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세계에서 재산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주목받는 대체불가능토큰(NFT) 시장에서 ‘먹튀’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지난해 NFT 열풍을 타고 급등한 NFT 가격이 잇달아 폭락하면서 관련 시장도 얼어붙고 있는 모양새다.
NFT는 자산 토큰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각 토큰마다 고유의 값을 가지고 있어 다른 토큰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 하나만 발행되는 유니크한 코인으로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오리지널리티에 값이 매겨지는 개념이다. 자산 고유의 가치를 가지는 희귀 게임 아이템을 비롯해 음악예술품, 저작권 등의 소유권이 NFT화돼 거래되고 있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사기 범죄도 해마다 늘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지난달 국내에서 ‘캣슬’이란 명칭으로 운영된 NFT 프로젝트 운영자들이 잠적해 대표적인 ‘러그풀’ 사례로 지목된다. 러그풀이란 가상화폐 생태계에서 개발자가 갑자기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투자금을 들고 사라지는 사기 수법을 말한다.
양탄자(Rug)를 잡아당기면(Pull) 그 위에 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넘어진다는 비유적 표현에서 유래됐다.
캣슬은 클레이튼 기반의 NFT로 탈중앙화 금융(디파이)을 하겠다는 로드맵을 통해 투자자(홀더)들을 유치했다. 운영자들은 지난달 21일 “메인 계정 해킹으로 더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관련 홈페이지와 오픈 채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도 모두 폐쇄된 상태다. 피해자들은 오픈 카톡방까지 만들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보상 방안은 없는 상황이다.
캣슬은 세계 최대 규모의 NFT 거래 플랫폼인 오픈시(opensea)에서 한때 2위에 오르고, 클레이튼 NFT 마켓에선 6위까지 기록하며 완판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캣슬 프로젝트는 총 1만 마리의 각기 다른 고양이 NFT를 통해 탈중앙화 금융을 구축해 고양이를 구매하고, 이를 보유하면 킷(Kit)이라는 물고기를 준다고 홍보했다. 캣슬 NFT 10개를 가지고 있으면 매일 1킷(약 1클레이)을 주겠다는 것. 지난해 11월 킷캣 1만 마리 중 1000마리에 대한 1차 프리세일을 실시했는데 21시간 만에 완판됐다. 굿즈(기획 상품)와 게임도 출시한다고 했지만 운영진은 현재 모두 사라진 상태다. 프리세일 당시 25~35클레이(3만6150~5만610원)에 거래됐던 캣슬 NFT 가격은 현재 오픈시에서 약 3클레이(4338원) 수준까지 추락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1월 솔라나를 기반으로 하는 솔라이프 NFT는 관련 트위터와 홈페이지를 모두 닫고 사라졌다. 솔라이프는 NFT를 구해 돈 버는(P2E) 게임을 하는 프로젝트였다. NFT 뽑기 하나당 3.99솔라나(약 56만원)에 판매했는데, 현재는 가치가 폭락한 상태다. 국산 밈 코인으로 홍보한 떡볶이코인(TBK)도 운영진이 잠적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전 판매도 진행하고 NFT까지 판매됐던 프로젝트다. 이 코인은 무려 이자율이 30%에 달하는 스테이킹(가상자산 예치·위임)으로 사람을 끌어모았지만, 운영진이 사라지고 공식 SNS 등도 모두 폐쇄된 상황이다.
실제로 가상화폐와 관련된 범죄 피해액이 급증하는 추세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 사기 범죄 피해액은 77억달러(약 9조2362억원)로 전년 대비 81% 증가했다. 특히 2020년 전체 가상자산 스캠(사기) 피해액의 1%에 불과했던 러그풀은 지난해 전체 스캠 피해 규모의 37%를 차지할 정도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수십~수백%의 이자율로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디파이 프로젝트도 사기 위험이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장에는 본인이 투자할 프로젝트에 대한 검증은 스스로 하라는 말이 있다”면서 “특히 NFT는 극초기 시장이라 수익률도 크지만 그만큼 위험도 크다는 것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NFT 가격 폭락에… 가격 조정이냐 버블 붕괴냐 갑론을박
블록체인 기술 기반 디지털 자산의 일종인 NFT 가격은 3월 전달 대비 약 70% 떨어졌다. 유동성 장세에서 NFT에 자금이 대거 몰렸던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시적 가격 조정이라는 분석과 NFT 버블이 붕괴되면서 작품 투자 열풍이 쪼그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나온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가 NFT 관련 암호화폐 10종의 가치를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지수화한 NFT인덱스는 이달 15일 오후 4시 기준 667.34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최고점(1781.26) 대비 62.5% 하락한 수준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월 들어 세계 최대 NFT 거래소인 오픈시의 거래량이 지난달 고점 대비 80% 급감했고, NFT 평균 판매 가격도 지난해 11월에 비해 48% 이상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국내 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클립드롭스와 XX블루, 업비트NFT 등 국내 주요 NFT 거래소에는 가격이 반토막돼 나온 매물이 늘었다.
NFT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NFT 작품이 잇달아 ‘완판’되고 프리미엄 가격까지 붙던 지난해 말과는 정반대가 된 것이다. 실제로 NFT 거래량과 평균 가격이 모두 하락세다. 일부 전문가는 NFT에 몰린 유동성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팬데믹 이후 유동성 수혜를 봤을 뿐 정식 투자처로 지속가능한 인기를 이어가긴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NFT 시장에서 ‘대장주’로 꼽힌 작품 ‘지루한 원숭이들의 요트 클럽’ 연작의 가격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점당 가격이 수억~수십억원에 달하고, 할리우드 스타 에미넴, 저스틴 비버 등이 작품을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2월 25일 132.783이더리움(약 4억4625만원)이었던 점당 평균 가격이 불과 2주 만에 78.922이더리움(약 2억5250만원)까지 떨어졌다.
NFT 작품의 내재 가치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FT는 “NFT가 기술적·철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인 건 맞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상당수 작품이 보기 좋지 않은 것(ugly)”이라고 지적했다. NFT 가격이 조정을 받으면서 미술계에서도 NFT에 대해 부정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NFT 시장이 과열 이후 조정을 거치는 것일 뿐 대체 투자처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록체인 관련 서적 작가인 크리스 윌머 미국 피츠버그대 조교수는 “NFT가 당장은 유행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릴 수 있지만 비트코인이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자산으로 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미술 작품을 사고팔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서의 NFT 가치에는 변함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NFT 시장 2022년 기상도는… “성장 지속되고 플랫폼 경쟁 심화”
체이널리시스는 최소 269억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NFT 시장이 올해도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NFT 시장에 아직 진출하지 않은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 셀럽, 게임 개발자 등이 NFT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성장과 진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에단 맥마혼(Ethan McMahon) 체이널리시스 경제학자는 “NFT 수익의 대부분은 소수의 투자자가 가져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화이트리스트를 통해 낮은 가격에 투자하는 초기 투자자”라며 “2022년에는 봇을 활용한 민팅(발행) 단계에서의 투자 등 다양한 투자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체이널리시스는 가상자산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이용한 범죄 행위도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인베이스를 중심으로 탈중앙화 금융(디파이)과 NFT를 통합한 플랫폼 구축 경쟁도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필립 그래드웰(Philip Gradwell) 체이널리시스 수석 경제학자는 “지난해 핀테크와 가상자산 거래소 간 경쟁으로 소비자의 가상자산 접근성은 향상됐지만, 여전히 디파이와 NFT를 다루긴 쉽지 않다”며 “소비자들이 플랫폼을 선호하는 사실은 웹 3.0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상자산 플랫폼 간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새로 적용된 특금법과 올해 시행될 트래블 룰 등 보다 투명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여러 대책 마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