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몇 해 전 미국으로 유학생 송금을 하는 한 가정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미국에 있는 자녀에게 매달 학비를 송금하던 집이었다. 송금은 늘 번거롭고, 수수료는 만만치 않았다. 은행 창구에 서서 여러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돈이 실제로 도착하기까지는 사흘이 넘게 걸렸다. 건당 수수료만 해도 5만원 안팎이니, 1년이면 수백만원이 수수료로 나갔다.
이 가족이 어느 날 처음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했을 때의 놀라움은 컸다. 휴대폰 화면 몇 번 누르는 것으로 불과 10분 만에 미국에 있는 자녀 지갑(wallet)으로 돈이 도착했고, 수수료는 1%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처음엔 신기했는데, 이제는 이게 더 자연스럽다”고 했다. 돈을 보내는 방식 하나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전통적 해외송금은 은행 간 네트워크(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를 거치며 여러 중계은행을 통과한다. 과정이 길고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위에서 지갑 간 직접 전송이 가능하다. 국경이라는 장벽이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예컨대 2000달러를 보낼 때 은행을 이용하면 3영업일, 수수료는 약 6만원이 든다.
그러나 테더(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10분 안에 송금이 끝나고 수수료는 2000원 안팎에 불과하다. 속도와 비용 두 가지 면에서 혁신적 절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편리함이 곧바로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테이블코인 송금이 빠른 만큼, 송금인의 신원 확인(KYC: Know Your Customer), 자금 출처의 적법성, 수취인의 정당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을 경우 자금세탁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적발된 불법 환치기 사건들은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겉으로는 무역 대금을 결제하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실상은 암호화폐를 통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린 뒤 현지에서 현금화하는 방식이다. 거래는 10분 만에 끝나지만, 그 돈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 추적하지 못한다면 자금세탁방지(AML) 측면에서는 큰 위험 요인이 된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스테이블코인을 ‘고위험 자산’으로 분류했다. 국경을 초월하는 즉시성이 자금세탁, 제재 회피, 테러자금 조달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를 기록으로 남긴다. 전통 금융보다 오히려 추적이 용이하다는 역설적 장점이 있다.
따라서 관건은 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 실시간 모니터링과 탐지를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트래블 룰(Travel Rule) 적용, 준비자산 실시간 증명, AI 이상 거래 탐지 같은 기술은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들이다.
송금을 담당하는 은행 직원이나, 스테이블코인 서비스를 고민하는 핀테크 실무자가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고민은 분명하다.
1. 합법적 경로 확보: 스테이블코인 송금이 기존 외국 환거래법, 특정금융정보법과 충돌하지 않도록 절차를 갖춰야 한다.
2. AML 체크리스트: 송금인 신원 확인, 수취인 확인, 자금 출처 검증을 기본적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3. 국제 정합성: 한국의 규제만이 아니라, 수취 국가의 규제와도 정합성이 맞아야 한다.
이 세 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편리함은 금세 위험으로 변한다.
송금 사례는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사람들은 빠르고 싸게 돈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국가와 금융당국은 그 돈이 범죄와 연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편리함과 신뢰 사이의 균형, 바로 이것이 스테이블코인 시대의 가장 큰 과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국경을 넘어 돈을 보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가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송금이라는 단순한 행위가, 사실은 국제 규제와 금융 기술의 최전선이 되고 있는 셈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여러 활용 중에서도 해외송금 사례에 집중해 보면서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불편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힘, 그리고 동시에 따라붙는 자금세탁방지(AML)의 과제를 함께 짚어보았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는 송금 문제를 넘어, 기업 결제, 회계 처리, 세금 문제 등으로 확장되는 스테이블코인의 실제 모습을 다뤄볼 예정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편리함과 신뢰를 동시에 추구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정지열 한양대 교수
한국자금세탁방지연구소 소장이자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자금세탁방지(AML)와 금융범죄 예방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학문적 연구와 함께 금융당국, 국제기구, 민간 금융기관 등에 자문을 하며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