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단어에 ‘랭스 두와(rince-doigts)’라는 말이 있다. 손가락을 가볍게 닦는다는 뜻으로, 영어의 핑거볼(finger bowl)에 해당한다. 메인 코스(plat)가 끝나고 후식(dessert)이 나오기 전, 가볍게 손가락을 헹구기 위한 레몬이 들어간 물을 말한다. 서양의 예법(e‘ tiquette)에 익숙하지 못한 동양인들에게 핑거볼에 관한 일화가 회자되고는 한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각각의 코스마다 사용하는 포크와 나이프를 별도로 준비할 정도로 화려하게 발달한 커트러리(Cutlery)가 있는데, 왜 굳이 손가락을 씻으라고 작은 그릇에 물을 내어주는 걸까?
해답을 찾는 여정은 작은 도구 포크(fork, 프랑스어로는 fourchette)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고구려 벽화에 이미 젓가락이 등장할 정도로 음식 도구가 일찍부터 발달한 데 비해, 서양은 로마 시대는 물론 중세를 거쳐 18세기까지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사용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 궁중 화가인 아브라함 보스(Abraham Bosse)가 그린 <미각(Le Gou· t)>이라는 작품을 보면, 지금의 무릎담요만 한 큰 냅킨으로 손을 닦으며 음식을 먹고 있는 당시 귀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손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은 유럽의 보편적인 식사 매너였고, 유럽 궁중 예법을 완성했다고 알려진 루이 14세조차 손으로 음식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자들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행한 예수님처럼 음식은 손으로 먹어야 신성하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빵만큼은 직접 손으로 떼먹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에 큰 변화를 불러온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혁명 이후, 왕족과 귀족들은 자신과 평민을 구분할 상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복장이 규제된 가운데, 그들은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 포크에 집착한 것이다. 여러 명이 돌려쓰던 포크를 각자 소유하는 방식으로 평민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다가, 평민들이 이를 따라 하자 음식 마다 사용하는 포크와 나이프를 달리해 차별화를 심화시킨다. 한때 한 끼의 식사에 사용되는 서로 다른 커트러리의 종류가 77개에 이를 정도로 세분화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루이 14세 방식의 테이블 예법을 추가함으로써, 프랑스 요리는 격조 높고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이처럼 매너의 역사를 문명화의 과정으로 정의 내리기도 한다. 요리가 프랑스 대혁명의 반작용으로서만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혁명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귀족의 요리사들이 그들만의 레스토랑을 개업하며, 누구나 비용을 지불하면 그 시간만큼은 귀족처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대중화의 과정도 함께 발전한다. 커트러리가 혁명의 반작용으로 차별화의 과정을 걸었다면, 요리 그 자체는 새로운 환경의 수용을 통해 보편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요리의 창조자로 알려진 앙토넴 카렘(Care·me)에 이르러, 차별성과 보편성은 마침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러시아 황제의 요리사였던 카렘이 러시아식 코스 요리를 프랑스 요리에 접목한 것이다. 러시아는 추위로 인해 이른바 우리식 한상차림을 하게 되면 음식이 식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따뜻한 용기에 음식을 하나씩 테이블에 올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프랑스로 넘어가며 프랑스 요리는 오늘날의 코스 요리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카렘에 의해 시작된 근대 프랑스 요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Escoffier)에 의해 완성되며, 프랑스 역사 중 가장 화려한 시기로 알려진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를 맞아, 아페리티프(식전주), 아뮤즈 부쉬(한입 요리), 앙트레(전채요리), 푸아송(생선요리), 비양드(고기요리), 소르베(셔벗), 프로마쥬(치즈), 데세르(디저트), 디제스티프(식후주), 커피 또는 차, 프티 푸르(한입 과자)로 이어지는 화려한 코스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각각의 코스는 별도로 고안된 포크와 나이프가 해당 요리들과 마리아주(mariage)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귀족들의 허세로서 포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완성된 요리를 ‘오트 퀴진(haute cuisine·고급 요리)’이라고 부른다.
한편 “요리는 진화의 과정이다”라는 에스코피에의 말처럼, 프랑스 오트 퀴진은 새로운 요리,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으로 발전한다. 누벨 퀴진은 미술에서 인상파 화가가 그랬던 것처럼, 요리사가 자신의 생각대로 새롭게 요리를 창조하는 걸 말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일본 다도(茶道)에서 발전한 가이세키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바로 재료 본연의 맛에 주목하는 요리다. 1970년대 교통과 냉장시설 발전의 영향으로 프랑스에서 채소와 생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천재 요리사 폴 보퀴즈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해 나간다. 오너 셰프 시대를 연 것이다. 최근 프랑스 ‘르몽드’는 페루의 전통 길거리 음식 세비체(날생선을 식초 등에 절인 음식)가 프랑스 고급 식당의 메뉴로 발전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신선함을 원하는 프랑스인들의 요구에 부합해, 서민 이미지를 벗고 고급화에 성공한 것이다. 프랑스 요리는 이처럼 계급 간의 차별성을 벗어나, 보편성을 바탕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며 진화하고 있다.
핑거볼 따위의 관습에 주눅들 이유 없다. 우리의 젊은 요리사들도 우리 요리의 강점으로 프랑스 요리의 진화를 주도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프랑스에 있어서, K-요리의 새로운 방향성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