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때 다소곳하던 여자는 간데없다. 중년의 억센 아내는 남성호르몬이 흘러넘치는지 기어가는 바퀴벌레도 창자가 튀어나오게 압사(壓死)시켜 죽일 만큼 씩씩해졌다. 그뿐인가. 남편과 눈만 마주치면 지적질이다. 양말 홀랑 뒤집지 마라, 씻어라, 욕실 바닥에 물 흘리지 마라, 변기에 소변 떨구지 마라, 속옷 좀 갈아입어라, 손 하나 까딱 안 한다 등등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점점 총각 시절이 그리워진다. 자기 방식대로 남편을 바꾸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하는 아내가 많겠지만, 오산(誤算)이다. 이때 둘 사이 벌어진 틈으로 바람이 솔솔 불기 쉽다.
공자는 40대를 두고 ‘불혹’의 나이라고 했지만, 실상 40대는 ‘유혹’의 시기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noon of life)’라고 했다.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아도 속으로는 미성숙한 탐욕과 유치한 야망으로 갈등에 빠진다.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에 회의와 짙은 공허감을 느끼며 방황한다. 더불어 이때는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겨온 일과 결혼 생활에 대해 재평가하는 시기다. 그런데 아내는 예전에 사랑했던 그녀가 아니다. 답답한 마음에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안식처, 소울메이트(soul mate)를 갈망하게 된다. 이럴 때 자신을 인정해주고, 남성다움을 확인해주는 여자가 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사랑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중년 남성은 성욕을 관장하는 남성호르몬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예쁘고 매력 있는 여성을 봐도 설레는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외모보다는 ‘말이 통하는 여자’가 좋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예쁜 아가씨가 있는 술집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 말이 통하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중년 마담이 있는 술집을 찾는다. 얘기를 잘 들어주는 마담에게 아내에게도 할 수 없는 속 깊은 얘기까지 털어놓기도 한다. 니체는 “오랫동안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면 결혼하라”고 했다. 아내와 대화를 시도해보지만 주제는 늘 자녀 교육이나 시댁(媤宅)이 거의 전부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내와 얘기를 하다 보면 벽을 느끼기 일쑤다. 결국 입을 다물게 된다.
남편은 대화다운 대화, 신문에 난 얘기를 우아하게 하고 싶다. ‘공감의 불륜’이다. 섹스는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감성 공유가 ‘우선’인 것이다. 육체적 에너지는 저하되고 배우자 외 이성 관계에 대한 열망이 결합된 절충형 불륜이다. 그렇다고 가정을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결혼 생활의 파탄을 견딜 격정과 에너지도 없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면서 상처도 주지 않는다면 그 상태가 오래오래 지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수익’의 시 ‘그리운 악마’처럼,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 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악마 같은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남편을 바깥으로 내몰지 말고, 얘기를 잘 들어주면 어떨까. 남편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마구 칭찬을 해주면 그것이 빈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 좋아한다. 이왕 하는 거 ‘구체적으로’ ‘진심을 담아’ ‘웃음을 머금고’ 남편과 지적인 대화를 해서 집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공부도 좀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