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과 ‘지니뮤직’, ‘플로’ 중심으로 공고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전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때문이다. 유튜브는 자체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유튜브뮤직의 이용자를 대폭 키우며 시장 점유율을 급격하게 늘렸고,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시청 등 ‘보는 음악’의 시대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유튜브 자체 플랫폼에서 음악을 소비하는 이들도 늘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서 멜론의 점유율(안드로이드 기준)은 29.8%였다. 2019년 1월 38%에서 2년 4개월 만에 8.2%포인트 하락했다. 대신에 구글의 유튜브뮤직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튜브뮤직은 이 기간 점유율이 1.7%에서 12.6%로 커졌다. 지니뮤직(KT·LG유플러스·CJ ENM)은 3.9%에서 17.6%로, SK텔레콤의 플로(FLO)는 6.4%에서 11%로 늘었다.
순위로 보면 1위 멜론, 2위 지니뮤직, 3위 유튜브뮤직, 4위 플로, 5위 네이버바이브 순이다. ‘멜론·지니뮤직·플로’의 3강 체제를 뚫고 유튜브뮤직이 안착했고,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 해외 서비스도 한국 시장 점유율 높이기를 목표로 두며 바야흐로 음원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내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멜론은 수년 동안 치열했던 음원 스트리밍 시장에서 ‘멜론 천하’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요새는 독보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던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2년여 만에 시장 점유율은 9% 가까이 떨어졌다. 2년 전 1% 점유율에 불과하던 유튜브뮤직은 부쩍 성장해 최근에는 12% 내외까지 점유율을 올렸다. 이에 멜론은 카카오 본사에서 빠져나와 카카오의 콘텐츠 계열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합병하며 자구책 찾기에 나섰다.
▶유튜브뮤직 국내 1위 멜론 맹추격
멜론 서비스를 하고 있는 ‘멜론컴퍼니’와 카카오의 콘텐츠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는 지난 7월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사 간 합병을 결의했다. 9월 1일 합병이 완료된다. 카카오엔터는 멜론과의 결합으로 웹툰·웹소설, 음악, 드라마, 영화, 공연 같은 콘텐츠 전 분야를 아우르는 글로벌 엔터기업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멜론은 2004년부터 축적된 빅데이터가 강점이다. 현재 보유곡 약 4000만 곡, 800만 명 이상의 이용자,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600만 명을 웃돈다. 여기에 카카오의 콘텐츠 밸류체인이 더해지면 향후 안정적인 ‘음원 1위’ 유지에도 탄력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멜론의 역사는 한때 아이유의 회사로 불렸던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당시 국내 1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을 운영하던 로엔을 카카오가 1조8700억원에 인수한 일은 여전히 IT업계 최대 빅딜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카카오의 멜론 인수를 두고 ‘왜 갑자기 음악 사업을 시작하느냐’며 사내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안정적인 구독 매출을 기반으로 현금 창출 능력을 보유한 멜론 인수를 강하게 어필했다.
실제로 로엔을 인수한 이후 정체됐던 카카오의 현금 흐름이 좋아졌고, 카카오는 2016년 2분기부터 매출과 영업이익도 동반 상승했다. 2016년 2분기 카카오의 콘텐츠 매출은 전년 대비 157% 상승해 7018억원을 기록했다. 멜론 덕에 영업이익이 늘면서 카카오가 다른 분야로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고, 카카오택시 등 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도 이때 시작됐다. 당장 카카오엔터와의 합병으로 이 회사는 연매출 2조원 시대를 열 수 있게 됐다. 카카오엔터는 현재 각 사업부문이 사내독립기업(CIC) 체제로 운영된다. 지난해 기준 카카오페이지(웹툰·웹소설) 매출은 4647억원, 카카오M(드라마, 영화, 공연) 매출은 3591억원을 기록했다.
멜론(음악)의 매출은 6126억원이었다. 카카오엔터는 향후 엔터 시장에서 제작과 유통, 영상과 음원의 결합 등 독자적인 서비스 루트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예를 들어 멜론이 전통적으로 파워 아티스트들의 주요 데뷔 채널이 됐기 때문에 카카오엔터가 보유한 연예기획사 등에서 나오는 신입 아티스트들은 멜론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 더욱 쉬워질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웹툰을 볼 수 있는 미래가 쉽게 상상 가능하다. 웹툰, 웹소설의 느낌에 가장 적합한 음악을 선별해 노래를 듣거나 추천곡을 띄워주면 이용자의 몰입감이 더 커질 수 있다.
이 밖에도 멜론은 지난 8월부터 멜론의 차트 서비스를 전면 개편하며 이용자 록인 강화에 나서고 있다. 멜론의 차트 서비스는 ‘톱(TOP)100’과 ‘최신 차트’로 전면 개편됐는데, 이 새로운 차트는 최근 24시간 사용량과 1시간 이용량을 일대일 비중으로 합산해 만들어진다. 음원 순위를 비정상적으로 올리기 위한 시도도 최대한 방지한다. 차트 전담부서를 신설해 상시 모니터링과 분석을 강화했다.
음악 플랫폼 ‘플로(FLO)’
▶통신사 지원받고 쑥쑥 크는 ‘지니뮤직’ ‘플로’
지니뮤직과 플로는 모기업인 통신사에서 지원을 받아 통신사 할인 혜택을 대거 제공하면서 최근 점유율을 바짝 키워왔다. 최신 스마트폰은 대부분 5세대(5G)가 많은데, 공시지원금을 받기 위해 첫 3~6개월 동안 비싼 요금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무료 혜택으로 제공되는 지니뮤직이나 플로를 사용하다 정착해버리는 형태다. 이동통신사와 연계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생겨난 오랜 공식이었다. 이통사가 성장한 만큼 국내 음원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지니뮤직, SK텔레콤은 플로를 만들었고 멜론과 함께 3강 체제를 유지해왔다. 카카오에 인수당하기 전 서비스하던 회사인 로엔도 사실 SK텔레콤의 자회사였으니 이통사와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초창기 음원 서비스는 벅스나 소리바다 등 MP3 파일을 개인 간 공유하는 ‘P2P 서비스’가 주축이었다. 그 다음으로 SK텔레콤과 LG텔레콤 등 이통사가 뛰어들어 곡 단위 구매를 시작했다. 이후 SK텔레콤은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한 달 동안 자유롭게 음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정액제’ 모델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현재 지니뮤직과 플로 등 서비스는 이용자 각각의 취향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초개인화 서비스’에 방점을 찍고 이용자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경쟁 중이다. 지니뮤직이 지난해부터 서비스 중인 ‘뮤직컬러’ 큐레이션이 대표적인 예다. 이 서비스는 음악과 색깔을 연계해 2000만 곡 이상의 음원에 333가지 컬러를 매칭한다. 이를 인공지능을 활용해 빅데이터 기반 음악 추천 서비스와 연동한다. 이용자의 음악 취향을 장르, 분위기, 감정 등 요소로 세밀하게 분석한 뒤 음악 성향을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 론칭 이후 평균 트래픽이 470만 조회나 증가하는 결과도 얻었다. 분위기나 감정 등 추상적인 영역을 색깔이라는 직관적 요소로 바꾼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니뮤직 ‘뮤직컬러’ 음악 서비스
플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한다. 처음 플로를 접한 이용자도 한 곡을 끝까지 들으면 비슷한 곡을 추천해준다. 특히 ‘비슷한 음악으로 JUMP’ 기능은 유사 장르의 노래를 무한대로 추천해주면서 이용자의 취향을 확인하고, 빅데이터에 기반해 플레이리스트를 구축한다.
한편 국내 음원 플랫폼들은 다양한 장르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자신만의 개성을 강화 중이다. 멜론은 오리지널 오디오 콘텐츠 서비스인 ‘멜론 스테이션’을 진행 중인데, 이 서비스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음악을 소개한다.
또 멜론은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와 연계한 ‘브런치 라디오’도 선보였다. 브런치 작가가 브런치 글을 읽어주는 것이다. 플로도 장항준 영화감독과 손잡고, 최초로 오리지널 오디오 드라마를 제작한다. 공모전을 개최해 시놉시스와 대본을 제출받은 후 최종 우승 작품을 플로 오리지널 오디오 콘텐츠로 제작한다.
브런치 라디오
▶급성장 중인 유튜브뮤직… 점유율 지니뮤직과 5% 差
K팝 콘텐츠 뮤비 즐기며 유튜브로 음악을 ‘보기도’
현재 국내 음원 플랫폼들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유튜브다. 유튜브뮤직은 업계 2위인 지니뮤직과의 점유율도 5% 차이까지 좁히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튜브뮤직의 성장은 바로 유튜브 동영상 광고를 제거한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덕이다. 유튜브 측은 프리미엄 서비스 이용자에게 무료로 유튜브뮤직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20대 다수를 유튜브뮤직으로 끌어 모았다.
음원 플랫폼들은 중복 이용 자체가 적은 데다, 1020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가격 유인이다. 이 세대는 유사 서비스 중에서는 맘에 드는 딱 하나의 서비스를 골라서 즐기는 경향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유인은 가격이다. 게다가 유튜브뮤직은 유튜브 영상과 곧바로 연결되고, 댓글창에 모여 놀 수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재미로 꼽힌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 이용자들의 대규모 데이터가 모여 개인 취향별 맞춤 음악 서비스를 제공한다. 더구나 유튜브 기반 창작자들이 올리는 각양각색의 플레이리스트도 압권이다. 유튜브뮤직을 이용하는 20대 김지인 씨는 “유튜브 음악 채널 중에는 유저들이 직접 만들어둔 다양한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댓글창에서 온갖 댓글을 달면서 논다. 그런 댓글을 보는 맛이 있어서 자주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튜브뮤직
여기에 유튜브뮤직이 아닌 유튜브 자체 플랫폼의 동영상을 음원처럼 듣는 수요도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2020 음악 산업백서’(중복 응답 가능)에 따르면 ‘유튜브로 음악을 듣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자의 58.4%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때 유튜브는 유튜브뮤직이 아닌 유튜브 플랫폼 자체를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멜론이 56.6%, 지니뮤직이 23.9%, 유튜브뮤직이 12.3%를 차지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서는 라이브 가수의 음원부터 일반인들의 커버 영상까지 다양하게 음원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음악을 귀로 듣는 게 아닌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한 니즈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음악을 단순히 귀로 듣는 대신 시각적 요소가 가미될 때 콘텐츠 집중력 유지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간의 평균 집중력 유지 시간이 8초밖에 안 된다. 따라서 평균 3분 30초에 달하는 음악을 귀로만 듣다 보면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뭘 들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면서 “반면 화려한 패션과 안무, 무대로 구성된 화면이 짧은 시간 내에 수시로 전환되는 뮤직비디오는 그보다 훨씬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다채로운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K팝 콘텐츠가 보는 음악의 시대에 접어들며 더욱 확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유튜브의 지속 성장세와 달리 전 세계 시장에서 30% 이상 점유율을 가진 1위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는 한국에서 다소 고전 중이다. 이는 스포티파이가 서비스 초반 국내 음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비싼 월 이용료도 약점이다. 스포티파이의 월 이용료는 1만원 수준인데, 국내 음원사이트의 평균 8000~1만원대 이용료보다 약간 높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스포티파이는 하반기부터 국내 기업들과 협업하기로 했다. 최근 LG유플러스와 협업을 맺고 5G·LTE 요금제를 이용하는 가입자에게 스포티파이 프리미엄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삼성전자와도 협업을 시작했다. 삼성과 구글의 통합형 운영체제(OS) 기반 스마트워치에서 인터넷 연결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예를 들어 미리 갤럭시워치에 음악을 다운로드만 하면 모바일 데이터나 와이파이 등 연결 없이도 오프라인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