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코스피 종가는 3210선으로 마감했다. 7월 초 3년 6개월 만의 3000선을 회복하고 3200선을 두고 숨 고르기에 나선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상호관세 충돌로 급락했던 지난 4월의 충격을 생각하면 반등은 더 놀랍다. 불과 3개월 만에 지수가 30% 넘게 뛰어올랐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는 명백히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이 급등세의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한국 증시가 일본·대만 등 아시아 주요국에 비해 구조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온 현실에 대해 정치와 시장 양측에서 본격적인 해결 의지가 나타난 점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더해 글로벌 유동성 확대에 대한 기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사, 달러 약세 국면까지 맞물리며 외국인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시장에서는 벌써 ‘3000 이후’를 향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일부 증권사는 코스피 상단 전망을 상향 조정했고, 심지어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2년 내 코스피가 5000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시장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그들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궤도에 오르고, 제도적 개편이 실효를 거두면 코스피는 현재보다 50% 이상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 증시가 ‘성장 잠재력의 사각지대’에 있던 시절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밸류에이션 재평가 국면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전망은 곧 기대이자 과제다. ‘5000시대’로 가기 위해선 단순한 주가 반등을 넘어 보다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단기적인 호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투자 환경 조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랠리에서 주목할 지점은 상승의 근거가 단순히 수급이나 매크로 환경이 아니라 ‘입법 모멘텀’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증시 개혁 3종 세트’가 빠르게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상법 개정안이다. 이사회 구성의 투명성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명문화한 조항이 이미 통과되며 기업의 지배구조가 한 단계 진전됐다.
둘째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다. 현재 국회에는 자사주를 취득한 뒤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하는 법안이 줄줄이 올라와 있다. 여권은 이를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이다. 발의안들을 살펴보면 취득 후 6개월, 1년, 3년 이내 소각 등 소각 기한에만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자사주 보유의 원칙적 금지를 명시했다. 더는 자사주를 ‘사금고’처럼 보유해 인적분할, 우호세력 제공 등 편법으로 활용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틀을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추진이다. 낮은 배당성향과 고세율 구조가 기업 배당을 위축시키고, 이는 다시 주가 저평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조치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배당성향 35% 이상인 기업의 배당소득에 대해 기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신 별도 분리과세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수 감소 우려가 있지만, 주가 상승과 양도세 수입 증대로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러한 일련의 입법 흐름에 대해 하나증권의 이경수 연구원은 “지금까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설명 변수는 주주환원 정책의 부재였다”며 “정부가 개입을 통해 이 부분을 적극 개혁하고 있어, 향후 PER 12배 수준의 코스피 4000도 현실 가능한 숫자”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의 해소도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줬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빠르게 추진된 상법 개정안, 대통령의 거래소 방문 및 직접적인 주주환원 발언 등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의 방향성을 명확히 전달하는 계기가 됐다. JP모건은 이를 두고 “명백한 초당적 개혁 지지”라고 평가하며,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상향했다.
하지만 모두가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시장에선 여전히 코스피가 추가 상승하려면 반드시 실적 개선과 외국인 자금 유입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신중론이 고개를 든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상장사 191곳의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는 6개월 전보다 6.4% 하향 조정됐다. 기대를 모았던 AI 반도체 업종에서도 일부 기업의 수익성 정체가 나타나면서 증시의 ‘기초체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외국인 자금 유입 역시 생각보다 더디다. JP모건은 “올해 외국인의 순매수는 2024년 초와 비교해 둔화된 상태”라고 지적하며, “이는 투자자들이 단기 상승에 추격 매수하기보다 더 나은 진입 시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증시를 견인하고 있는 ‘개혁 법안’들도 실제 국회에서 모두 통과될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여야 간 입장 차는 물론, 경제계 일부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대해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제 기업이 자사주를 과연 사겠느냐”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 유인이 줄어든다면, 자사주 소각 기대감에 오른 주가 역시 되돌림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함이 요구된다. 즉, 정책이 의도를 실현하려면 시장과의 ‘속도 조율’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너무 빠르면 충격을, 너무 느리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이은택 KB증권의 연구원은 “지금의 증시 강세는 정책 개혁에 대한 기대가 주도하고 있으며, 실현 가능성과 실적 개선이 함께 증명되어야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의 증시 개혁 드라이브는 단지 지수 상승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코스피 5000이라는 목표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외국인의 눈높이를 맞추며, 자본시장을 실질적인 국민 자산 형성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정치적·경제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배당소득 분리과세다.
한국 증시는 유독 배당에 인색한 시장이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국내 상장사의 평균 배당성향은 26%. 미국(42.4%)이나 일본(36%)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금융소득과 배당소득이 합산되어 종합과세되다 보니, 연간 배당이 2000만원을 넘는 순간 최고 49.5%에 달하는 세율이 적용된다. 특히 최대주주 입장에서는 배당을 늘릴 이유가 전혀 없는 셈이다. 그 결과 기업은 배당 대신 자사주 매입에 집중했고, 투자자는 배당보다 차익 실현에만 몰두하는 단기 매매 위주의 시장 문화가 고착화되었다.
이 구조를 깨기 위한 것이 바로 분리과세다. 정부는 최근 “주식투자를 통한 자산 형성을 제도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며 분리과세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핵심은 배당성향이 일정 수준 이상(35%)인 기업에 한해 별도의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부자 감세’가 아니라, 배당을 통해 투자자에게 수익이 돌아가는 선순환을 만드는 인센티브 설계라는 게 정부와 국정기획위원회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배당성향 35% 이상 기업의 배당에 대해 ▲2000만원 초과 3억원까지는 22%, ▲3억원 초과분은 27.5% 세율을 적용하고, ▲2000만원 이하 소득에는 기존과 같은 15.4%를 유지하는 구조다. 정부 관계자는 “전면 분리과세는 조세 형평성 논란이 있지만, 이 의원의 안처럼 제한적 분리과세는 정책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개정안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 지지를 받으면서 ‘정책 실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태다. 그는 지난 6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간담회를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게 배당을 안 하는 나라”라며 “이제는 배당을 생활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법안 지지 발언을 넘어, 자본시장 정책의 방향성을 명확히 드러낸 신호였다.
정책이 고도에 올라갈수록, 지면 아래의 불안요소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변수는 세수다. 정부는 이번 배당소득 분리과세 개편이 세수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고배당 유인 강화를 통한 주가 상승, 그리고 그에 따른 양도소득세 수입 증가로 손실을 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있다. 하지만 여기엔 복잡한 함정이 숨어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대주주 양도세 기준을 기존 10억원으로 회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석열 정부 당시 50억원까지 상향했던 기준을 다시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당소득 세제를 완화하면 그만큼 세수가 줄어들게 되는데,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액 보유자의 양도차익에 다시 과세하겠다는 시도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 방향은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역풍’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은 이에 대해 “대주주 기준 하향은 이제 막 상승세를 탄 증시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거 대주주 요건이 10억원이던 시절, 연말이 다가오면 ‘세금 회피 매물’이 쏟아져 시장을 뒤흔드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외국인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인 고액 투자자들의 비자발적 매도가 일어났고, 이는 지수의 단기 급락을 유발하곤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금투세 폐지 이후 세수 부족이 심각하다고 보고, 증권거래세 인상도 검토하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코스피 시장은 농어촌특별세 0.15%만 부과되고 있지만, 이를 다시 본세율 중심으로 복원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분리과세를 통한 장기투자 유도”라는 정책 목표와 상충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즉, 정부가 한 손으로는 세제를 완화하고 다른 손으로는 과세 기준을 강화하는 모순된 신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분리과세가 투자 확대와 배당 장려를 위한 정책이라면, 양도세 회귀와 거래세 인상은 그에 반하는 디스인센티브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증권사 고위 임원은 “배당 세제 완화는 외국인과 장기 투자자 유입에 긍정적이지만, 양도세 기준 하향은 그 기대를 절반 이상 상쇄할 수 있다”며 “정책은 단기 재정 논리보다는 구조 개혁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또 다른 변수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자사주 의무 소각 입법이다. 배당과 자사주는 기업이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이제, 정부는 자사주 매입 뒤 이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법제화하려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자사주가 소각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 순이익(EPS)이 높아지고, 이는 곧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배당 재원이 줄어들고, 재무적 유연성도 떨어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자사주 비중이 높은 일부 종목에서 주가가 단기 급등하는 등 예민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신영증권, 롯데지주 등은 실제 법안 발의 직후 20~30%대의 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모든 복잡한 환경 속에서, 투자자들은 셈법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배당세제 개편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고배당주 중심의 장기 투자 전략은 더욱 유리해질 수 있다. 하지만 양도세 회귀 혹은 거래세 인상 등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헤지 전략’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이경연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분리과세 논의는 과거와 달리 배당성향이라는 구체적 조건을 명시해, 정책 유인이 훨씬 정교해졌다”며 “최대 주주의 배당 확대를 유도하고 고배당 종목 중심의 펀더멘털 리레이팅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자사주 의무 소각도 제도화되면 투자자들이 ‘진짜 주주환원’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중요해진다”고 덧붙였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9호 (2025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