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지속되면서 패션계의 생존 경쟁이 과열 양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매출을 늘리기 위한 시장 확대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미 포화상태에서 브랜드 간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전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의류와 잡화, 유통업계의 매출이 주춤한 가운데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는 기업이 있다. 패션그룹 형지가 그 주인공이다. 기존 여성복 사업(‘샤트렌’ ‘크로커다일 레이디’ ‘올리비아 하슬러’)에서 남성복과 아웃도어(‘노스케이프’ ‘와일드 로즈’) 시장에 진출한 형지는 지난해 9월 국내 학생복 1위 업체 ‘에리트 베이직’을 인수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학생복 브랜드 ‘엘리트’를 보유한 에리트 베이직은 1969년부터 45년간 국내 시장을 이끌어 온 터줏대감이다. 엘리트 덕분에 학생복 라인을 갖추게 된 형지는 제품군이 탄탄해지며 종합패션기업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지난해 5월 인수한 프리미엄 패션몰 ‘바우하우스’가 최근 부산점 기공식 첫 삽을 뜨며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의 도약을 알리고 있다.
부산 지역 거점으로 유통사업 강화
지난 6월 25일 오전 11시 부산 하단동. 복합 패션몰 ‘바우하우스 부산점’ 신축공사 기공식에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최 회장은 “부산은 패션섬유산업의 메카이자 제2의 수도로 대한민국 경제 활력의 중심지로 성장해 가고 있다”며 “지난 30여 년 동안 패션산업에 투신한 열정을 발휘해 고향인 부산을 유통사업의 최대 거점이자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 및 지역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바우하우스 부산점은 지하 8층, 지상 18층 규모에 총 연면적 5만9400m²(약 1만8000평)로 2016년 10월 준공이 목표다. 지하 1층은 부산 지하철 하단역과 직접 연결해 접근성을 높이고, 건물에는 패션업, 외식업, 영화관, 스포츠 시설, 금융업 및 사무실 등을 입주시켜 사하구 최대 복합쇼핑몰이자 랜드마크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부산·경남 지역을 거점으로 유통 사업을 강화하고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최 회장의 뜻은 이미 지난 2월 완공된 ‘부산 패션그룹형지 타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에 자리한 이 빌딩은 지하 1층, 지상 14층에 연면적 8793㎡(약 2660평)로 부산지사와 브랜드 매장을 비롯해 병원, 은행, 교육연구 시설, 오피스, 은행 등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이 입주한 남부 지역 유통망의 허브다. 여기에 오는 8월 경남 양산시 동면 석산리 1422-2번지에 연면적 3만여 평 규모의 ‘양산 물류 및 R&D센터’를 오픈해 물류경쟁력과 R&D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동대문에서 시작한 유통기업의 꿈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최병오 회장이 고향을 떠나 상경한 건 스물여섯 살이 되던 1979년. 3년 후 동대문 광장시장 구석의 한 평(3.3㎡) 공간에서 최 회장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하루 2000~3000장씩 바지를 찍어냈다. 그 시절 최 회장은 하루 4~5시간만 눈을 붙이고 오전 4시에 통행금지가 풀리면 곧바로 광장시장에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 소매상에 내다팔아도 브랜드 옷에 번번이 밀렸다. 그렇게 브랜드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출시한 제품이 1985년 상표등록을 마친 ‘크라운’이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작은 성공 뒤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1993년 어음 관리를 잘못해 부도를 맞은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버텨내며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던 건 구세주 같은 두 브랜드 ‘비버리힐스 폴로클럽’과 ‘크로커다일’ 덕분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동대문 신평화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던 ‘비버리힐스 폴로클럽’ 남성복 매장을 발견하곤 미국에서 여성복 라이선스를 들여왔다. 다시금 동대문으로 돌아와 남평화 시장에 한 평 공간을 마련한 그는 그때부터 ‘형지(熒址)’란 간판을 내걸었다. 2년 뒤 ‘비버리힐스 폴로클럽’과 계약이 끝났을 땐 ‘크로커다일’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한국에서 남성복을 팔던 브랜드였는데, 싱가포르 본사를 설득해 여성복 라이선스를 들여왔다. 그 때가 1996년. 의류업체 형지를 세상에 알린 첫 브랜드 ‘크로커다일 레이디’가 탄생한 해다.
패션업계가 영캐주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최 회장은 중년여성, 성인 캐주얼에 올인했다. 피팅모델도 중년여성을 기용했다. 파격이었다. 트렌드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지만 인기는 점점 올라갔다. 2007년 크로커다일 레이디는 국내 단일 브랜드 최초로 매출 3000억원을 돌파했다. 브랜드가 성공하자 ‘샤트렌’(2005년), ‘올리비아 하슬러’(2007년), ‘아날도바시니’(2009년) 등을 잇달아 론칭했다. 2009년에는 서울 포이동 이곳저곳에 자리잡고 있던 사무실을 한 데 모아 역삼동에 7층 빌딩을 올렸다. 그리곤 형지어패럴에서 패션그룹 형지로 이름을 바꾸고 알파벳 h가 태양처럼 모여 있는 로고를 만들었다.
M&A를 통한 사세확장, 제2의 창업
현재 패션그룹형지의 매출은 1조원대. 최근 2년간 네 차례의 M&A를 성사시키며 7000억원대였던 매출이 지난해 마감 기준 1조30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1982년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사업이 31년 만에 1조 클럽에 진입한 것이다.
2013년 계열사별 매출을 살펴보면 패션그룹 형지(‘크로커다일레이디’, ‘올리비아하슬러’, ‘라젤로’, ‘노스케이프’)가 4250억원, 샤트렌(‘샤트렌’, ‘와일드로즈’) 1340억원, 형지리테일(형지그룹 이월재고 판매) 1340억원, 우성I&C(‘본’,‘예작’ 등) 750억원, 에모다(‘캐리스노트’) 370억원, 에리트베이직(‘엘리트’ 등) 1100억원, 바우하우스 650억원, 여타 계열사 및 관계사가 730억원을 기록했다.
(왼쪽)샤트렌, (오른쪽)크로커다일 레이디
패션그룹 형지의 사세 확장은 2012년 4월 남성복 전문기업이자 코스닥 상장사인 우성I&C를 인수하며 시작됐다. 이후 여성복 중심 기업에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데 이어 지난해 5월 쇼핑몰 ‘바우하우스’, 6월 에모다, 8월 아웃도어(‘노스케이프’) 진출, 9월 코스피 상장 기업 에리트 베이직까지 품에 안았다. 업계에서 2012년을 패션그룹 형지의 제2의 창업이라고 보는 이유다.
지난해 7월 베트남 의류생산공장(C&M)을 사들이며 제조공장도 갖췄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 브랜드 ‘까스텔바작’의 한국 상표권을 인수해 골프웨어 시장에도 진출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에리트베이직과 우성I&C 등 상장사를 인수주체로 내세운 적극적인 M&A와 사업 확장이 예상된다”며 “다만 불황에 따른 업계의 침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국 소주 태화 백화점에 입점한 ‘본지플로어’
중국 시장 진출 속도 UP
속도를 높이고 있는 중국시장 진출도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패션그룹 형지의 한 관계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으로 한·중FTA 타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중국시장 진출에 청신호를 전망했다.
우선 남성복 계열사 우성I&C의 ‘본지플로어’는 지난 5월 중국 소주 태화백화점에 입점했다. 오는 9월경 중국 상해 신세계백화점, 대환백화점, 소주 지우광백화점 등에 ‘본지플로어’, ‘예작’ 매장을 개설해 올해 안에 10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상해법인을 중심으로 ‘샤트렌’, ‘캐리스노트’, ‘와일드로즈’의 중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여성 전용 아웃도어 브랜드 ‘와일드로즈’의 경우 중국의 패션유통 파트너를 통해 중국 아웃도어 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미 중연그룹, 중국국제투자촉진회 등 중국 패션기업 관계자들이 형지의 한국 본사를 방문해 업무 협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형지 측은 “최병오 회장이 지난해 6월 대통령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해 상해복장협회, 상해한인상회와 협력을 모색한 후 11개월 만에 중국 패션시장에 안착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중 FTA가 체결될 시에 비관세장벽이 완화되고 통관절차가 간소화되는 등 한국 의류 브랜드의 중국 진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대만에서는 패션유통전문회사 콜린스와 2013년 하반기 파트너십 협약을 맺고 여성복 브랜드 ‘샤트렌’을 알리며 현재 대만에서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허그(HUG)를 아십니까?
패션그룹 형지가 새로운 기업 캠페인으로 ‘허그(HUG)’를 진행한다. 치유가 필요한 대한민국에 따뜻한 포옹을 전파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안아 주세요’를 슬로건으로 1년간 ‘따뜻한 마음을 전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난 6월 6일 진행된 캠페인 발대식에선 동참하는 이들의 기금을 십시일반 모아 의미 있는 사회공헌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반기 중 ‘허그’를 주제로 한 사진공모전을 비롯해 자사 의류 브랜드의 전국 매장에 메시지가 새겨진 부채와 엽서, 안전가이드북 등을 제작, 고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