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30분, 미국장이 열리면 해외주식 앱을 켜는 서학개미 손가락이 먼저 향하는 곳은 익숙하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 아마존…
오전엔 챗GPT로 보고서를 다듬고, 클로드로 영어 메일을 고치고, 그록의 답변을 캡처해 공유하던 사람들이 밤에는 AI 인프라주와 빅테크 주가를 확인한다.
그런데 2026년 하반기를 앞두고 주식앱 관심종목 바깥의 이름들이 투자자의 관심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스페이스X(SpaceX), 오픈AI(OpenAI), 앤스로픽(Anthropic). 아직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가 직접 살 수 없는 비상장 AI 대어들이다. 지난 몇 년간 LLM 챗봇 경쟁은 성능 경쟁처럼 보였다. 누가 더 자연스럽게 답하는가, 누가 더 긴 문서를 읽는가, 누가 코드를 더 잘 고치는가.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더 치열한 경쟁이 있었다. 컴퓨팅 자원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 데이터센터와 전력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거대한 적자를 어느 시장에서 메울 것인가의 싸움이다.
이제 그 싸움이 공개시장으로 넘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스페이스X는 6월 상장을 목표로 숫자로 시장을 흔든다. 로이터는 ‘스페이스X가 약 750억달러 조달, 1조7500억달러 안팎의 평가를 목표로 할 수 있으며, 나스닥 상장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전했다.
앤스로픽은 2026년 2월 300억달러를 조달하며 포스트머니 기준 3800억달러 평가를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스페이스X는 오랫동안 로켓 회사로 기억됐다. 재사용 로켓, 스타링크, 화성 이주 구상. 한국 투자자에게도 이 회사의 이미지는 우주와 위성 인터넷에 가까웠다. 그러나 상장을 둘러싼 최근 보도에서 스페이스X를 설명하는 단어는 점점 AI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로이터는 스페이스X가 머스크의 인공지능 회사 엑스AI(xAI)를 인수했으며, 이 결합 이후 로켓·위성통신·AI 컴퓨팅을 한 묶음으로 설명하는 기업이 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거래는 스페이스X를 1조달러, 엑스AI를 250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한 구조였다.
이 결합은 단순한 계열사 정리가 아니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라는 현금창출원을 갖고 있다. 반면 엑스AI는 대규모 컴퓨팅 투자가 필요한 초기 AI 사업이다.
로이터가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엑스AI 부문은 2025년 64억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전년 16억달러 손실보다 적자 폭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스페이스X 상장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로켓 발사 성공률만이 아니다. 스타링크가 벌어들이는 돈이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투자, 추론 인프라 비용을 얼마나 오래 떠받칠 수 있느냐다.
공모자금의 쓰임도 중요해졌다.
로이터는 최근 보도를 통해 “스페이스X의 투자자 피치가 화성 구상보다 AI 구축을 더 큰 기회”라고 설명하며 “AI 지출이 빠르게 늘어날 경우 IPO 자금이 몇 년의 활주로를 제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라고 짚었다.
이 말은 스페이스X가 공개시장에 던지는 메시지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예전의 스페이스X가 “우주 산업의 독점적 개척자”였다면, 상장 이후의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현금흐름으로 AI 인프라를 키우는 거대 플랫폼”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매력은 분명하다. 위성망, 정부·국방 계약, 통신 인프라… 머스크 생태계의 고객 접점은 일반 AI 스타트업이 쉽게 갖기 어려운 자산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은 AI 상장 러시의 상징이다. 두 회사는 챗봇을 통해 일반 소비자와 기업 고객의 일상에 들어왔다. 오픈AI는 챗GPT로 생성형AI 대중화를 이끌었고, 앤스로픽은 클로드와 코딩 AI에서 기업용 수요를 빠르게 키웠다. 한국 투자자도 두 회사의 제품을 이미 사용해 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들의 상장은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쓰는 AI 서비스의 주식을 살 수 있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픈AI의 상장은 아직 확정이 아니다. 다만 주요 언론들은 올해 하반기 상장을 예상하고 있다. 실제 오픈AI는 2025년 지배구조를 재편하며 공개 시장 진입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일부 정리했다. 오픈AI는 비영리 조직인 오픈AI 재단이 영리 법인의 지분을 보유하고 통제하는 구조를 공개했고, 재단이 가진 지분 가치가 약 1300억달러라고 밝혔다. 이는 곧바로 IPO 선언은 아니지만, 막대한 자본조달과 기업가치 산정을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간 변화다.
앤스로픽 역시 상장을 앞두고 숫자로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회사는 2026년 2월 300억달러 규모의 시리즈G 투자를 유치해 3800억달러 평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로이터는 앤스로픽의 연환산 매출이 140억달러 수준이며, 클로드 코드의 매출 속도와 기업 구독 증가가 빠르게 확대됐다고 전했다. 앤스로픽의 강점은 소비자용 챗봇만이 아니라 기업의 소프트웨어 개발, 문서 작성, 내부 지식 검색에 들어가는 생산성 도구라는 점이다.
그러나 공개시장 투자자는 제품의 체감 성능만 보지 않는다. 챗봇이 한 번 답할 때마다 얼마의 비용이 발생하는지, 고객이 매달 돈을 내고 계속 쓰는지, 대형 클라우드 회사와의 계약 조건이 수익성을 얼마나 잠식하는지를 묻는다. LLM 기업의 역설은 사용량이 늘수록 비용도 함께 늘어난다는 데 있다. 더 많은 질문, 더 긴 문서, 더 복잡한 추론은 매출 기회이면서 동시에 GPU와 전력, 클라우드 비용의 청구서다.
빅3 외에도 ‘AI 대어급’ 후보군들이 포진해 있다.
첫 번째는 데이터브릭스(Databricks)다. 데이터브릭스는 2026년 2월 약 50억달러를 조달하며 1340억달러 평가를 받았고, 연환산 매출은 4분기 기준 54억달러로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이 회사는 데이터 분석과 AI 플랫폼을 결합해 기업 고객의 데이터 인프라를 장악하는 쪽에 가깝다.
데이터브릭스의 의미는 “모델을 직접 파는 회사”가 아니라 “기업이 AI를 쓰기 위해 데이터를 정리하고 연결하는 회사”라는 데 있다. AI 모델이 좋아져도 기업 데이터가 흩어져 있으면 실제 업무 적용은 느려진다. 그래서 데이터브릭스는 오픈AI나 앤스로픽과 다른 방식으로 AI 수혜를 받는다. 챗봇의 얼굴은 아니지만, 기업 AI 도입의 배관을 쥐고 있는 기업이다.
두 번째 후보군은 안두릴(Anduril)이다. 안두릴은 AI 방산과 자율 시스템 분야의 대표적인 비상장 기업으로 꼽힌다. 로이터는 안두릴이 2026년 5월 50억달러를 조달하며 610억달러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 회사의 위치는 전통 방산업체와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회사 사이에 있다. 드론, 감시 시스템, 자율 방어체계, 지휘통제 소프트웨어는 모두 AI가 물리 세계로 확장되는 장면이다.
안두릴의 투자 매력은 지정학과 연결된다. 국방 예산,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 투자, 무인 시스템 수요가 성장 논리를 만든다. 동시에 규제와 정치 리스크도 크다. 방산 AI는 수익성이 높을 수 있지만, 정부 계약 의존도와 윤리 논란, 수출 통제의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AI가 사무실 생산성 도구를 넘어 전쟁의 운영체제로 들어갈 때, 투자자는 성장성과 책임의 비용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세 번째는 피겨(Figure)다.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인 피겨는 2025년 9월 신규 투자 라운드에서 390억달러 평가를 받았다. 제조, 물류, 창고, 위험 작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한다. 아직 상장 확정 전이지만 AI 투자 지도가 소프트웨어에서 물리적 자동화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름이다.
대어급 상장이 이어지면서 AI 버블 논란은 오히려 더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요지는 AI 기대가 대형 기술주의 주가와 지수 집중도를 밀어 올릴 수 있지만, 신뢰가 조금만 흔들릴 경우 시장 조정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다.
하지만 버블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실물 투자의 크기가 너무 크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2026년 AI 관련 투자가 S&P 500 주당순이익 증가의 약 40%를 이끌 것으로 봤다. 또 별도 분석에서는 2026년 AI 관련 연간 자본지출을 7650억달러로 추정하고, 2031년에는 1조6000억달러까지 커질 수 있다고 제시했다. AI는 주가판 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데이터센터, 전력망, 반도체, 냉각 장비, 클라우드 장기계약으로 번지속도는 실물 투자다.
투자자에게 2026년 AI IPO 시즌은 매력적인 장면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동안 빅테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접근하던 AI 핵심 기업을 직접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어급 상장은 늘 두 얼굴을 가진다. 공모 첫날의 화려한 상승률은 뉴스가 되지만, 장기 수익률은 공모가 산정, 록업 해제, 내부자 지분 구조, 현금 소모 속도에 좌우된다.
스페이스X, 오픈AI, 앤스로픽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거대한 기업이다. 그러나 거대함은 곧 안전함을 뜻하지 않는다. 스페이스X는 우주와 AI라는 두 개의 고비용 산업을 동시에 품는다. 오픈AI는 브랜드와 생태계가 강하지만 거버넌스와 비용 구조를 설명해야 한다. 앤스로픽은 기업용 AI 성장성을 증명했지만 높은 평가액에 걸맞은 수익성을 보여줘야 한다. 데이터브릭스, 안두릴, 피겨 같은 후속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AI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각자의 손익 구조와 위험이 너무 다르다.
결국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예측보다 구분이다. 모델 기업과 인프라 기업, 데이터 플랫폼과 방산 AI, 로봇 기업을 같은 배수로 평가할 수는 없다. 공모가는 기대의 가격표이고, 상장 후 실적은 그 기대를 검증하는 시험지다. 지난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은 챗봇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를 봤다. 이제 시장은 더 차가운 질문을 던진다. 이 회사는 AI의 미래를 말하는가, 아니면 AI로 돈을 벌고 있는가.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