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 인공지능(AI)의 고지를 어떤 기업이 가장 먼저 밟게 될까.
AI 경쟁에서 한발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던 메타가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Superintelligence)’ 개발을 목표로 인프라 확보부터 인재 영입까지 총력전에 뛰어들었다.
메타를 이끄는 마크 저커버그 CEO는 초지능 개발을 위해 별도 연구 조직을 신설하고, 연구자 1명에게 수천억원대의 보상까지 제공하고 나섰다.
메타가 개발하려는 것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라는 의미를 담아 ‘초인공지능(ASI·Artificial Super Interlligence)’으로 불린다.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는 챗GPT와 같은 서비스의 경우, 아직은 사람을 뛰어넘지 못한 ‘약한 인공지능(ANI·Artificial Narrow Intelligence)’ 단계에 머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챗GPT처럼 작문을 뛰어나게 하거나, 미드저니처럼 그림을 그리는 등 AI가 특정 영역에서는 인간과 비슷한 수준 또는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직은 일부 범위에 한정되어 있는 역량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AI를 지적 수준에 따라 ANI, AGI, ASI 단계로 분류한다. ANI의 다음은 모든 영역에서 AI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추는 ‘범용인공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다. 그리고 AGI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ASI다.
AI 기술은 AGI에도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며, AGI는 오픈AI, 구글, 앤스로픽과 같은 공룡들이 내걸고 있는 목표 지점이기도 하다. 이 경쟁에서 메타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인 ‘라마’를 보유하고 있지만 다른 기업들에 비해 AGI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메타가 AGI를 건너뛰고 ASI를 목표로 내건 것에는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고, 앞으로 펼쳐질 AI 패러다임에서는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저커버그 CEO는 ASI를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라고 본다. 지금 AI 모델의 성능이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듯이, 현재의 발전 속도라면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수준에 곧 도달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메타가 ASI에 올인하는 이유는 AI가 단순히 생산성 향상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인류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ASI가 구현될 경우 신약 발견과 같은 의료 영역부터 과학, 문리학 등 인류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복잡한 문제들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긍정론자들은 ASI를 두고 “인류가 발명할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저커버그 CEO는 지난 6월 ‘메타 초지능 연구소(MSL Meta Superintelligence Labs)’이라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메타 초지능 연구소 설립을 발표하면서 “AI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초지능 개발이 가시화하고 있다”라며 “이것이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그 길을 메타가 선도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메타는 ASI를 가장 먼저 개발하고, 이를 개개인 모두가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저커버그 CEO는 ‘개인용 초지능’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 삶에서 훨씬 더 의미 있는 변화는 모든 사람이 각자 목표를 달성하고 세상에 원하는 것을 창조하며, 더 나은 친구가 되고 스스로 바라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개인용 초지능’을 갖는 데서 올 것”이라며 “메타의 비전은 모두에게 개인용 초지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초지능을 통해 기존 작업을 모두 자동화하고, 인류는 이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방식을 추구하는 다른 기업들과 다르다”며 메타는 사람들이 각자의 열망을 추구함으로써 인류의 진전을 이룩하도록 도울 것이라 강조했다.
ASI가 인류의 활동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다만 메타가 어떠한 방식으로 ASI를 서비스로 구현하고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향이 나오지는 않은 상태다. 그동안 메타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SNS)부터 메타버스, 스마트 글래스 등 ‘연결’에 방점을 두었던 만큼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저커버그 CEO는 “인간과 같은 것을 보고 듣고 상호작용하면서 맥락을 이해하는 스마트 글래스와 같은 개인 디바이스들이 인간의 핵심적인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ASI 개발을 위해 뭉친 메타 초지능 연구소의 현재 구성원은 100명 미만 규모로 파악되지만 그 면면은 화려하다. 이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 메타가 쏟아부은 돈만 조 단위다.
메타는 AI 데이터 기업 스케일AI의 창업자이자 ‘AI 천재’로 꼽히는 알렉산더 왕을 최고 AI 책임자(CAIO)로 영입해 메타 초지능 연구소를 이끌도록 했다. 이를 위해 메타는 스케일AI의 지분 49%를 약 20조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인수했다. 해당 인수 건은 데이터 역량 확보를 위한 기업 인수이기도 하지만 왕 CAIO라는 1명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애크하이어(acqhire)’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메타 초지능 연구소 설립 후 약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주요 구성원 44명의 리스트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등을 통해 공유된 바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앤스로픽 등 대표적인 AI 기업에서 영입된 리더급 인물이다.
메타는 오픈AI 연구원들에게 1000억원이 넘는 최고 1억달러의 보상 패키지까지 제시하기도 했으며, 애플에서 AI 모델을 이끌었던 루오밍 팡 엔지니어에게는 2억달러(약 2780억원)에 달하는 보상 패키지를 제공하며 영입을 성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같은 트렌드를 두고 “실리콘밸리의 AI 인재 쟁탈전은 이제 NBA 스타 영입 경쟁을 방불케 할 만큼 격화되고 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메타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같이 AI 모델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인프라 확충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AI를 위한 초대형 데이터센터다. 저커버그 CEO는 지난 7월 15일 소셜미디어(SNS) 서비스 스레드를 통해 “여러 개의 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건설하고 있다”라며 “첫 번째 데이터센터 명칭은 ‘프로메테우스’로 내년에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5GW까지 확장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을 포함해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GW급은 원자력 발전소 1기가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 규모의 전력 단위로, 건설 중인 데이터 센터가 그 정도 전력이 필요한 만큼 대규모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에서 대형 인프라로 꼽히는 네이버의 두 번째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경우 270메가와트(㎿) 수준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기가와트 단위의 데이터센터는 많지 않다.
별도 조직을 출범시킬 만큼 초지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메타와 비교했을 때 AI 빅 플레이어들인 오픈AI, 구글이나 앤스로픽 등은 노골적으로 초지능 키워드를 강조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8월 현시점 가장 강력한 AI 모델 ‘GPT-5’를 출시한 오픈AI도 마찬가지다. 오픈AI는 해당 모델을 ‘박사급’이라고 평가하면서도 ‘AGI로 향하는 중요한 단계’라며 아직은 AGI에도 도달하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다만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AGI 다음의 ASI를 이미 목표로 잡고 기술 연구에 돌입했다. 올트먼 CEO는 ASI를 ‘인간이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AI’로 정의하며, 인류가 처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트먼 CEO는 올해 초 블로그를 통해 “이제는 우리가 AGI를 구축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라며 “이제 우리의 목표는 (AGI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초지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글의 AI를 이끄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의 경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허사비스 CEO는 인간과 같은 수준의 AGI가 “향후 5~10년 안에 등장할 것”이라며 초지능의 경우 AGI 이후에 등장하게 되겠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보고 있다.
메타가 승부수로 초지능 키워드를 먼저 띄운 가운데, 업계에서는 인간보다 뛰어난 AI 등장 가능성에 따른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많다. 인류의 지적 능력을 훌쩍 넘어서게 되면 AI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AI 석학인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힌턴 교수는 지난해 노벨상 시상식 종료 후 연회에서 “우리보다 더 지능적인 디지털 존재를 만들 때 발생할 수 있는 장기적인 실존적 위협이 있다“며 초지능의 등장에 대한 우려를 보였다.
물론 AI 기업들도 이같은 위험성과 우려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다. 메타의 저커버그 CEO 또한 초지능 모델의 부작용 가능성을 인정하며 “초지능의 혜택은 널리 퍼져야 하고, 전 세계가 함께 나눠야 할 기술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만들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메타는 또한 그동안 모델을 개발해 오픈소스로 개방해오며 오픈소스 생태계에 큰 역할을 해왔는데, 초지능 단계의 경우 어떤 모델을 공개할지는 신중히 결정하겠다며 노선 변경의 가능성도 시사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AI가 2~3년내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 본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도 AI가 가져올 대규모 실업과 같은 경제적인 영향에 대한 정책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AI 기술 패권을 잡기 위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들까지 전력 투구하는 가운데 이 같은 안전성에 대한 논의는 후순위가 될 가능성도 있다.
힌턴 교수는 “우리가 이를 통제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라며 “하지만 단기적 이익에 동기 부여된 기업이 이런 기술을 만든다면 우리의 안전이 최우선 순위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