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이면서 명성황후 시해 130주기인 2025년에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국모 암살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정치 스릴러 소설 ‘작전명 여우사냥’이 출간됐다.
‘작전명 여우사냥’은 1895년 10월 1일부터 명성황후 시해가 일어난 8일 새벽까지 일주일 간을 풀어낸 정치 스릴러 소설이다. 저자는 연합뉴스 기자 출신으로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권영석 작가다. 권 작가는 특파원 시절 출장길에 만난 일본 기자에게서 들은 조선 말기 한성 주재 특파원이었던 그의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을미사변은 한국 근대사의 가장 잔혹한 비극 중 하나다. 후일 명성황후로 추존되는 중전 민씨가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군인과 특파기자들에 의해 살해된 지 올해로 꼭 130년이 된다. ‘작전명 여우사냥’은 그해 10월 1일부터 암살 당일까지의 일주일간을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복원한다.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 일본의 속국으로 변한다. 이에 중전 민씨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의 속국에서 벗어날 계획을 수립한다. 그런 조선 왕비를 암살하는 계략의 핵심 역할을 맡았던 장본인이 바로 일본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겐조다.
을미사변 당일 경복궁에 난입한 암살범들의 상당수는 ‘한성신보’의 일본인 특파기자들이다. 대원군과 유길준도 매일 술만 퍼마시는 고종을 몰아내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해 조선을 되살려보겠다는 속내를 감추고 있던 터이다. 아다치와 게이오 의숙 동창생인 중전 민씨의 경호대장 이명재는 일본의 은밀한 음모에 맞서 극비리에 동학농민군을 재건하며 외롭게 싸운다.
일본군 철병과 일본의 지휘를 받는 조선훈련대 해산을 위한 주인공 이명재의 책략, 이에 맞선 일본의‘여우사냥’과 경복궁 습격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날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 소설은 기자 출신인 권 작가의 치밀한 역사적 사실 수집과 복합적인 인물 묘사, 치열한 사건 전개가 빛나는 역사소설이다.
마당극 연출가인 임진택 이애주문화재단 이사장은 추천사를 통해 “‘작전명 여우사냥’초고를 읽으면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을미년의 중전 민씨 암살 사건이지만, 작가가 담고자 하는 주제가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 국내외 정세를 은유 또는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130년 전 조선반도의 국제정세와 지금의 한반도 국제정세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고 중심 인물의 행태가 현재의 한국 정치 풍경과 중첩되고 있다는 평이다.
조선의 운명을 발아래 둔 왕비의 위험한 권력 놀음
역사상 가장 은밀하고 치명적인 일본 극우들의 암살극
그날 새벽의 전모를 밝히는 풀 스케일 정치 스릴러!
권영석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연합뉴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던 시절, 출장길에 만난 일본 특파원으로부터 조선 말기 한성 주재 특파기자였다는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이 소설을 쓰게 됐다.
10월 1일 진령군의 최후 007
10월 2일 최후 통첩 031
10월 3일 덫 067
10월 4일 한성신보 121
10월 5일 왕비 초상화 161
10월 6일 폐비 모의 187
10월 7일 여우사냥 229
에필로그 277
추천사(전문) 기자 출신이 쓴 예리한 시대소설 283
167_왕비 초상화
“맞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엔 더 중요한 특수부대가 등장했네. 바로 특파기자들이야.”
“특파기자들이요?”
“대영제국의 로이터통신 알지?”
“네, 영국의 대표적인 언론사 아닙니까?”
“로이터 특파기자들이 과거 선교사들이 했던 임무를 수행 중이야. 원주민의 영혼과 의식을 개조하며 식민지 경제 침탈의 첨병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영국 정부는 그 대가로 로이터에 식민지 세금 징수권과 비자 발급권까지 넘겼다네.”
“로이터가 식민지에서 영국 정부 역할까지 대신했다니…… 놀랍습니다.”
“우리 일본도 마찬가지야. 대일본제국이 아시아를 통치하려면 로이터 같은 언론사가 꼭 필요해. 나는 조선에 일본 언론사를 세우고 싶어.
007_진령군의 최후
감았던 눈을 떴다. 중전 민씨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서양식 제복이란 것이 볼수록 낯설고도 신기했다. 젊은 남정네의 날렵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040_최후통첩
아다치는 곧바로 눈치를 챘다. 한성신보는 대원군과 중전 민씨의 불화설을 연일 보도하며 여론을 유도하고 있었다. 중전이 암살당하면 대원군의 소행으로 믿게 만들기 위한 밑밥이었다. 조선인들이 접할 수 있는 언론 매체는 한성신보뿐이었다. 1면은 한글, 2면은 국한문 혼용, 3면은 일본어, 4면은 광고다. 조선 백성부터 일본 거류민까지 누구나 뉴스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건 조선인들을 세뇌하기 위한 기사들이었다.
114_덫
더욱 분개스러운 것은, 중전 민씨가 문명개화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진정한 개화란 백성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백성이 돈을 벌고 세금을 내면 나라 곳간에 돈이 쌓인다. 학교를 세우고 백성이 신지식을 배우고 개화의식을 가지면 나라도 발전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중전의 관심은 사치와 겉멋에만 머물러 있었다. 궁 안에 전등만 들어오면 나라가 문명개화되는 줄 알았다.
129_한성신보
아다치는 중전 민씨가 참석하지 않은 것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고종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무례한 발언에 불쾌감이 들었다. 그러나 아다치의 사투리 덕분에 연회장은 이미 유쾌한 분위기였다. 대신들은 죽력고를 권하며, 한성신보가 올바른 보도를 해주기를 기원했다. 일본 특파기자들은 왕비가 불참한 것에 분이 나 죽력고를 계속 들이켰다.
269_여우사냥
그때, 궁녀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순간 뒤를 돌아봤다. 아다치는 그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가녀린 몸매에 기품 있는 얼굴, 흰옷을 입은 우아한 여인. 그녀의 눈빛을 보고 말았다. 너무 슬퍼 보였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아다치가 조선에서 가장 즐겼던 것이 사냥이었다. 낌새를 느끼고 도주하던 사냥감은 꼭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노닐던 곳을 되돌아보는 것일 수도, 죽기 전 삶을 반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다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총을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