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고급 브랜드 가방을 좋아하는 네티즌은 한 온라인 스토어에서 200만원 상당의 신제품을 ‘할인가’로 60만원에 구매했다. 그런데 제품을 받아본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가죽 질감이 다르고, 지퍼가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 브랜드 공식 매장에서 확인을 요청했더니, 결과는 ‘위조품’이었다. 패션 아이템뿐만이 아니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어야 할 인기 드라마가 불법 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되고, 수천만원짜리 고급 화장품이 무허가 공장에서 만들어진 위조품으로 둔갑해 판매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진행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위조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 중 70% 이상이 자신이 정품을 구매한 줄 알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AI를 통해 나선 기업이 있으니 바로 마크비전이다. 이 회사의 핵심 솔루션은 AI를 활용해 위조상품, 불법 콘텐츠, 브랜드 사칭, 무단 판매 등의 문제를 자동으로 탐지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업들이 브랜드 보호를 위해 직접 수작업으로 불법 상품을 찾아내고 신고하는 대신, AI가 알아서 ‘IP 경찰’ 역할을 해준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한 국내 기업이 다양한 국가로 여러 바이어를 통해 제품을 유통했을 때, 기존 방식대로라면, 나이키는 자사 제품이 아마존, 쿠팡, 알리바바,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위조품으로 판매되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또한 전자상거래 사이트마다 신고 절차가 달라서, 직원들이 개별적으로 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마크비전은 AI 기반 IP 통합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전 세계 어디서든 브랜드 보호와 저작권·상표권 출원을 손쉽게 진행하도록 돕고 있다. 과거에는 회사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 할 때, 각국의 상표나 특허 출원 절차를 밟고, 온라인상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조상품 유통이나 무단 복제 콘텐츠를 일일이 찾아내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한 시장에서 불법 상품을 신고하고, 또 다른 SNS에서 사칭 계정을 제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 상표 출원 서류를 챙겨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면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사이에 피해가 확산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했다. 마크비전이 제안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마크AI(Marq AI)’와 ‘마크폴리오(Marq Folio)’라는 두 가지 핵심 솔루션을 통해, IP 생애주기 전반을 AI 기술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능으로는 위조 상품 및 무단 판매, 불법 콘텐츠, 사칭 등에 대한 탐지 및 제재 등이 있다.
‘마크AI’는 현재 전 세계 118개국 1500여 개 글로벌 마켓플레이스, 웹사이트, SNS 등에서 위조상품을 실시간 감시한다. 자동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각 플랫폼에 신고·제거를 요청한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영문·중문·한글 등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게시물을 분석하고, 불법 유통되고 있는 게임, 웹툰, 웹소설, 영화 및 TV 프로그램 등의 콘텐츠도 광범위하게 제재한다. 사칭 계정 또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데, 마크비전은 ‘사칭 차단 서비스’를 통해 기업이나 유명인을 흉내를 내는 악성 계정까지 자동으로 찾아내 계정 폐쇄나 게시물 삭제를 지원한다.
‘마크폴리오’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여러 나라에서 상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간편한 신청 프로세스를 제공한다. 120개국에 이르는 현지 법률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상표·저작권 출원 업무를 대폭 단축한다. 출원 진행 상황은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거절 시엔 서비스 비용을 전액 환급하는 정책으로 기업들이 안심하고 해외 시장을 두드릴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원스톱 IP 관리’가 가능한 것이 마크비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수많은 위조상품이나 불법 콘텐츠를 자동으로 잡아내는 것은 물론, 그에 따른 법적 조치까지 빠르게 이어지도록 전체 과정을 설계했다. 예를들어 “SNS에서 어떤 악성 판매자가 정품으로 속여 불법으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파악하면, AI가 그 셀러와의 채팅 내용이나 상품 이미지 등을 증거로 수집하고, 클릭 몇 번으로 해당 플랫폼에 신고서가 제출되도록 해준다. 기존에 사람 손으로 일일이 확인하며 작성하던 절차를 AI가 거의 180분의 1 수준으로 단축했다는 것이 이들의 강력한 무기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패션, K-뷰티 브랜드들은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해외에서 위조상품이 기승을 부리는 문제를 겪곤 한다. 가령 ‘미스치프’ ‘F&F’ ‘젠틀몬스터’ 등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마크AI를 도입해, 동남아·중국·북미 지역에서 무단 유통되는 위조상품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제재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분야에서는 웹툰, 웹소설, 인터넷 강의 등 한류 콘텐츠의 불법 복제본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마크비전 측은 “마크AI를 통해 24시간 자동 모니터링을 통해 2024년 한 해에만 4800만 건 이상의 불법 콘텐츠를 찾아내고 제거해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서비스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금융기업·유명인 사칭 피해도 감시한다. 마크비전은 AI로 이들이 사용하는 로고, 공식 이미지, HTML 코드 등을 추적해, 하루에도 수천 건의 사칭 계정을 폐쇄하거나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한다.
대화형 AI 에이전트 기술도 회사의 핵심 기술이다. 최근 위조상품이나 무단 판매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경로 중 하나가 SNS다. 악성 셀러들은 개인 메시지나 채팅 채널에서 은밀히 거래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마크비전은 이를 ‘대화형 AI 에이전트’로 추적, 확인한다. 생성형 AI인 GPT 모델과 마크비전의 독자적 기술을 결합해,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SNS 게시물을 스캔하고, 그 셀러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 단 몇 분 안에 위조상품 여부를 확인한다. 예컨대 “이 상품은 정품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슬쩍 답변을 흐린다든지, ‘정품 인증’을 요구했을 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행위를 AI가 바로 포착해 신고 작업을 자동화한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이인섭 대표는 마크비전이 지향하는 사업 모델이 “복잡하고 반복적인 IP 관리 업무를 AI가 대신 처리해주자”라는 데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독일중앙은행을 거쳐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리스크 전담 부서에서 근무했다. 맥킨지 시절에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기 및 불법 유통 문제가 매우 심각함을 직접 체감했고,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법률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 대표는 다시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IP 보호 관련 법률적 소양과 실무 지식을 쌓았다. 로스쿨 재학 중 만난 법률 전문가 및 AI 개발자들과 함께, “새로운 기술로 온라인 위조·불법 콘텐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을 이어갔고, 결국 2019년 1월 미국 보스턴에서 마크비전의 문을 열었다. 이후 한국 법인을 세우고 본사를 미국 LA 센추리시티로 이전하면서, IP 관리 시장에서 가장 앞선 스타트업이라는 위상을 갖추게 됐다. 마크비전은 창업 이후 불과 수년 만에 서비스 출시와 동시에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2021년 1분기 대비 2024년 1분기에 연간반복매출(ARR)이 30배 이상 증가하며 130억원을 돌파했고, 이는 B2B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이례적인 기록이다. 투자의 흐름도 꾸준히 이어져, 시드 단계부터 시리즈 A, 그리고 2024년 10월에는 16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 A+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마크비전은 누적 투자액 4100만달러(한화 약 540억원)를 달성하며, 세계 시장에서도 탄탄한 투자 유치 이력을 자랑한다. 투자자로는 와이콤비네이터(YC), DST글로벌, 소프트뱅크벤처스, 알토스벤처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퀀텀라이트,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힐스프링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했다.
또한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 프랑스 파리, 중국 상하이 등지에 해외 지사를 설립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4개국에서 약 200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 중이다. 나라별로 상표 출원이나 불법 콘텐츠 제재 방식이 조금씩 다른 법·제도를 따르지만, 마크비전은 AI 딥러닝을 통해 수많은 플랫폼과 정부 기관의 신고 프로세스를 표준화·자동화하고 있다.
마크비전은 IP 보호를 넘어, ‘마크폴리오(Marq Folio)’를 통해 해외 진출에 필요한 글로벌 상표권 확보를 지원하는 솔루션도 강화했다. 해외 시장에서 자기 브랜드를 먼저 선점당하면, 뒤늦게 정식으로 진출하려 해도 상표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커다란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마크폴리오는 120여 개국에서 상표권·저작권 등 IP 출원을 돕고, 각 지역 법률사무소와 협업해 서류 준비부터 진행 현황 모니터링까지 간편화했다.
또한 ‘상표 워치 서비스’를 통해 이미 등록한 상표와 유사한 브랜드가 혹시 무단으로 출원되고 있는지, 24시간 감시하고 알림을 제공한다.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무단 도용이 빈번한 시장에서도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어, 마뗑킴, 스위치, 홀리카홀리카, 힌스 등 여러 국내 브랜드가 이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나아가 단순히 온라인에서 불법 활동을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피해까지 확실히 해결할 수 있도록 ‘법률 서비스’도 지원한다. 파트너 법률회사와 함께 범죄 수익 환수나 공장 폐쇄, 자산·은행 계좌 동결 등 강력한 법적 대응을 수행해, 악성 셀러들이 얻은 불법 매출을 되돌려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과 미국에서 관련 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며, 현실적인 ‘투자 수익률(ROI)’을 기대하는 기업에 필수 옵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인섭 대표는 “브랜드가 자산을 지키지 못하면,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한순간에 소비자 신뢰를 잃을 수 있다”라며 “IP 보호를 넘어 ‘마크비전이 브랜딩과 저작권, 상표권을 보다 공정하고 안전하게 보장받는 환경을 만들어 더 많은 창작자와 기업이 글로벌 무대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겠다”라고 밝혔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5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