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휩쓸고 있는 구독경제 모델이 하드웨어 시장으로 번지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 입장에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구독경제의 실효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구독경제 모델은 고정 매출이 발생하며 주요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는 기회로 인식된다. 반면 수많은 구독 서비스로 소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사용자 입장에서 마냥 반가운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애플이다. 최근 미국 주요 언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회사의 대표제품 아이폰에 대한 구독모델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애플, 최근 하드웨어 구독모델 도입 검토
스마트폰 구입 트렌드는 최근에 특히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MZ세대가 주류 소비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휴대폰 구매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방법은 이동통신사를 통해 구입해 지원금을 받아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자급제폰이 등장하고 알뜰폰 시장이 성장하며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자급제폰이란 TV나 컴퓨터 등 일반 가전제품과 같이 휴대폰을 통신사 판매점이 아닌 일반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을 뜻한다. 통신사가 지급하는 공시지원금의 혜택은 없지만 약정으로 묶이지 않는 점이 장점으로 손꼽힌다.
구독경제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인 넷플릭스.
시장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 스마트폰을 구매한 소비자 중 무려 35%가 자급제 단말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 90%가 알뜰폰 요금제를 사용했다. 특히 20대의 경우 알뜰폰 사용 비중은 25%에 달한다. 단말가격이 비쌈에도 불구하고 자급제폰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알뜰폰 요금제의 경쟁력이다. 국내의 경우 3대 통신사 요금제 대비 알뜰폰 요금제가 30%가량 저렴하다. 특히 써야 할 돈은 많고 데이터 사용이 많은 MZ 세대의 경우 알뜰폰 요금제가 메리트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발맞춰 등장한 것이 바로 애플의 구독형 모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까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대한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애플의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는 기존 약정이나 할부 방식과 달리 일정기간 기기를 임대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애플 구독모델에 가입하면 일정 한 월비용을 내게 된다. 이러한 구독 중 구입한 모델과 별개로 신규 모델이 출시될 경우 이를 교체해 새로운 모델로 사용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할부 방식은 한 개의 모델이나 제품에 대해 24개월 또는 36개월간 나누어 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일정 비용은 내지만 특정 모델 제품에 대한 비용이 아닌 애플의 기기 서비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단순히 아이폰을 판매할 때 발생하는 1회성 비용 대신 매달 꾸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스마트폰을 한 대 팔면 그 소비자가 다음 모델을 선택할 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고정 고객으로 확보하지 못할 수 있지만 구독형 모델을 도입할 경우 그 기간 동안은 애플의 영원한 고객으로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100만원이 넘는 스마트폰 판매금액을 한번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애플에게 손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잦은 교체주기와 낮아진 충성도를 감안하면 더 오랜 기간 구독할 회원을 확보하는 것이 낫다는 분석이다.
▶발상의 전환 된 테슬라 자율주행기술 구독
사용자 입장에선 어떠한 실익이 있을까. 우선 값비싼 단말기를 구입하는 데 부담을 느꼈던 얼리어답터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 부담으로 최신형 제품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즉 1년 주기로 신제품이 나오는 스마트폰 주기를 감안했을 때 비싼 스마트폰을 사서 최소 2년 이상의 약정 기간 동안 쓸 필요 없이 매년 신제품을 비슷한 비용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이러한 구독형 서비스의 단점은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표적으로 최근 대세처럼 자리 잡은 스트리밍 서비스만 살펴봐도 손쉽게 수긍할 수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콘텐츠 서비스의 대세로 자리 잡은 스트리밍 서비스는 사실 사용자에게 큰 부담을 전가시키고 있다.
넷플릭스만 있었던 당시에는 매달 2만원도 안 하는 돈으로 수십만 개의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양질의 인기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대세로 자리매김하면서 스트리밍 서비스에 뛰어드는 미디어 공룡들이 늘어나며 소비자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디즈니플러스, HBO맥스 등 수십 개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공되며 보고 싶은 1개의 콘텐츠를 보기 위해서도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 것이다. 당장 애플의 하드웨어 구독모델의 경우 다른 유사 서비스와의 중복 문제가 없어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하드웨어 구독 서비스가 정착한다면 하드웨어 구독 부담 역시 늘어나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월 199달러에 제공하는 테슬라의 FSD(Full Self Driving)는 소프트웨어 수익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비용 줄어든다는 착각, 구독모델 확대로 소비자 부담 증가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 구독형 모델은 모든 산업 분야의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윈도우로 대표되는 세계 최대 규모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대표적인 문서 편집 프로그램인 MS오피스를 이제 패키지 제품이 아닌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하며 월 구독 서비스로 재편했다. 오피스365라고 불리는 해당 프로그램을 쓰기 위해서는 매달 일정 금액을 내야지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에 5만원 안팎의 비용을 내면 평생 쓸 수 있는 문서편집 프로그램 특성상 이러한 시장이 과포화되면서 추가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마이크로소프트가 패키지 서비스를 구독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기존 고객만 유지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구조로 개편한 것이다.
영상 및 사진 편집 프로그램인 어도비의 포토샵 및 프리미어 역시 이미 클라우드 서비스로 전환하며 구독형 서비스로 완전히 피버팅에 성공했다. 이처럼 1회성 수익에 치중하던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변신은 다양한 산업에 구독형 모델 도입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과거 비디오, DVD 형태로 판매되던 영화 또는 드라마 등 미디어 콘텐츠 역시 구독형 사업 모델을 타고 완전히 그 판매 방식이 뒤바뀌어 버렸다. 세계 1위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 역시 초창기 사업모델은 DVD를 대여하는 사업에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대상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DVD 패키지 대여 서비스에서 아예 이러한 콘텐츠를 한데 모은 뒤 이를 직접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통해 월 단위 결제가 가능한 구독형 모델을 도입한 것이다. 현재 넷플릭스의 전 세계 사용자수는 2억 명이 넘는다. 그뿐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넷플릭스는 이제는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등 굴지의 미디어 공룡들이 벤치마킹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자리 잡으며 시장의 관심을 한눈에 받고 있는 기업이 됐다. 이러한 넷플릭스의 성장 원동력 역시 바로 구독 서비스에 기인한 것이다.
애플이 애플뮤직이나 아이클라우드 등의 서비스를 통해 구독료를 받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하드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서 대세로 자리 잡아
이러한 구독형 모델을 대중화한 서비스가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면 최근엔 새로운 구독형 모델의 혁신을 불러일으킨 기업이 있다. 바로 혁신의 아이콘인 전기차 기업 테슬라다. 테슬라는 지난해 자사의 자율주행기술을 구독형 모델로 도입하겠다고 밝히며 시장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테슬라의 자율주행기술은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최첨단 기술로 이 서비스 이용을 위해 차량 구입 시 최대 1000만원가량의 추가 비용을 옵션으로 내야만 했다. 하지만 테슬라가 해당 자율주행기술을 월 결제가 가능한 구독모델로 바꾼다고 선언하면서 현재는 월 3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차량 가격도 비싼데 소프트웨어 기술에만 수백만원 넘게 쓰는 게 맞느냐는 논쟁이 한창이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구독모델은 좋은 대안이란 반응이었다.
또한 소프트웨어 기술인 만큼 구독형으로 이용할 경우 향후 신기술이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 때도 항상 업그레이드가 자동으로 이뤄지며 최신 기술은 업데이트 받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테슬라는 향후 이러한 자율주행기술 외에도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기술이나 신규 기능을 구독형 모델로 제공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또 재미있는 구독모델이 도입된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이모티콘이다. 카카오톡은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를 지난해 초 출시했다. 카카오톡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이모티콘 분야를 아예 구독모델 도입을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에 나선 것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누적 구매자는 2017년 1700만 명에서 2019년 2100만 명으로 성장했다. 다만 연간 구매자 수로 나눠 보면 2016년 400만 명에 달했던 이모티콘 구매자 수가 2019년 100만 명으로 확연히 줄어들었다.
사용 자체는 늘었지만 이미 구입할 사람들은 다 구입하고, 새롭게 이를 사는 사람들이 확연히 줄었단 뜻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카오의 묘수가 바로 이모티콘 구독형 서비스였다. 월간 일정 비용을 내면 여러 이모티콘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모티콘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카카오 입장에서도 줄어드는 신규 구매자 수로 인한 수익 감소를 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기 위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구독형 서비스는 기업의 위기를 타개하는 수단으로서도 잘 쓰이고 있다.
다시 애플로 돌아와서, 이제 막 하드웨어 구독모델을 도입하려는 애플은 이미 여러 가지 구독 서비스를 출시해 운영해오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애플은 애플뮤직, 애플TV, 아이클라우드 등 자사의 여러 서비스 등을 월 결제 모델로 운영 중이다. 음악과 TV는 대표적인 콘텐츠 소비 플랫폼이며 아이클라우드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 역시 구글, MS 등 수많은 혁신 IT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구독형 서비스다. 향후 애플은 이러한 소프트웨어 서비스와 하드웨어 서비스를 결합해 구독형 모델로 내놓는단 포부도 가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 구독 서비스 가격은 최신 스마트폰 기종인 아이폰13 기준 월 35달러 수준으로 24개월간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총 구독료는 840달러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아이폰13의 판매가는 799달러로, 구독형 모델이 사실상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러한 아이폰 구독 서비스는 향후 맥북, 아이맥 등 애플의 PC 제품으로도 확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보다도 몇 배는 더 비싼 컴퓨터 모델에도 이러한 구독모델이 제공된다면 그 효용성은 스마트폰보다도 더 클 수 있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기대다.
하드웨어 시장에도 구독 서비스가 도입된다면 가장 환영받을 산업 분야는 어디일까. 시장에선 가깝게는 자동차 산업에 구독모델이 도입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테슬라가 자율주행기술에 구독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자동차야말로 이러한 구독 서비스가 환영받을 대표적 분야이기 때문이다. 한 대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자동차를 구독해 사용하면서 자동차 관리 및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고, 또 신차가 나올 경우 새롭게 차를 바꿔 이용해보는 경험이야말로 구독경제가 바라보는 궁극적이며 이상적인 사업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공유경제라 불리며 성장한 셰어링카, 셰어링하우스, 셰어링오피스의 열풍은 바로 이러한 구독경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버, 에어비엔비, 위워크로 대표되는 공유경제의 연장선상에서 구독경제가 어떻게 그 바통을 이어받고 성장할 수 있을지 관심과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