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고 작은 홍수 피해를 보는 태국이지만 작년 한 해는 그 규모가 남달랐다. 중북부 지역에서만 38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유엔 국제재해경감전략기구(UNISDR)는 수 개월 간 태국을 휩쓴 홍수로 인한 피해액이 46조원(약 4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매머드급’ 재해에 당사국은 물론 태국 현지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도 큰 피해를 봤다. 특히 일본의 경우 지금까지 밝혀진 대표기업들의 피해액만도 상당한 수준이며 계속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토요타와 혼다는 공장 침수로 인한 조업 중단 등으로 1조5000억원의 이익이 공중으로 날아갔고 소니와 파나소닉도 1조원 가까운 손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손해액 150억원 이상인 기업만 40여 곳이 넘을 정도로 큰 피해를 본 일본은 작년 3월 지진 피해에 이어 또 한 번 자연재해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해외 자연재해에 국내 손보사가 운다
여파는 국내기업들에도 미쳤다. 삼성화재는 이번 홍수로 지금까지 추산된 금액만 97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태국 현지에서 피해를 본 국내 기업들의 경우 아직까지는 피해액이 구체적으로 산정되지 않아 보험금이 지급된 케이스가 없다”고 밝혀 시간이 갈수록 보험금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연유로 삼성화재는 작년 12월 오랜만에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245억원의 영업 손실과 당기순이익 54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삼성화재는 2009년 12월 이래 처음으로 월별 적자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동부화재, 현대해상 등의 다른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양호한 실적을 거둔 것과 대비를 이뤄 업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화재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됐다.
그렇다면 왜 삼성화재는 타국의 자연재해에 국내 기업들의 피해금액이 산정되기도 전에 1000억원 가까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을까? 우선 삼성화재가 태국 현지에 진출해 현지 영업을 통해 체결한 보험계약의 손해액이 지불됐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언론에 잘못 보도된 내용과는 다르게 삼성화재는 태국 현지에 영업을 할 수 있는 법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 삼성화재 관계자는 “중국과 베트남, 싱가포르(재보험사)에는 법인이 존재하지만 태국에는 없다” “라이선스를 가진 법인이 없는 태국에서는 현지 영업이 불가하다”고 설명하며 손해 발생이 직접적인 영업에 따른 보험물건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재보험이 큰 손실 안겨
‘970억원’ 손실의 답은 재보험에 있다. 삼성화재는 몇 해 전부터 다수의 일본 보험사들과 계약을 하고 재보험 물건을 인수했다. 문제는 인수한 보험에서 태국 홍수 피해로 인해 보험금으로 1000억원 가까운 금액의 손실을 떠안게 된 것이다. 삼성화재 관계자에 따르면 “몇몇 언론에 보도된 내용처럼 단일 회사와 스와프계약으로 인수한 것이라는 내용은 사실무근”이라며 “정상적으로 다수 일본 보험사들과의 계약을 통해 보험물건을 인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도 이번 태국 홍수에 따른 피해액을 보상해주면서 7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적인 재보험사가 아닌 삼성화재가 코리안리보다 많은 재보험 보상액이 발생한 것도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손해보험사들의 재보험 계약에 대해 보험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보통 손해보험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다수의 계약을 체결하여 통계적인 유의성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여의치 않을 때 재보험 카드를 꺼낸다”며 “특히 규모가 큰 보험일수록 재보험의 필요성이 커지는데 계약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수익성을 평가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 측 역시 “일본 회사들과의 재보험 계약물건 인수 전 내부적으로 수익성 분석을 끝마친 후 결정했지만 예측하기 힘든 재해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보험업계는 이번 사건과 관련, 삼성화재 측이 태국은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면책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물론 규모가 큰 태국 관련 물건을 다시 재보험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판단착오’가 피해 규모를 키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기업 피해 보전까지 겹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태국 홍수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피해는 상당한 규모다. 이에 따라 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과 계약한 일본 손해보험사들 역시 ‘상당한’ 지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월14일 일본 보험업계가 자국 기업에 지급할 손해보험금이 9000억 엔(약 13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추가적인 손해 규모 산정에 따라 많은 비용이 기업들의 손해 보전에 지불될 전망이다.
일본 기업들의 피해 보전에 삼성화재 역시 ‘의도치 않은 일조’를 하게 됐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재보험계약 상대방이 일본 손해보험사인 만큼 대부분의 보험금이 홍수로 피해를 본 일본 기업들에 지급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재해로 인해 의도치 않은 손해를 본 만큼 앞으로 대형 재해를 당한 국가나 지역과 관련한 보험물건 인수에 있어서 보수적인 운영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 재보험(Reinsurance)이란?
특정 보험회사가 인수한 보험 계약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른 보험사에 다시 넘기는 것을 말한다. 특정 보험사와 가입자 간의 1차 계약을 원보험 또는 원수보험(元受保險)이라 한다.
재보험은 통상 원보험계약의 가입 금액이 워낙 커서 특정 보험사가 독자적으로 책임지기 어려울 때 이루어진다. 원보험자는 이에 의하여 재보험자에게 위험을 전가할 수 있고, 원보험료와 재보험료 간의 차액을 취득할 수 있다. 이때 원보험과 재보험은 완전히 별개의 독립적인 계약이며, 재보험 자체는 원보험이 무엇이냐에 구애됨 없이 책임보험(責任保險)이므로 책임보험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상법 661조)
국내 보험사가 외국 보험사에 재보험을 들고 보험료를 내는 것을 출재라 하고 다른 회사에서 재보험을 인수해 보험료를 받는 것을 수재라고 한다. 우리나라 보험사들은 자본금 취약 등으로 수재보다는 해외 출재를 더 많이 하는 편인데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고 있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