글 클라우드팀에 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구글 개발자 세션에서의 가벼운 예측에서 멈춰도 족했다. 사실 그 이후는 과한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다.
이어서 한 3·4위전의 예측이 어긋났다. 이미 16강전 직후의 놀라움은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결승전의 독일 우승을 맞혔다고 자위할 것인가? 세상에 독일의 우승을 바랐던 이는 독일인과, 아르헨티나와 앙숙인 브라질인, 그리고 구글 클라우드 팀밖에 없었던 것 같다. 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이벤트의 주인공은 기업들이 아니다. 기업이 마케팅의 목표로 삼은 이들도 기업의 고객이기 전 스포츠팬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스포츠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구글 클라우드팀의 업무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자칫하면 구글 클라우드팀은 나아가 구글의 클라우드는 스포츠 승부를 예측할 때나 쓰이는 도구로 인식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예측이 어긋난, 조롱의 대상으로나 쓰이고 기억될 것이다.
핵이빨을 선보인 우루과이의 수아레스의 이빨이 뚜렷이 부각된 아디다스 옥외광고판.
목표 설정의 딜레마
지난 6월 4일의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이런 기사가 나왔다.
3일 <KKK>, <NN신문> 등에 따르면, 페이스북 단체 계정을 대상으로 ‘좋아요’ 클릭 국가를 분석해주는 ‘팬페이지 카르마’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 ◯◯◯당 AAA, BBB, CCC 후보의 ‘좋아요’ 클릭은 대부분 터키에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A 후보는 1만3917명의 ‘좋아요’ 클릭 중 92.3%인 1만3002개가 터키에서 클릭됐고 국내 클릭 건수는 942개에 불과했다.(3일 오전 8시 현재) B 후보는 7847개 ‘좋아요’ 클릭 중 6327개(79.7%)가, C 후보는 9556명 중 7658건의 클릭이 터키에서 이뤄져 80%에 달했다. 이에 대해 해당 단체장 후보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조작 의혹을 부인했다.
해당 단체장들의 ‘모르는 일’이란 해명이 진짜일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후보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포스팅도 직접 하지 않았을 터이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몸이 몇 개라도 바쁠 후보자들에게 페이스북까지 신경 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SNS 채널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터키인들의 집단적인 ‘좋아요’는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 터키인들만을 대상으로 해 터키어로 포스팅을 하거나 캠페인을 벌인 것도 아니다. 페이스북 마케팅이란 걸 담당한 업체가 ‘좋아요’ 클릭을 몇 명 이상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을 것이다.
어느 누가 “터키인들을 동원하여 후보자님의 페이스북에 ‘좋아요’가 다른 후보자들을 압도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하겠는가?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행위는 우리 지자체선거를 떠나 세계 곳곳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에서도 그런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혼다자동차의 미국법인(American Honda)이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을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지난 6월 11일부터 ‘Honda Stage’란 채널을 통하여 매년 북미 전역의 200여 개의 라이브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stage’란 단어는 중의적으로 쓰였다. 라이브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와 팬들이 디지털로 즐길 수 있는 특정한 ‘매체’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기존에 혼다는 ‘Civic Tour’라는 대표적인 제품 브랜드를 딴 공연을 주최했고,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후원해 왔다. 그 콘서트들의 공연 실황에 음악TV나 공연 중심의 라디오 등과 협력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Honda Stage’는 유튜브에 개설되고, 웹사이트나 SNS채널을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다.
혼다가 이런 결정을 내린 까닭이 있다. 가뜩이나 경쟁자 대비 높았던 혼다 구매자들의 평균 연령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젊은 층들이 혼다 브랜드에 대해서 멀어지고 있으니 그들의 관심을 유도할 만한 마케팅 활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목표 고객의 연령대를 떠나서 시의적절한 시도다. 오히려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선구적인 미디어학자인 마샬 맥루한이 일찍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란 말을 했는데, 근래는 이것을 약간 비틀어 “모든 기업은 미디어기업이다”라는 말을 한다. 혼다가 위에 제시한 유튜브를 비롯한 미디어를 기업들이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그를 위하여 매체에 적합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든다. 항시 활용되는 메시지 채널이 있고, 콘텐츠를 만들어 전달하니 미디어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활동의 목표는 기업에 따라 신제품을 알리는 데, 기업 이미지 제고에, 특정한 소비자 집단에 접근하기 위해 등등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혼다는 젊은 고객층을 확보하는 게 첫째 목표다.
이어서 미디어 기업으로서 자체적인 콘텐츠를 확보하고, 디지털 마케팅 플랫폼을 공고히 하며 경쟁자 대비 우위를 점한다는 목표가 따라간다. 그런데 여러 가지 상투적인 목표 수치들이 나왔다.
혼다의 마케팅 담당자는 친절하게 유튜브 조회 수 1000만회는 케이블TV 광고를 한 달간 진행한 것과 대등한 효과로 친다고 덧붙였다. 수시로 계측할 수 있는 확실한 계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게 디지털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누구나 이해하는 객관적 목표가 있어야, 조직원들이 ‘미친듯이’ 달려가도록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미친듯이 심플>이란 근래 인기도서의 제목을 갖다 붙인다. 좀 멀리로는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말한다. 스티브 잡스를 미치게 한 수치(數値) 목표가 있었던가? 그를 흥분시켰던 숫자는 오직 ‘1984’였다.
그것도 연도보다는 소설 제목으로서 상징을 깨는 데 목표를 두고 그야말로 열광(熱狂)했다. 과(過)하지 않으면서 미치게 하는 그런 마케팅의 시작은 무엇일까? 바로 제대로 된 목표, ‘Goa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