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에도 적용된 분양가상한제 둘러싼 논란, 단기적 분양가 안정 효과 vs 공급부족 불 보듯
손동우 기자
입력 : 2020.10.07 11:01:11
수정 : 2020.10.07 11:01:54
부동산 규제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분양가상한제가 7월 29일부터 민간택지에도 적용됐다.
서울 강남과 서초·송파·강동·마포·용산·성동·동대문·노원 등 18개 구 309개 동과 경기 과천·광명·하남 등 3개 시 13개 동이 적용 대상이다. 현재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등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어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는 영향력이 무서운 규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이 이 제도 하나로 크게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분양가상한제는 주택을 분양할 때 택지비(땅값)와 건축비(공사비)에 건설업체의 적정 이윤을 보탠 분양가격을 산정해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정한 제도다. 노무현정부 당시인 2007년부터 7년간 시행했던 분양가상한제는 공공·민간택지 모두에 적용했다.
이후 2014년부터 민간택지에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고, HUG가 보증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분양가를 간접 통제해 왔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당정협의를 거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민간택지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려면 일단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야 한다.
이 기준을 충족하면 ▲최근 1년 분양가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 ▲최근 3개월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 ▲직전 2개월 월평균 청약경쟁률이 5대1 초과 또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 청약경쟁률이 10대1 초과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된다.
다만 해당 시·군·구의 분양 실적이 없는 경우에는 해당 주택 건설 지역(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시·군)의 분양 가격 상승률을 사용하도록 했다. 정부는 관련 규정을 개선하면서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도 대거 늘렸다. 상한제 적용대상을 ‘시행 이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단지’에서 ‘시행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한 단지’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6년 만에 부활한 상한제로
정비사업 조합들 이해득실 따지기 바빠져
6년 만에 부활한 분양가상한제를 맞은 정비사업 조합들은 이해득실 따지기에 여념이 없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 3차·경남아파트 재건축)’,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등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 종료일을 하루 앞둔 7월 27일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신청을 마친 뒤 분양가상한제 적용가격과 HUG 승인가격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일각에선 분양가상한제가 HUG 규제보다 유리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이들 아파트보다 추후에 분양할 단지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에 따르면 감정평가사 다수에게 의뢰한 결과 HUG 규제에 따른 분양가 3.3㎡당 4891만원보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 분양가가 5500만원으로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이 의뢰한 감정평가사는 토지비를 산정할 때 표준지 공시지가의 2배로 계산했다.
아파트 분양가는 크게 건축비와 토지비를 합해 계산한다. 토지비는 감정가를 기반으로 한다. 기본 토지비에 가산비가 붙을 수 있지만 연약지반이나 암반지반 공사비, 특수공법 비용 등이기 때문에 난공사가 아니라면 분양가 계산에 큰 변수가 되긴 힘들다. 건축비는 기본형 건축비와 가산비로 구성된다. 기본형 건축비는 물가를 감안해 정부에서 고시하는 비용으로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조정된다. 가산비는 주택 품질 저하와 획일적 설계를 막기 위해 인정되는 비용이다. ▲홈네트워크 설비비 ▲법정 초과 복리시설 설치비용 ▲친환경건축물 인증비 등 주로 고급 사양을 시공할 때 붙는다.
결국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때 ‘변동값’은 기본 토지비와 가산 건축비라 할 수 있다. 특히 기본 토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분양가 중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 선으로 알려져 있다.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은 토지비를 주변 표준지 공시지가의 2배로 계산한 이유는 2007~2014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던 아파트 사례를 참고했다. 예를 들어 2014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은 래미안서초에스티지 전용면적 83.6㎡(대지지분 36.8㎡) 분양가격은 10억8800만원이었는데, 이 중 땅값이 8억1300만원으로 3.3㎡당 7290만원이었다. 주변에 비슷한 성질을 지닌 표준지(3종 주거지역) 공시지가가 3.3㎡당 2800만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약 260%를 인정받은 셈이다. 래미안대치팰리스, 서초푸르지오써밋 등 비슷한 시기에 분양한 아파트도 이 수준에서 땅값을 감정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비 산정방식이 관건
하지만 문제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을 때 토지비를 산정하는 방식이 예전보다 훨씬 깐깐해져 조합이 원하는 만큼 인정받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한 2개 이상의 감정평가법인이 재건축·재개발 사업 택지가격을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시행된 분양가상한제는 이들 감정평가법인이 책정한 가격이 적정한지를 한국감정원이 다시 심의하도록 만들었다. 만일 감정원이 해당 택지비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정한 감정평가법인은 토지가격 감정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감정원이 정부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인 만큼 상한제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땅값을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땅값 감정 기준도 바꿨다. 예전 법령은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애매한 문구로 돼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 법을 개정·시행하면서 ‘주변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하라’고 명시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국토교통부가 의뢰한 감정평가사가 정하고, 개별공시지가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근거로 지자체가 감정평가사에게 맡겨 산정한다. 표준지 공시지가를 바탕으로 한 택지비 평가 역시 국토부의 가격 통제력이 훨씬 강화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특히 정부는 감정평가 당시 미래 개발이익까지 반영하지 못하도록 해 가격 통제 수위를 더 높여 놨다. 지금까지 택지비 감정평가는 땅 매입과 조성에 들어간 비용을 보는 ‘원가 방식’과 주변 지역 거래 사례를 감안하는 ‘비교 방식’, 토지의 미래 가치를 고려하는 ‘수익 방식’을 적절히 섞어 이뤄졌다. 하지만 이젠 표준지 공시지가를 근거로 바꿔 원가 방식을 더 깐깐하게 적용하도록 하고, 수익 방식은 거의 쓰지 못하게 만든 셈이다.
실제로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이 계산한 결과 중에서 토지비를 주변 표준지 공시지가의 1.5배로 책정하는 순간 분양가는 큰 폭으로 떨어진다. 주변 표준지인 반포자이 땅값(㎡당 2130만원)의 150%로 책정되면 이 단지 전용 84㎡ 기본 토지비는 11억5000만원으로 예상된다. 이 평형 건축비를 공급면적 3.3㎡당 1000만원 안팎으로 예상한다면 3억4000만원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 분양가가 14억9000만원(3.3㎡당 4382만원)까지 낮아진다.
그나마 정부 일각에선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이 건축비를 계산한 과정도 높게 책정한 것 같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올 3월 기준 기본형 건축비(공급면적 3.3㎡당 633만6000원)를 고려하면 조합이 잡은 1000만원이 조금 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래미안대치팰리스와 서초푸르지오써밋의 3.3㎡당 건축비는 각각 630만원과 680만원으로 분양 당시 기본형 건축비(541만~553만원)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위례신도시 전경
결국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분양가격은 전적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인 감정원, 지자체가 구성하는 분양가 심사위원회 판단에 달렸다는 게 정비 업계 안팎의 분석이다. 정비사업 조합 측에선 분양가를 가늠할 수 없는 만큼 사업성 예측이 쉽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래미안 원베일리뿐만 아니라 둔촌주공 아파트 등 분양을 준비 중인 ‘후속 타자’들도 같은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강남권 일부 조합 중에선 분양가상한제를 선택한 뒤 후분양을 강행하겠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정부가 최근 공시가격을 급등시키는 만큼 분양이 이뤄질 2~3년 후엔 땅값을 많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물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주택 분양을 2~3년 후로 미룬다면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부분은 피할 수 없다.
반면 청약 대기자 입장에서 분양가상한제는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민간 분양가상한제의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히는 ‘로또 청약’에 대해서도 규제 칼날을 준비했다. 내년 2월부터 최대 5년에 이르는 거주의무기간을 도입한 것이다. 특히 의무 기간을 ‘최초 입주 가능일’부터 채우도록 규정한 부분이 눈에 띈다. 아파트 준공 직후부터 집주인이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아파트 수분양자들은 입주할 때 잔금을 내고 직접 살거나 임차인을 들여왔다. 하지만 개정된 법이 시행되면 집주인이 처음부터 직접 살아야 하기 때문에 청약을 넣기 전 상당한 고민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거주의무를 위반할 경우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만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주 의무기간 안에 이사를 가야할 경우엔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매입을 신청해야 한다. LH는 의무거주를 채운 기간과 정기예금 평균이자율 등을 따져 가격을 정해 매입할 계획이다.
▶전문가들 “장기 효과 검증 안 됐다” 주장
전문가들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단기적으로는 분양가를 안정시켜 부동산 시장 과열을 잠재울 수 있다고 인정한다. 문제는 장기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장은 집값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조합이 정비사업을 포기해 주택 공급을 막아 부작용을 가져올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실제로 국토부 통계누리의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 통계에 따르면, 2007년 9월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고 이듬해 아파트 물량은 ‘반토막’ 났다.
서울, 수도권, 전국 주택 인허가 실적에서 아파트 물량은 2007년 각각 5만28가구, 26만5454가구, 47만6562가구에서 2008년 2만1938가구, 13만421가구, 26만3153가구로 줄었다. 물론 2007년 수치는 분양가상한제 시행 직전 ‘밀어내기’ 분량이 쏟아진 결과이긴 했다. 하지만 이처럼 하락한 수치는 서울은 2010년, 수도권과 전국은 각각 2009년과 2015년에 이르러서야 분양가상한제 시행 전인 2006년 수준을 회복하거나 넘어섰다. 올해 7월 분양가상한제가 부활한 다음에도 서울 지역의 주택공급 절벽은 현실화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은 252가구로 지난해 1995가구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20년 안에 예정된 서울 아파트 청약도 민간분양 1곳, 공공분양 2곳에 불과하다. 민간분양은 오는 10월 예정된 강동구 고덕강일지구의 ‘힐스테이트 고덕’뿐이다. 반면 시장에서 주목을 받는 래미안 원베일리와 둔촌주공 재건축의 연내 분양은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공공분양은 11월 서울 강남·판교 출퇴근이 가능한 위례신도시에서 예정돼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따르면 위례택지지구 A1-5, A1-12블록이 분양을 한다. 실수요자라면 시세보다 저렴한 공공분양을 노려볼 만하지만 치열한 경쟁이 불 보듯 하다.
결국 상한제와 물량 공급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2008년엔 금융위기 등 다양한 대내외 경제 여건들이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미쳤고, 당시 미분양 주택들이 급격히 늘어 건설사들이 공급을 쏟아내기 어려웠던 사정도 있었다. 정부는 참여정부 당시 집값 폭등이 분양가상한제 때문에 안정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음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영향이라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