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앤드류 공군기지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1호기(에어포스 원)가 뜨고 내리는 곳이다. 항공기 여행이 잦은 미국 대통령으로선 출입이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골프 때문이다. 앤드류 기지에는 18홀 짜리 정규 골프코스가 세 개 있다. 현역·예비역 군인을 위한 레저시설이지만 대통령들이 워낙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골프를 즐겨왔기 때문에 ‘대통령의 골프장’으로 더 유명하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백악관과 가깝다는 것이다. 차량을 이용하더라도 백악관에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게다가 군 기지 내에 위치한 골프장인 만큼 경호가 용이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틈만 나면 앤드류 기지를 들러 골프를 즐겨왔다. 특히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후부터는 왕래가 더욱 잦아졌다. 올 상반기에만 서른 번 이상 라운딩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8년 취임 이후 최다 기록이다.
핸디캡 17의 실력을 갖춘 오바마 대통령의 골프 습관은 매우 소박한 편이다. 골프를 칠 때 즐겨 입는 크림색 모자와 카키색 반바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날씨도 안 따진다. 지난 6월 초 캘리포니아 랜초미라지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이틀 연속 골프를 쳤다. 그러나 아무리 소박해도 대통령은 대통령인 법이다. 대통령이 골프장에 등장하면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오바마의 골프 행차는 특정 코스가 갑자기 폐쇄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앤드류 공군기지에는 웨스트, 이스트, 사우스 코스가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사우스 코스다.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항상 똑같은 코스에서 골프를 치지는 않는다. 일단 코스를 폐쇄하면 그 다음 절차는 수색이다. 비밀경호국(SS) 직원과 헌병이 클럽하우스 주변에 ‘갇혀’ 있는 골퍼들을 상대로 몸수색을 실시한다. 탐색견을 데리고 코스 주변도 샅샅이 뒤진다.
대통령이 도착했다고 해서 라운딩이 곧장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1번 홀에서 30분 정도 연습 샷을 하고 라운딩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1번홀 티 박스 양쪽에는 노란색 연습공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때쯤 클럽하우스 주변에 ‘갇혀’ 있는 골퍼들의 시선은 온통 대통령에 모아진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의 스윙 폼은 평생 기념할 만한 구경거리다. 그러나 대통령의 골프 행차 때문에 골퍼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나다. 대통령을 위해 코스 하나를 예고 없이 폐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예약 물량을 나머지 두 코스에 몰아넣다 보면 예약한 티타임과 무관하게 2~4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그린피를 환불해주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라운딩을 시작하고 40분쯤 지나면 다시 코스가 오픈되지만 ‘민폐’는 계속된다. 대통령의 골프팀에는 ‘군식구’가 많다. 통상 2인승 카트 8대로 이뤄지는데, 이 가운데 6대가 경호원 등 수행원 몫이다. 진행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또 대통령 주변에는 항상 일정 공간을 비워둬야 하기 때문에 뒤에 쫓아가는 팀은 자주 플레이를 멈추게 된다.
이처럼 민폐를 끼치는 대통령이지만 막상 불만을 터뜨리는 골퍼는 없다. 군 골프장이라고 하지만 회원이 되려면 연간 수천달러를 내야 한다. 어찌 보면 대통령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인데도 군말이 없다.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평일에도 대놓고 골프를 즐기지만 언론이 시비를 거는 일이 없다. 지난 2월 오바마 대통령이 ‘골프황제’ 타이즈 우즈와 함께 골프를 쳤다가 백악관 기자실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일이 있다. 일정을 기자단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며칠 뒤 ‘대통령을 괴롭힐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다’며 기자들 스스로 비판을 멈췄다.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에 걸맞는 비판을 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에선 대통령(President)과 대통령직(Presidency)의 구분이 뚜렷하다. 하다못해 골프장에서도 그렇다.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비판하지만 대통령직이 가진 권위는 철저히 존중해준다. 공개석상에서 예의에 벗어난 언행을 했다가는 ‘사회적 매장’감이다. 호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가장 낮춰 부르는 호칭은 ‘오바마’도 아닌 ‘미스터 오바마’다. 자기 대통령을 비하하는 것은 자기 나라와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미국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