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은 주인공 귀걸이의 '욱일기' 문양을 삭제했다. [사진 제공 = 에스엠지홀딩스]
지난 27일 국내 개봉한 일본 대작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귀멸의 칼날)엔 일본 원작과 차이점이 있다. 주인공 '탄지로'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한국을 비롯한 일본 외 상영판에서 다른 귀걸이로 바꾼 것. 이 덕분에 귀멸의 칼날은 별 논란 없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오는 3일부터는 상영관이 대폭 늘어나며 흥행 돌풍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작품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영화 산업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용어 사용이나 정책을 펼 때 있어 인종·민족·종교·젠더 감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과거엔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대목에 관객들 비난이 쏟아지는가 하면, 귀멸의 칼날처럼 물의를 빚기 전부터 문제 요소들을 없애는 경우도 있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전사 밀라 요보비치가 주연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 '몬스터 헌터'는 동양인 비하 논란이 있었던 장면을 삭제하고 오는 10일 개봉한다. 앞서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개봉했을 때 인종차별적인 대사가 관객들 반발을 초래해 하루 만에 막을 내려야 했던 여파다. 영화 속에서 한 사병이 "이건 무슨 무릎이야?"라고 농담하자 또 다른 사병이 "중국인"이라고 웃으며 답하는 대목이 비난을 샀다. "중국인, 일본인, 더러운 무릎, 이것 좀 봐봐!"라며 아시아계 노동자들을 멸시하는 가사를 담은 영미권 전래동요를 연상시킨다는 의심을 받았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유럽에서는 '화이트 워싱' '블랙 워싱' 여부가 곧잘 문제화된다. 화이트 워싱은 할리우드 등 서양 영화계에서 백인 위주로 기용하는 관행을, 블랙워싱은 반대로 문화다양성을 표방하며 어울리지 않는 대목에 흑인을 등장시키는 것을 각각 꼬집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절찬리에 상영 중인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두 관점에서 모두 지적받았다. 소울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중 최초로 흑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재즈 밴드와 연주를 꿈꾸는 흑인 음악 교사 '조'가 작품을 이끈다. 소울 제작진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최초로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다양성을 중요시하는) 흐름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에 "타당한 우려는 맞지만 문맥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며 "재즈가 흑인의 문화와도 맞닿아 있으니 우리의 주인공은 흑인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블랙워싱 논란에 반론하기도 했다.
유럽에선 덴마크어 버전을 주로 백인 배우들이 더빙한 게 지난달 '화이트 워싱' 문제로 불거졌다. 포르투갈에선 픽사에게 유색인종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리메이크 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에 1만 7000명 넘게 서명하기도 했다. '조' 덴마크어 녹음을 맡은 백인 성우 니콜라즈 리 카스는 이에 대해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든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맞는다는 게 일에 대한 내 입장"이라며 페이스북에서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