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쩍하지 않던 엔화가 연초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관세로 인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던 4월 8일 100엔당 1018원까지 오른 후 다시 950원대로 떨어졌지만 엔화의 상승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100엔당 800원 대의 엔화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지 이제 일본에서도 물가가 꿈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중앙은행(BOJ)이 더이상 초저금리를 고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에 엔화가 달러화와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만 있었다면 이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불가 관세 정책에 따라 가끔씩 달러화가 흔들리는 시점에서 초안전자산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됐다. 게다가 일본 내 물가 인상으로 인해 언제든 일본 정책금리가 오르고 엔화가 절상될 가능성도 있다.
달러화나 엔화와 같은 외국 통화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는 포트폴리오 전체 수익률 안정 관점에서도 나온다. 내외부 악재로 인해 주식시장이 하락할 때 환율은 오르게 된다. 보통 코스피 하락은 외국인들의 자금 유출과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환율은 오르게 된다. 주식 시장 하락 국면 때마다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하락장에서 가치가 상승하는 달러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엔 글로벌 증시 하락장에서 달러화가 상승했지만 요즘은 엔화 가치 상승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특히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가 나올 때마다 아시아 증시는 큰 폭으로 조정되고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주식 비중이 높은 사람이라면 일정 부분 엔화를 들고 갈 필요가 있다.
엔화는 올들어 달러화보다 훨씬 상승 폭이 컸다. 미국은 기준 금리 인하를 지난해부터 시작했지만 일본은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BOJ는 2025년 1월 기준금리를 0.25%에서 0.5%로 인상해 기준금리는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내 인플레이션 상승과 임금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기 둔화와 무역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속적인 금리 인하를 예고한 바 있다. 금리가 오르면 통상적으로 화폐 가치는 올라간다.
오랫동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해왔던 일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2024년 7월 100엔당 850원대까지 내려간 엔화는 2025년 4월엔 1000원대를 돌파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과 달러화의 약세 전망이 겹치면서 엔화는 안전자산으로서의 매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최근 들어 달러 인덱스가 하락하는 추세여서 달러화보다는 엔화의 보유 매력이 더 커질 수 있다.
달러인덱스는 103.94로 1월 13일 109.81에 비하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달러화 가치가 다른 주요국 통화에 크게 내려갔다는 의미다. 달러인덱스는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대비 한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표시하는 지표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는 유럽연합(EU)의 유로, 일본의 엔, 영국의 파운드, 미국의 달러, 노르웨이의 크로네, 스위스의 프랑을 말하는데 유럽 경기가 살아나고 일본의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되면서 달러인덱스는 하락하고 있다.
다만 엔화는 통화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는 있지만 달러화처럼 높은 이자까지 받을 수 있는 상품은 없다. 현재 일본 기준금리가 0.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TIGER 일본엔선물이 엔화에 투자할 수 있는 ETF이며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고 싶다면 PLUS일본엔화초단기국채 ETF가 있다. 일본 재무성이 발행하는 채권 중 3개월 이내의 초단기 국채에 투자하는 환노출형 ETF다. 엔화에 투자해 절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일본 금리 상승 흐름에 따라 채권 이자 수익 확대까지 함께 노려볼 수 있는 상품이다. 채권형ETF로 세제 혜택이 있는 모든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다. 퇴직연금 DC형과 IRP형 계좌로 투자할 수 있는 엔화 투자 ETF다. 만기가 짧은 일본 국채에 투자하는 만큼 만기가 긴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과 비교해 가격 변동 위험이 적다. 금정섭 한화운용 ETF사업본부장은 “세제 혜택이 있는 모든 계좌에서 100% 투자가 가능한 만큼, 원화나 달러화 자산에 집중되기 쉬운 국내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엔화로의 자산 배분을 원한다면 최적의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의 변동성에 주목한 투자자를 위한 환율 기반 상품으로는 ▲’한투일본엔선물 ETN’ ▲’한투 S&P 엔달러선물 ETN’이 있으며, 각각 레버리지(2배) 및 인버스(-2배) 구조의 상품도 함께 제공되고 있다. 이는 일본 증시와 환율에 동시 노출되는 투자자들이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춰 유연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유행하는 엔화투자는 미국지수에 엔화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미국지수에 투자하면서도 달러화 상승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엔화 상승에 노출되는 방식이다. 달러화는 이미 많이 올라 더 오를 여지가 없지만 엔화는 더 오를 여지가 많다고 생각할 때 적합한 상품이다. 미국 증시나 국채가격의 상승을 기대하는데 달러화 가치는 하락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에게 알맞다.
ETF 종류로는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 H)이 있다. 미국 지수에 투자하는 SOL 미국S&P500엔화노출(H), RISE 미국S&P500엔화노출(합성 H)도 있다.
일본증시에 상장된 ETF 중에서 지난해 한국 투자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ETF는 아이셰어미국채장기채ETF(2621)였다. 이 ETF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국채장기채ETF(TLT)와 구조는 비슷하지만 일본 증시에 상장되어 있고 환헤지 상품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러화는 약세가 되지만 엔화는 강세가 되는 상황이라면 TLT에 투자할 때는 환손실을 보지만 2621에 투자할 때는 환차익을 볼 수 있다.
물론 엔화 가치가 빠른 시일 내 오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존재하기에 당장 BOJ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팽배하다. 그러나 관세 협상이 일정 수준 이뤄질 무렵인 여름철 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은 크다. 달러엔의 1차 지지선은 달러 당 140엔으로 2023년 중반부터 지금까지 지켜져왔던 지지선이다. 그러나 달러엔이 해당 수준을 하회할 경우 2차 지지선인 달러당 130엔까지는 빠른 속도로 내려갈 수도 있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시장의 연내 인상 기대가 소멸됐으나 여전히 1회 추가 인상을 전망한다”면서 “관세에 대한 통화정책 민감도가 높아졌지만, 인플레이션 오름세는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 타이트한 노동시장, 식품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하면 기저 인플레이션 압력은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 실질 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 수준이라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시장도 실업률 하락이 지속되는 등 타이트한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 쌀을 중심으로 한 식품 가격 상승이 가계의 기대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기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위험도 상존한다.
일단 5월 1일 BOJ가 기준금리를 0.5%로 동결한 이후 엔화 상승세는 주춤한 상황이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긴축기조가 끝난게 아니라고 밝히며 ‘매파적 금리 동결’신호를 보냈지만 일본 경제의 구조적 원인을 감안하면 엔화 가치가 바로 오르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먼저 관세 불확실성이 성장률 리스크로 작용하는 만큼 추가 인상 시점은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7월까지 트럼프의 상호관세의 강도를 예단하기 어렵고, 대내적으로 참의원 선거(7월13일)도 예정되어 있어 금리인상을 단행하기 부담스러운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경제의 저성장에다 일본 은행이 여전히 ETF 자산 매각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시장은 일본의 정책 변화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측면도 있다. 아베노믹스 당시 BOJ는 막대하게 ETF를 매입해왔는데 이를 시장에 내놓으면 증시가 크게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많다.
이처럼 엔화 상승세도 주춤한 상황이다보니 이자 매력이 덜한 엔화 대신 여전히 달러화 투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달러화 투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달러 예금이다. 미국 달러(USD)로 입금하고 보관하는 외화 예금 상품인데 은행에서 쉽게 가입할 수 있다. 외화 금리가 원화보다 높다는 장점이 있으며 이자소득세로 과세된다. 외화예금은 ISA 계좌에 담을 수 없어 절세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
ETF를 통하면 보다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다. 달러화 선물을 담은 ETF를 사는 방식으로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는 타이밍을 잘 잡아 투자하기에 편리하다. 다만 매매차익(달러화 가치 상승분)에 대해서 배당소득세로 과세되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파생상품인 외화 선물을 담고 있어서 퇴직연금 계좌에도 담을 수 없다. 더구나 보통 달러선물에 투자하기 때문에 부수적인 비용도 더 있기 마련이다. 현재 KODES 미국달러선물의 경우 실부담비용률(연간)은 0.39% 정도다.
오히려 달러화 환율이 올라가는 편에 베팅하고 싶다면 SOFR금리를 주는 달러ETF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SOFR 금리는 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의 약자로, 담보부익일물 금리를 의미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준금리 중 하나로 달러예금이자율 산정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4월 말 기준으로 SOFR 금리는 4.4%로 제1금융권 예금 금리의 거의 두배에 가깝다.
SOFR 금리에 투자하는 ETF는 정해진 기간 동안 돈이 묶이는 외화 예금에 비해 단기 자금 운용이나 현금 대기 전략(파킹형)에 적합하다.
[김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