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탄산수를 많이 마신다. 원래 천연 탄산수는 특정 지역에서만 나오는 광천수인데 요즘처럼 널리 퍼지게 된 데는 배경이 있다. 알고 보면 황당한 역사다. 중국 속설에 나라에서 정책을 세우면 백성은 대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심한 규제 때문에 나온 소리겠는데 사실 이게 꼭 중국 같은 나라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비슷한 부분이 있다. 엉뚱한 소리 같지만 탄산음료가 발달한 배경에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 1920년 미국의 금주령과 그에 앞서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약을 팔 수 없다는 약사법 개정이 작용을 했다. 탄산수와 탄산음료 유행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서부 개척 시대의 만병통치약 탄산수
지금은 탄산수를 물 대신 마실 뿐이지만 옛날에는 탄산수를 약수라고 믿었다. 땅에서 솟는 광천수온천에서 목욕을 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발포성 가스가 녹아 있는 약수인 광천수를 마시면 위장병을 비롯해 여러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탄산수를 몸에 좋은 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옛날부터 찾는 사람은 많았고, 탄산수가 나오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 언제나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 당연히 탄산수는 보통 물보다 값이 비쌌다.
탄산수가 돈이 되니 기술과 지식이 있는 발명가들이 인공 탄산수 개발에 뛰어 들었다. 천연 탄산수는 대부분 광물질이 녹아 있는 광천수로 여기에 발포성 가스도 함께 녹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광물질보다는 마시면 톡 쏘는 감각에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옛날 약사와 화학자들은 인공 광천수를 만들면서 발포성 가스를 물에 녹여 거품이 솟는 물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18세기 후반, 영국과 스웨덴 과학자들이 거품이 솟아나는 발포성 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최초로 인공 탄산수를 만든 사람으로는 영국의 화학자 조세프 프리스틀리로 탄산염에 산을 작용시켜 만들었다. 탄산수를 영어로 소다 워터(Soda Water), 소다수라고 하는데 가스를 만들어 내는 탄산염으로 주로 소다를 사용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인공 탄산수 개발은 처음 유럽에서 이뤄졌지만 꽃을 피운 것은 19세기 미국이다. 탄산수 제조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이민 오면서 미국에서 탄산수 판매가 활기를 띄기 시작했는데 아플 때 먹을 약 하나 변변히 없었던 서부 개척 시대에 탄산수가 약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 미국인들은 소화가 안 되거나 두통으로 머리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탄산수를 사서 마셨다. 당시 약사들은 탄산수의 맛을 더하기 위해 여러 향료를 섞어 팔거나 거품이 많이 나도록 많은 양의 탄산염을 혼합해 팔았다. 그리고 이런 탄산수를 마시면 두통이 더 심해져서 두통을 없애려고 환자들이 약국을 찾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약사들은 다양한 비법으로 탄산수를 만들었다. 탄산수에 맛을 내고 효과를 높이려고 별별 물질을 다 넣었는데 심지어 코카인이나 아편 같은 마약까지도 넣었다. 별다른 제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탄산수가 약이 아닌 청량음료, 즉 탄산음료로 변신해 발달하는 계기가 생겼다.
▶술을 대체할 자극적인 음료
1914년 해리슨 법(Harrison Act)이라는 약사법이 제정됐다. 그 결과 의사의 처방전 없이 코카인이나 아편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팔지 못하게 됐다. 약으로써 탄산수 판매가 제약을 받았기에 소화제, 두통약으로서 탄산수 역할은 줄어든 반면 톡 쏘는 맛의 시원하고 달콤한 맛의 탄산음료로서의 기능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런 차에 탄산수가 탄산음료로 바뀌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생겼다. 1920년에 시작된 미국의 금주령이다. 모든 알코올음료의 생산과 판매가 중지되자 술을 대신할 다른 음료가 필요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한테 대신 주스를 마시라고 해봤자 별로 설득력이 없었기에 술을 대체할 자극적인 음료가 필요했는데 그나마 탄산이 들어 있어 톡 쏘는 탄산음료가 안성맞춤이었다.
금주령으로 술집이 문을 닫으면서 성인 남자들이 약국의 탄산음료 판매대로 모여들었고 엉뚱하게 약국이 술집 대신 성인 남자가 사회적 교류를 나누는 사교의 장소로 변했다. 그러면서 약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탄산음료가 발달하게 됐다. 청소년들이 주로 마시는 탄산음료의 발달이 얼토당토않게 미국 약사법 개정과 금주령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이 뜬금없는데, 알고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탄산음료의 역사 자체가 대부분 엉뚱하기 그지없다.
예컨대 코카콜라를 처음 만든 사람은 존 펨버튼이라는 미국 퇴역군인이다. 남북전쟁 때 부상을 당한 펨버튼은 모르핀 없이는 살 수가 없었기에 위험한 마취제를 대신할 물질을 찾다가 코카 나뭇잎과 콜라 열매의 추출물로 음료를 만든 것이 코카콜라의 시작이다. 때문에 코카콜라 역시 처음에는 약으로 판매됐다.
콜라 못지않게 뜻밖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청량음료 환타다. 최초의 환타 원료는 치즈와 버터를 만들고 남은 우유 찌꺼기, 사과술을 만들고 남은 사과 찌꺼기였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시원하게 마시는 탄산음료지만 한때는 음식 맛을 내는 조미료로도 쓰였다. 환타에는 이렇게 뜻밖의 사실들이 담겨 있는데 따지고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세계사, 과학사, 경제사의 단편들일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코카콜라는 이미 독일 시장에 진출해 독일인에게 사랑을 받는 탄산음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미국 본사에서 수입해 오던 콜라 원액의 독일 공급이 중단됐다. 이어 1941년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나치 독일 정부는 유럽 점령지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을 모두 몰수했다. 그러면서 코카콜라 독일법인 책임자였던 막스 카이트라는 사람을 압수한 코카콜라 재산관리 책임자로 임명했고, 전쟁물자로 탄산음료를 만들 것을 명령했다. 때문에 막스 카이트는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원료, 그것도 다른 전쟁물자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원료를 찾아야 했는데, 이때 찾아낸 것이 우유 찌꺼기인 유장과 사과술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였다.
유장은 우유에서 치즈와 버터를 만들고 남는 노랗고 맑은 액체로 오렌지 맛이 난다. 사과에서 즙을 짜내 술을 만들면 찌꺼기에도 사과의 섬유질이 남는데 이것을 이용해도 사과 맛의 음료를 만들 수 있다. 최초의 환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환타가 탄산음료가 아닌 조미료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환타는 어린이들이 마시는 음료수인 만큼 단 맛을 내는 것이 필수다. 때문에 전쟁 중 독일에서는 설탕을 배급제로 철저하게 통제했지만 환타를 만들 때는 어느 정도 설탕을 첨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전쟁 말기,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독일국민은 물자부족에 시달렸다.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사탕수수 수입이 끊겨 설탕은 아예 배급이 중단됐다. 그러자 독일 주부들은 단맛을 내기 위해 쉽게 구할 수 없는 설탕 대신 환타로 조미료를 대신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탄산음료가 조미료로 변신한 배경이다.
또 다른 청량음료 사이다는 이름에 뜻밖의 역사가 있다. 사이다(Cider)는 원래 사과술, 혹은 사과즙이라는 뜻이다. 톡 쏘는 맛의 탄산음료, 청량음료라는 의미는 전혀 없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엉뚱하게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을까?
먼저 탄산음료를 뜻하는 사이다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단어다. 니케이 디자인 잡지에 의하면 1868년 영국 무역회사가 요코하마에서 샴페인사이다라는 음료를 판매했는데 이것을 줄여 부른 것이 ‘사이다’라는 말이 생긴 배경이라고 한다.
샴페인사이다의 정체는 탄산음료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사과술로 만든 발포성 알코올음료, 그러니까 스파클링 와인 종류다. 여기까지는 사이다라는 이름이 제대로 쓰였다. 하지만 샴페인사이다를 줄여 사이다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사과술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톡 쏘는 성분만 강조됐다. 그러다 1899년 요코하마에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음료인 탄산음료가 처음 선보였다. 이때 톡 쏘는 음료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에서 사이다라는 상표를 붙였고 이 음료가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팔리면서 사이다가 사과술 대신 탄산음료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우리나라에는 한일병합 이전인 1905년, 조선 거주 일본인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탄산음료가 처음 들어왔다. 그리고 광복 때까지 일본인들이 탄산음료를 독점생산하면서 역시 사이다가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 여름 더위만큼이나 핫(Hot)하게 엉뚱한 탄산수와 탄산음료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