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K씨는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거래처 두 곳에서 임원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던 그에겐 뜻밖의 제안이었다. 사실 “정년 후 뭘 하고 살 거냐”는 질문에 늘 “그때 가봐야 알지”라고 답을 미뤘던 그였다. 주변 사람들은 ‘든든한 뭔가가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K씨는 ‘뭔가 복안이 있겠지’란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K씨가 스스로 내린 결정은 ‘NO’. 그는 퇴직 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당시 속내를 이야기했다.
“임원이 되고 싶다는 건 직장인이 되고 나서 늘 했던 생각이거든. 그런데 막상 제의를 받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후배들 보는 눈은 빤할 텐데, 내가 임원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되더란 말이야.
지금까지 직장생활하면서 선배들에게 좋은 후배, 후배들에겐 좋은 선배 소리 들었는데, 마지막 직장생활이 흠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더라고. 할 수 있는 일과 버거운 일이 분명 있을 텐데 이번 일은 해야 하는 일인데 버겁단 생각이 가시질 않았어. 그럴 바엔 차라리 30여 년 직장생활,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고 결심했지. 하고는 싶었지만 준비가 부족했다고 할까. 직장생활에 더 이상 후회는 없다고 되뇌는데 아쉽지.
응, 아쉽다네.”
가을을 앞두고 인사이동과 실적관리에 나선 직장인들이 분주하다.
한 커리어 컨설턴트는 “가을은 봄과 함께 이직의 계절”이라며 “스카우트 제의에 심사숙고해야 하지만 그 전에 자격을 갖추는 게 선행돼야 한다. 별을 달고자 하는 이들은 많지만 막상 준비가 된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충고했다. 과연 임원이 되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덕목은 무엇일까.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는 그의 저서 <내 나이 마흔, 오륜서에서 길을 찾다>에서 “몸과 마음을 꾸준히 단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이자 예술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서 아홉 가지 수련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올바른 마음으로 중심을 세워라.
둘째,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 내면화하라.
셋째, 다양한 기술,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하라.
넷째, 다른 분야도 개방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폭을 넓혀라.
다섯째, 세상사의 이익과 손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안목을 키워라.
여섯째,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키워라.
일곱째,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라.
여덟째,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
아홉째,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길에 집중하라.
그렇다면 이러한 명언과 지침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해 중견기업에서 정년을 맞은 한 퇴직 임원은 “먼저 간 선배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곱씹는 것만큼 도움이 되는 인생의 지침이 없다”며 “위기 때 그들의 경험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그들에게 배워라> (길인수·임순철 공저)를 참고로 리더십의 네가지 유형을 제시해본다.
Talk Talk 1.
예의 없는 이들이 가장 싫다?!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주는 ‘인화’를 중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화목을 위해 신의와 겸손으로 사람을 대했다. 예의를 중시한 박 회장의 인품은 이병철 회장과의 일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회장이 동양맥주 사장에서 물러나 그룹 회장직에 오를 때 세간의 관심은 동양맥주를 경영하게 될 후계자가 누구인가에 집중됐다. 박 회장은 삼성그룹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출신 정수창 사장을 지목했다. 동양맥주 창업 초기 구성원이었던 정 사장은 이미 4년여 전에 동양맥주를 떠나 다른 기업에서 활동했었기 때문에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런 상황이 부담스러웠는지 정 사장도 박두병 회장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자신의 기업경영 방침을 이야기하며 거듭 복귀를 당부했다. 정 사장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박 회장은 이번엔 당시 삼성그룹 총수 이병철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직도 아닌 전직 임원을 영입하면서 양해를 구한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나간 사람을 쓰는 데도 양해를 구할 만큼 박 회장은 훌륭한 예의를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동양맥주의 전문경영인으로 돌아온 정 사장은 이후 박 회장의 뒤를 이어 두산그룹의 제2대 회장이 됐다.
Talk Talk 2.
나만 최고, 아집에 빠져 허우적?!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귀담아들을 줄 알았다. 구체적인 사업에 들어가기 전 이 회장은 늘 관련 자료를 수집해 읽고 분석했다. 그러곤 전문가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특히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문제 해결의 아이디어를 구하는가 하면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자들을 집무실로 불러 그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기도 했다. 의견을 구했다고 해서 100% 수용하는 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자신이 판단해 필요한 내용만 사업계획에 반영했다. ‘도쿄구상’도 그 일환이었다. 이 회장은 매년 연말 도쿄의 오쿠라 호텔에서 일본 경제인, 정치인, 언론인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전자와 반도체 사업 진출 등 삼성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신사업 구상은 이 도쿄 구상에서 시작됐다. 특히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부정적인 견해에도 귀를 기울였다. 한때 이 회장은 자신의 취미 중 하나인 국악 감상을 사업화하기 위해 레코드 사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남짓하던 먹고살기 바쁜 시대에 레코드 사업은 전망이 밝지 않았다. 당연히 부정적인 보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5년 후, 이 회장은 다시 레코드 사업 검토를 지시했다. 하지만 다시 부정적인 보고가 올라오자 아예 사업을 포기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곱씹어보는 경청의 결과다. 이 회장은 이후 아들 이건희 회장이 부회장에 올랐을 때 직접 붓으로 ‘경청(傾聽)’이란 글귀를 써 선물했다. 당연히 이건희 회장의 좌우명 중 하나도 ‘경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