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동맹 관계인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90일 유예가 되기는 했지만, 일본은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상당 부분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미국에 1조 달러(약 1460조원)의 투자를 약속했고, 이시바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최대한 치켜세우는 ‘아부 외교’로 관세 문제에 있어서 유리한 위치에 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직후부터 미국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일본에 대해서도 ‘예외 없는’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오지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국 4월 2일 미국 행정부가 일본에도 24%의 상호관세 부여를 발표하자 일본 내부는 들끓기 시작했다. 동맹국에 대한 관세 부과가 지나치다는 것이 정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인식이다.
당장 무토 경제산업상은 “지극히 유감”이라며 “미국에 제외를 요청하는 등 끈질기게 필요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를 ‘국가재난’에 비유했다. 그는 “국난이라고 할 수 있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가능한 한 빨리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호관세는 일본이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와 철강, 소재 등에 폭넓게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미국 상호 관세가 일본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0.4%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했다. 다이와소켄도 미국 관세 인상으로 일본 실질 GDP가 최대 1.8%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관세 발표 이후 널뛰기를 하는 일본 주식·채권 시장 때문에 일반인들의 피해도 막심해졌다. 상호 관세 발표 이후 이시바 총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당장 4월 3일에 대책 마련을 위한 초당파적 협조를 얻기 위해 취임 후 처음으로 여야 당 대표 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교섭할 의사를 밝혔다. 이어 미국시간으로 4월 7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협상을 가졌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5년 연속 세계 최대 대미 투자국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일본 기업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트럼프에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 협의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일본은 무역에서 미국을 매우 나쁘게 대했다”며 “그들은 우리의 자동차를 사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의 자동차 수백만 대를 산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미·일 양국 정상의 전화 협의 뒤에 양국은 담당 장관을 지정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일본은 4월 8일 이시바 총리를 본부장으로 모든 내각 구성원이 참여하는 종합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첫 회의에서 그는 미국에 관세 조치의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할 것과 국내 대책에 온 힘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 일본은 양국 관세 협상을 이끌 담당 각료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상(장관)을 지명했다.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이시바 총리와 지역구가 돗토리현으로 같은 최측근으로 통한다. 이시바가 절대 끊지 못하는 것이 담배와 아카자와라는 말이 ‘나가타초(일본 정치 밀집지, 한국의 여의도 해당)’에 돌 정도다.
미국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을 후속 협의를 맡을 장관으로 정했다. 베센트 장관은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비관세 무역 장벽이 많다”며 “일본 대표단과의 협상은 결실이 많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다. 이러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4월 10일 결산설명회에서 “지금의 국제정세에는 무리가 있는 정책”이라며 “아마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산지의 국제 분업은 완전히 확립돼 있다”며 “미국이 (이익을) 전부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유니클로는 중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 북부 등으로 생산지를 분산해 관세 문제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상호 관세 유예를 위해 일본은 다양한 협상 카드도 준비하고 나섰다. 대미 투자와 함께 비관세 장벽 완화,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이미 외무성과 경제산업성 간부를 미국에 보내 협상 본격화를 위한 조율을 시작한 상황이다. 일본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포함한 에너지와 안보를 정책 패키지로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제2의 플라자 합의’ 얘기도 솔솔 나오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화 약세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일본 정부가 인위적인 엔화 강세를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거론되는 것이 일본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다. 현재 중국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여당을 중심으로 미국의 관세 조치와 고물가 대응 경제 대책으로 전 국민에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인당 3만~5만엔(약 30만~50만원) 수준의 현금 지급안이 부상하는 것이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의 경우 10만엔(약 100만원)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일본 정계는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현재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이 저조한 상황인데, 이러한 현금 살포와 같은 선심성 정책을 통해 표심을 다지려는 수단이라는 비난도 나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감세를 얘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감세의 경우 세법 개정에 시간이 걸리는 데다 세율을 한번 내리면 다시 되돌리기도 어렵다.
[이승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