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8%대 폭락과 서킷브레이커를 겪었다. 이튿날에는 역대 최대 상승폭으로 반등하며 직전 이틀간의 낙폭을 거의 되돌리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펼쳐졌다. 같은 시기에 비트코인은 지난해 10월 기록한 전고점에서 절반 넘게 빠지며 6만 달러 선을 맴돌았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91을 넘기며 2009년 집계 이후 사상 최고치를 찍었고, 기관 자금은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빠르게 빠져나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자산가들은 현시점을 확신을 갖고 베팅할 수 있는 장은 아니란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며 “주식시장의 활기로 수익은 높아졌지만 마음은 좀처럼 편치 않다”고 전했다.
변동성 장세가 길어질수록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산에 대한 갈증이 커진다. 그리고 그 갈증의 욕망이 손목 위 시계, 캐비닛 속 위스키, 거실 벽의 그림 등 취향과 향유의 공간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일상의 소비재를 재산으로 수집하는 컬렉터는 예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의 변화는 다르다. 과거 컬렉터블 럭셔리(Collectible Luxury·시간이 지나고 희소해질수록 오히려 가치가 오르는 고급 실물 자산)가 소수 마니아의 폐쇄적인 취미 영역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가격결정 과정이 금융화되며 투명해졌다. 하이엔드 시계 시장은 2차 시장 글로벌 지수가 정교해지며 특정 모델의 가격 추이를 주식 차트처럼 들여다볼 수 있게 됐고, 위스키나 와인 역시 파인 와인 인덱스 같은 트래킹 시스템(Tracking System·위치, 상태, 이력 등을 실시간으로 추적·관리하는 시스템)이 작동되며 캐스크 단위 투자가 가능한 영역으로 진화했다. 그런가 하면 미술품 시장에선 조각 투자 플랫폼이 등장하며 수십억원대 작품도 소액 단위로 쪼개 거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적인 수집이 추적 가능한 자산으로 바뀐 셈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곧 환금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팔고 싶을 때 적정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신뢰가 쌓이면서 컬렉터블 럭셔리는 더 이상 한 번 사면 못 파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요할 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거시경제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통화가치변동성이 장기화되면서 실물 자산에 대한 헤지 수요가 늘었다. 금과 은 등 전통적인 안전 자산이 주목받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컬렉터블 럭셔리는 실체가 있는 동시에 취향을 반영하는 대안 자산으로 부상했다. 단순히 가치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유하는 동안 사용하거나 감상할 수 있다는 효용까지 더해진다는 점에서 금이나 부동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여기에 부의 세대교체도 한몫하고 있다. 자산 승계와 부의 이동이 본격화되면서 MZ세대 자산가들이 빠르게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이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정보 접근에 익숙하고 조각 투자나 온라인 경매처럼 진입장벽이 낮아진 채널을 적극 활용한다. 동시에 이들에게 컬렉터블 럭셔리는 단순한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라이프스타일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컬렉터블 럭셔리에 대한 전망이 장밋빛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가품 리스크, 보관과 관리 비용, 거래 플랫폼의 신뢰도 문제, 그리고 여전히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낮은 유동성은 컬렉터블 럭셔리가 안고 있는 구조적 약점이다. 그럼에도 자산가들의 자산배분 전략에 컬렉터블 럭셔리가 편입되고 있는 현실은 주목할 만한 머니무브 현상이다. 진정 취향이 자산이 되는 시대가 시작됐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