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중국 선전에 위치한 드론 업체 DJI 본사 1층. 이 회사 관계자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터라 잠시 앉을 공간을 찾던 중 1층 구석에 있는 커피숍을 발견했다. 커피숍 이름은 ‘루이싱커피(咖㗑·Luckin Coffee)’. 언론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중국판 스타벅스’라고 평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외관상 받은 첫 느낌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얼핏 보기에 10~15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 바리스타 1명이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커피숍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루이싱커피 매장에서 아이스 카페라테를 주문하려고 하자 바리스타는 대뜸 “첫 방문이냐”고 물으며 모바일에서 루이싱커피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 받으면 “첫 잔이 공짜”라는 말을 건넸다. 무료 커피를 손에 쥐기까지는 2~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며 루이싱커피에 대해 모바일 검색을 하던 중 DJI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루이싱커피 매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매장에서 주문이나 결제도 하지 않은 채 미리 준비된 커피 네 잔을 받아들고 곧장 사라졌다.
호기심에 카페를 다시 찾아 주문 시스템에 대해 물었다. 이 바리스타는 “절대 다수의 손님들이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과 결제를 진행하고, 테이크아웃을 하거나 배달을 받고 있다”며 “대부분 할인 쿠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커피 가격이 저렴하고, 앱 주문 뒤 18분, 배달의 경우 30분 이내에 커피를 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매장에서만 하루 적게는 200잔, 많게는 500잔 정도의 커피가 팔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매장을 방문했던 다음날 스마트폰 문자를 통해 42% 할인 쿠폰이 도착해 있었다. 루이싱커피에서 카페라테 한 잔(중간 사이즈 기준)의 정가가 24위안(약 4110원)인 점을 감안하면 할인 쿠폰을 이용해 약 14위안(약 2400원)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같은 종류와 크기의 커피를 스타벅스에서 마시려면 31위안(약 5300원)을 내야 한다. 루이싱커피가 스타벅스에 비해 절반 이하의 커피 가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가격이 싸다고 맛이 떨어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지만 적어도 중국인들은 루이싱커피의 맛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궈타이증권연구소는 20~55세 50명을 선별해 스타벅스, 루이싱커피, 세븐일레븐 편의점 등 세 곳에서 판매하는 무가당 카페라테를 안대를 쓰고 시음하도록 했다. 그 결과 28명(56%)이 루이싱커피를 ‘가장 맛있는 커피’로 선정했다. 스타벅스 커피와 편의점 커피를 선택한 사람은 각각 18명(36%), 4명(8%)이었다.
최근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중국 커피 시장을 놓고 루이싱커피가 스타벅스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발 주자인 루이싱커피가 1999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한때 점유율 75%(2016년)를 차지했던 스타벅스의 경쟁상대로 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적당한 맛과 싼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싱커피의 행보를 살펴보면 ▲규모의 경제 우선주의 ▲현대 중국인의 심리 공략 ▲모바일 플랫폼 전략 등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이싱커피는 2017년 10월 베이징 갤럭시소호에 1호점을 내며 영업을 시작한 신생 커피 브랜드다. 하지만 올해 6월 25일을 기준으로 루이싱커피는 중국 전역 28개 도시에 2698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설립 이후 ‘20개월’ 동안 매달 135개씩 새로운 점포를 오픈한 것이다.
루이싱커피는 오는 2021년까지 1만 개의 매장을 오픈해 스타벅스를 넘어설 계획을 갖고 있다. 루이싱커피가 공격적으로 매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중국 커피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 전략’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시장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가성비를 앞세워 충성 고객 수를 확보하게 되면 안정적인 수익 창출과 함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치엔 대표는 루이싱커피를 만들기 전 차량공유업체인 ‘선저우요우처’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했다. 치엔 대표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커피든 차량 공유 서비스든 일정 이상 사업 규모(시장)를 점유하고 있지 않으면 중국에서 생존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루이싱커피는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수익을 우선순위에서 잠시 뒤로 미뤘다. 루이싱커피는 사업 2년차였던 지난해 매출총이익 8억4000만위안(약 1440억원), 당기순손실 16억1900만위안(약 277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매출총이익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4억7000만위안(약 805억원), 5억5000만위안(약 942억5300만원)이었다. 당기순손실이 크게 발생한 이유는 매장을 빠르게 늘리면서 광고선전비, 매장 시설 관련 감가상각비, 임차료, 급여 등 판매비와 관리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신생 루이싱커피의 누적 적자 부담을 염려하고 있지만 루이싱커피는 자금 압박을 덜기 위해 지난 5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으며, 매장 운영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손실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궈타이증권에 따르면 루이싱커피 단일 매장의 하루 평균 운영비용은 작년 1분기 2650.9위안(약 45만4280원)이었지만 올해 1분기 1646.9위안(약 28만2230원)으로 1년 새 37.8% 줄어들었다. 각 매장에는 1~2명의 바리스타만 두고, 일련의 주문 과정은 모바일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진행하면서 매장 운영의 초슬림화를 꾀하는 동시에 중국 전역으로 매장을 마치 거미줄 치듯 늘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루이싱커피는 바쁜 중국 젊은이들의 심리를 파고 들었다. 전체 매장의 80% 이상을 오피스동이나 직장인 밀집 지역에 오픈해 루이싱커피의 존재를 우선 각인시키고, 가성비가 뛰어난 커피를 제공하면서 시간에 쫓기는 이들을 모바일 앱 간편 주문과 배달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서비스’로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으로 중국 커피 시장에서 단숨에 2위로 뛰어오른 루이싱커피에 자극받은 스타벅스는 지난 7월 12일 베이징 금융가에 테이크아웃과 배달 서비스 전문 매장 ‘스타벅스 나우(Starbucks Now)’를 열었다. 지난 19년 동안 중국 시장에서 매년 10~30%씩 성장세를 이어오던 스타벅스는 작년 4분기 매출 역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루이싱커피가 철저히 모바일 플랫폼 전략을 쓰면서 단순 커피 브랜드가 아닌 ‘IT 융합 기업’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루이싱커피는 자사 앱을 통해서만 주문을 받고 있고, 원활한 모바일 사업 운영을 위해 전체 5000여 명의 직원 가운데 2600여 명을 기술자로 둔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중신증권은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를 통해 플랫폼 사업자가 됐듯이 루이싱커피는 커피를 매개로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를 꿈꾸고 있을 것”이라며 “일단 가입자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새로운 부가가치로 사업 외연을 손쉽게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장과 이용자 확대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루이싱커피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중국 커피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워낙 커 루이싱커피도 수혜를 입을 것이란 낙관론이 우세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누적 적자의 부담 탓에 지금까지의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가지 못할 것이란 신중론도 공존하고 있다. 궈타이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0.13㎏으로 미국(10.4㎏)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나아가 작년 중국의 커피 소비 증가율은 세계 평균 증가율(2%)보다 10배 높은 20%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