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 있는 ㈜파라의 권미리 사장은 요즘 밀려드는 주문에 얼굴이 환해졌다. 매일 밤늦도록 사무실을 지키며 일을 하지만 회사가 커가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를 정도다. 바람 앞의 등불 같던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반석에 올랐기에 그의 기쁨은 더욱 크다.
정수기 핵심 부품인 멤브레인을 만드는 파라는 세계 수준의 독점적 기술을 확보해 빠르게 성장했다. 싼 엔화 자금을 지원받아 시설투자까지 했기에 이익 내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그런데 금융위기로 엔화 환율이 폭등하면서 회사는 순식간에 벼랑으로 몰렸다.
2008년 43억원 매출에 63억원의 손실을 냈다. 엔화대출 평가손이 급증했다. 차입금이 129억원인데 자본잠식은 53억원에 달했다. 2009년 가을 회사는 버티다 못해 IBK기업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엔화대출이 차입금의 50%를 넘었다. 800원대에서 대출 받은 게 1400원까지 갔으니 손실이 컸다. 재무 상태는 좋지 않았으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의 멤브레인 필터는 바이러스를 완벽히 제거해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유네스코 대원들이 현지에서 물을 정수해 바로 마실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실무를 담당했던 설창영 IBK기업은행 기업개선부 팀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워크아웃 약정 기간이 만료되는 2011년 연말이 됐는데도 회사의 사정은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기업은행은 그 단계에서 워크아웃을 연장해 주었을 뿐 아니라 금리를 올리기는커녕 종전과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고 추가 자금지원까지 했다. 거의 파격에 가까운 조치였다.
드디어 파라는 2012년 88억원 매출에 4억원 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3년 파라는 스위스의 한 정수기 업체에서 65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기업은행도 구조조정 펀드에서 추가로 30억원을 지원했다. 자금 사정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매출이 쭉쭉 늘면서 이제는 대기업들까지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해 올 정도가 됐다.
파라는 내년에 176억원 매출에 11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2015년엔 250억원 매출에 2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칫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도 있던 회사가 IBK기업은행의 자금 지원으로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적극적 지원에 중소기업들 환호
IBK기업은행의 독자적 기업지원 프로그램인 ‘체인지업’이 중소기업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고 사업전망까지 탄탄한 기업들이 예상치 못은 사태를 만나 일시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돈을 떼일까 걱정하며 자금을 회수하기보다는 오히려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이다.
조희철 IBK기업은행 부행장은 “위기를 만난 기업 중엔 은행이 조금만 채무조정을 해주면 살아날 곳이 엄청 많다. 기업은행은 이런 기업에 대해 금리를 감면해주고 대환대출을 해주거나 만기를 연장해 주고 구조조정 기회를 부여하는 등으로 지원해 회생시킨다. 그래서 다른 은행들이 구조조정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체인지업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던 기업이 갑자기 금융위기나 특정 지역의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에 의해 갑자기 자금난에 봉착했을 때 어려운 기업의 팔다리를 잘라내지 않고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도록 선제적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효과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 부품업체인 S사는 기술력이 뛰어난 데다 업종 자체도 좋았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는 아주 잘나갔다. 그런데 지난 2007년 해외 바이어가 갑자기 도산하는 바람에 150억원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달해 쓰던 부품마저 불량으로 나타나 고객이 이탈하면서 부도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S사는 어쩔 수 없이 은행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당시 이 회사는 170여억 원을 차입하고 있었다. 기업은행은 6개 은행과 함께 공동으로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회사의 기술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기업은행은 다른 은행들을 설득해 긴급 운용자금으로 15억원을 지원하고 기존 대출금의 상환을 유예해줬다. 특히 이 회사에 대해 금리까지 인하해 부담을 대폭 경감시켜줬다. 시간을 번 S사는 유휴인력을 구조조정하고 불요불급한 자산을 매각했다. 이렇게 해서 안정을 찾은 회사는 일본 기업들과 거래를 트면서 실적을 회복해 나갔다. 채권은행이 지원한 자금을 2년여에 걸쳐 상환했다. 워크아웃 추진 당시 150억원 선이었던 매출액은 2010년 400억 원대로 올라섰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전도가 밝던 회사는 2011년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에 또 타격을 받았다. 제품 수요처의 대부분이 일본 기업들이라 갑자기 주문이 확 꺾인 것이다. 매출이 급감한 것은 물론이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신제품을 개발해 놓고도 설비투자를 할 수 없었다. 돈줄이 막혀 회사를 돌리는 것조차 어려웠다. 회사는 2차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때 기업은행이 구세주로 나섰다.
“어느 날 기업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회사로 갈 테니 사업 브리핑 준비를 하라는 거였다. 곧 이어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기업은행 기업개선부장이 팀장과 회계사 등 5명을 대동하고 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얼마나 꼼꼼히 묻는지 브리핑을 하는 데 두 시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더니 며칠 뒤 자금을 지원한다고 했다. 꿈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