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열풍이 불고 있다. 암호화폐 대장인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찍는 한편 달러 자산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도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투기성 자산으로 평가받던 암호화폐가 이제는 하나의 자산군으로 인정을 받으며 미국에선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간 미국 빅테크 대표주인 매그니피센트7(M7)를 집중적으로 매수했던 서학개미들이 암호화폐 관련 미국 기업 주식을 대량으로 싹쓸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으로 편입될 걸 기대하면서 관련 기업들이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간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개별 해외 주식 종목은 비트마인(BitMine Immersion Technologies, BMNR)이다. 순매수 규모는 2억 4165만달러로 ETF(상장지수펀드) 상품 등을 포함해 순매수 규모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트마인은 그 전달인 6월엔 순매수 상위 명단엔 보이지 않았다가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조짐이 보이자 투자자들이 발빠르게 매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비트마인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본사가 있는 암호화폐 채굴 및 투자 업체다. 자체 채굴 장비 운영을 통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채굴하고 이더리움 중심의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관리하는 데 주력한다. 현재 비트마인은 30만 개 이상의 이더리움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더리움은 지난 7월 한달 동안에만 가격이 50% 넘게 급등했다. 이 기간 암호화폐 시가총액 10위권 코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실물자산토큰(RWA), 디파이 등 토큰화 플랫폼의 대부분이 이더리움 기반으로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테이킹 기능이 이더리움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스테이킹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이더리움을 예치하면 이더리움을 추가로 보상받는 구조로, 이더리움 보유량이 늘수록 그 보상도 증가하게 된다.
막대한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 유입도 이더리움의 가격 상승을 지지했다. 이더리움이 새로운 자산군으로 부각되면서 이더리움 관련 ETF로의 자금 유입이 계속되고 있다. 7월 초부터 28일까지 이더리움 현물 ETF엔 약 51억 2463만달러의 자금이 유입 됐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기업들이 직접 이더리움을 매입해 장기보유자산으로 편입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는데, 나스닥 상장사 샤프링크게이밍은 이더리움 보유량을 28만 개 이상으로 늘렸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스테이블 코인이 가장 많이 발행된 블록체인이라는 점에서 미국 스테이블코인 법안 통과 이전 부진했던 이더리움에 대한 투자 심리가 반등하고 있다”며 “ETF로 강한 자금 유입이 이어지고 있는 이더리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트마인뿐 아니라 다른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도 서학개미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7월 한달간 ETF를 제외한 개별기업 순매수 상위 기업엔 로빈후드, 샤프링크 게이밍, 코인베이스 글로벌, 서클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로빈후드의 순매수 결제액은 1억 573만달러다. 로빈후드는 최근 200개가 넘는 미국 주식과 ETF를 토큰화해 유럽 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거래 수수료도 없이 0.1%의 환전 수수료만 청구하고 있고 평일 24시간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6월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에 진출했는데 향후 토큰화 증권 서비스가 중장기적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이유로 글로벌 IB(투자은행) JP모간은 로빈후드의 목표주가를 기존 47달러에서 98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최근 로빈후드 주가가 주당 100달러를 상회하는 걸 감안해 투자의견은 여전히 ‘중립’으로 유지했다.
샤프링크 게이밍은 스포츠 베팅 및 마케팅 회사다. 하지만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트레저리 사업을 하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트레저리 사업은 기업이 보유한 현금을 암호화폐로 바꿔 관리하는 걸 말한다. 샤프링크 게이밍은 현재까지 이더리움 약 36만 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월 말 주당 2달러 수준이었던 샤프링크 게이밍의 주가는 트레저리 사업이 부각되자 6월 초 최고 124달러까지 치솟았다. 현재는 이러한 폭등세가 진정된 모습이지만 20달러 선에서 거래되는 등 2개월 여만에 10배 정도 오른 상태로 주가가 유지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증시에 상장한 서클도 여전히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있다. 서클의 공모가는 주당 31달러로 당초 예상 범위(27~28달러)를 상회했는데, 상장 이후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168% 폭등했다. 이후 상승세를 지속해 현재 150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서클은 미국 최대 스테이블코인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시가총액 615억달러 규모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C의 발행사인 만큼 향후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편입되면 수혜를 볼 것이란 기대감이 연일 유입되고 있다. USDC는 테더가 발행하는 USDT에 이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에선 USDC가 활발하게 쓰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에선 미국 기업이 발행한 달러 기반스테이블코인 결제가 활용되고 있는데, 쇼피파이에 탑재된 코인베이스 페이먼트는 스테이블코인 중 USDC 결제만을 허용하고 있다. 코빗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USDC의 섹터별 거래량 비중을 보면 최근 3개월간 디파이가 현재 거래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테더의 스테이블코인 USDT가 중앙화 거래소·결제 중심 달러 성격이 강하다면 USDC는 디파이 친화적 달러의 성격을 가진다고 코빗은 분석한다.
강동현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이 단일한 디지털 달러가 아닌 각 체인 내 경제 구조와 맞물려 작동하는 기능별 인프라 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주요 디파이에서 USDC의 공급량을 봤을 때 현재 USDC의 디파이 특화 달러로의 위치가 공고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더리움은 디파이 생태계의 규모 및 다양성 면에서 가장 앞서 있기에 USDC, DAI 등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담보 및 유동성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고, 가상자산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 발행·운용되고 있다”며 “각 블록체인이 형성해가는 경제 특구 인프라 레이어에서 새로운 유니콘을 선점하려는 시도도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결제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 결제 수수료를 낮추면 수익성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 때문으로 보인다.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 메타, 구글 등도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뛰어들 전망이다.
반면 미국 빅테크 대표주인 M7 주식의 인기는 시든 모습이다. 7월 한달간 미국 주식 순매수 결제 상위 10권엔 빅테크 개별 기업들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5위에 테슬라를 2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TSLA 불 2X 셰어즈 ETF(DIREXION DAILY TSLA BULL 2X SHARES, TSLL)만 자리했다. M7 주식 중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는 메타는 순매수 상위 16위에 이름을 올렸고, 순매수 결제액 규모는 5722만달러였다. 이밖에 엔비디아(34위, 3136만달러)만 50위권에 자리했다. 반대로 매도 결제액 1위엔 글로벌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자리했다. 한달간 서학개미들은 테슬라 주식을 20억 8469만달러어치 팔아치웠다. 테슬라의 미래 성장 먹거리들에 대한 준비 절차는 지속되고 있으나 지난 2분기 매출액이 시장 기대치를 하회했고, 전기차 판매량도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다만 M7의 주가는 선별적으로 상승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AI(인공지능)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들의 주가는 역사적 고점을 돌파했다. 7월 말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스포트는 창업 50년 만에 시가총액 4조달러를 돌파했다. 컴퓨팅 서비스와 오피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모습과 클라우딩 시스템, 차세대 AI 기능 등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꾸준한 러브콜을 받은 덕분이다. AI 반도체 대장주로 평가받는 엔비디아도 지난달 초 역사상 최초로 시총 4조달러를 돌파한 이후 같은달 31일 주당 최고 183.3달러까지 올라가며 역사적 신고가를 경신했다.
연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율관세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이후 미국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이처럼 다시 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달 말 6400선을 돌파하는 한편, 미국 기술주 중심으로 구성된 나스닥지수도 2만1400선을 돌파했다.
국내외 금융투자업계에선 미국 증시의 추가 상승에 대한 찬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의 자산운용사 오펜하이머는 최근 S&P500지수의 목표치를 기준 5950에서 7100으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이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과의 무역 협상에 합의하면서 관세 관련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이유에서다. 이외 월가 주요 IB(투자은행)들이 제시한 S&P500지수의 목표치는 ▲웰스파고 7007 ▲골드만삭스 6600 등이다.
반면 단기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모건스탠리, 에비코어 ISI 등은 S&P500 지수가 향후 몇 주 혹은 몇 달 이내 단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투자전략가는 미국 정부의 관세가 민간 소비와 기업 경영에 타격을 입히면서 이번 분기 최대 10% 주가 조정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주가 상승·하락 압력을 나타내는 보조지표로 불리는 주가 상대강도지수(RSI)를 보면 S&P500지수는 최근 14일간 76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다.
국내에선 단기 신중론에 무게를 둔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까지 고공행진하면서 기술적 피로감이 많이 누적됐고, 8~9월 계절성이 부정적이란 점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은 변한 경기 내러티브에 당분간 예민하게 반응할 공산이 크다”고 했다. 이어 “최근 글로벌 M2 증가율이 이미 순환적으로 반등 중인 국면에서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금리 인하는 초과 유동성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며 “구경제가 아닌 기술주가 중심이 된 주식시장에 역실적 장세의 신호탄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중기 관점에서 향후 버블을 불러일으킬 조건들이 완성돼 가고 있다”고 했다.
[홍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