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개막한 중국 상하이 국제모터쇼를 둘러본 중국 경제일보는 전문 전기차 업체보다 출발이 늦었던 완성차 업체들의 행보에 주목하며 이같이 평가했다. 실제로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규모로 열린 상하이 모터쇼에서는 향후 글로벌 시장을 재편할 신형 전기차들이 대거 공개됐다. 한국의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사가 경쟁적으로 신차를 공개했고,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미국의 테슬라와 웨이라이(니오), 샤오펑(엑스펑), 리샹(리오토) 등 중국의 전기차 삼총사가 대형 부스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벤츠는 콤팩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더 뉴 EQB’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66.5㎾h의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 시 419㎞(유럽국제표준시험방식기준·WLTP기준)의 주행이 가능한 차량이다. BMW도 500마력 이상 최고출력과 WLTP 기준 600㎞ 이상의 주행거리를 제공하는 플래그십 순수전기차 ‘iX’를 선보였다.
상하이 국제모터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된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아우디는 중국 현지 합작 파트너사인 이치자동차(FAW), 상하이자동차(SAIC)와 함께 처음으로 상하이 모터쇼에 참가해 ‘아우디 A6 e-트론 콘셉트카’와 ‘뉴 아우디 Q5L’, 파트너사와 함께 제작한 ‘A7L’ 등 신차 4종을 공개했다. 국내 시장과 업계의 시선은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초로 공개한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에 집중됐다. 87.2㎾h 배터리를 탑재한 이 차량은 1회 충전 시 최대 427㎞를 주행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제네시스 측은 “350㎾급 초급속 충전 시 22분 내에 배터리 용량의 10%에서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상하이 모터쇼 현장에서 공개된 전기차는 대부분 올 하반기에 국내 출시가 예정돼 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2021년 ‘현재’ 국내 순수전기차 시장의 최강자는 어떤 브랜드의 어떤 모델일까. <매경LUXMEN>이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에 판매 중이거나 사전계약을 마친 11개 브랜드, 16개 모델의 스펙을 비교했다. 여기에 전기차 충전 플랫폼 기업 차지인의 최영석 CSO(최고전략책임자)와 변성용 대표,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가 각자 베스트 전기차를 선정하고 그 이유를 차근차근 짚어냈다.
▶지난해 국내 전기차 시장 33% 성장, 올 1분기에만 1만3273대 팔려
베스트 전기차를 공개하기 전에 우선 현재 국내 전기차 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전년 대비 34.7% 성장하며 사상 처음으로 200만 대를 돌파했다. 제조사별로 테슬라가 1위를, 현대차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2020년 주요국의 전기동력차 보급현황과 주요 정책을 분석, 발표한 ‘2020년 주요국 전기동력차 보급현황과 주요 정책변화’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는 202만5371대가 판매됐다. 지역별로는 유럽과 중국이 전체 전기동력차(하이브리드, 수소 포함) 시장 성장을 견인했다.
제작사별로는 테슬라가 44만2334대를 판매해 1위를, 폭스바겐그룹이 38만1406대를 판매하며 2위, 중국 합작법인에서 출시한 ‘홍구안 미니(Hongguang Mini)’가 선전하며 총 22만1116대를 판매한 GM그룹이 3위를 차지했다.
2019년 조사에서 7위에 올랐던 현대차그룹은 전년 대비 59.9% 증가한 19만9497대를 판매하며 4위에 올랐다.
포르쉐 ‘타이칸’
국내 전기차 시장은 어떨까.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가 집계한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총 4만6677대로 전년 대비 33.2% 증가했다. 올 1월부터 3월까지 1분기만 놓고 보면 1월 615대, 2월 2042대, 3월 1만616대가 팔리며 총 1만3273대가 판매됐다. 1분기 승용부문 수위를 차지한 모델은 총 3201대가 판매된 테슬라의 ‘모델3’였다. 2위와 3위는 기아의 ‘코나EV’와 ‘니로EV’, 4위는 포르쉐의 ‘타이칸’, 5위는 캠시스의 ‘쎄보-C’가 뒤를 이었다. 2위부터 5위까지의 판매량을 합해도 1위의 판매량에 미치지 못할 만큼 ‘모델3’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상용부문 전기차 1위는 단연 현대차의 ‘포터EV’가 차지했다. 총 4243대가 판매되며 승용부문 1위인 모델3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상용부문 2위에 오른 기아 ‘봉고EV’(2547대)와 판매대수를 합치면 총 6790대. 이는 승용부문 1위부터 20위까지 판매량(6278대)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4월에 출시된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사전계약을 실시한 기아의 ‘EV6’가 더해지면 변동이 예상된다.
▶전기차 경쟁력 3대요인 친환경성, 주행거리, 가격 따져봐야
국내 시장에 판매 중이거나 사전계약을 마친 11개 브랜드, 16개 순수전기차 모델의 스펙을 비교하며 전문가들은 ‘친환경성’ ‘1회 충전 주행거리’ ‘가격’에 주목했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솔직히 차량의 가속성능, 즉 높은 토크는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요소이긴 하지만 모든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좋기 때문에 전기차끼리 경쟁에 큰 요소가 아니다”라며 “외부 스펙이나 디자인보다 실제 가치를 중심으로 구매자 입장에서 평가했다”고 전했다.
대상차량 중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각 제조사 발표 기준)가 가장 긴 차량은 테슬라의 ‘모델Y’(듀얼모터 기준 448~511㎞)였다. 같은 브랜드의 ‘모델3’(듀얼모터 기준 480~496㎞), 기아의 ‘EV6’(롱레인지 450㎞), 현대차 ‘아이오닉5’(롱레인지 410~430㎞), 쉐보레 ‘볼트EV’(414㎞) 등이 그 뒤를 쫓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전기차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테슬라의 모델 시리즈 중 ‘모델Y’는 최초의 보급형 SUV”라며 “보급형이라도 테슬라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평가했다.
현재 기준 베스트 전기차로 현대차의 ‘아이오닉5’를 선정한 변성용 차지인 대표는 현대차 브랜드에 대해 “프리미엄 제조사도, 테슬라도 아니다. 브랜드 이미지와 부유한 고객을 이용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회사도 아니며, 그렇다고 든든한 팬덤을 바탕으로 얼리어답터부터 확장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브랜드도 아니다. 일단 많이 팔고 봐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대중차 브랜드”라고 설명했다. 변 대표는 “그런 이유로 E-GMP니 800V니 자신의 기술적 성취를 열심히 설명하는 대신 이걸로 뭘 할 수 있는지를 풍성하게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현대차는 그걸 아주 잘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의 첫 순수전기차 플랫폼 E-GMP가 적용된 ‘아이오닉5’에 대해선 “준중형 크로스오버의 공식을 따른 것 같지만, 그 속은 중형 이상”이라며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신선하다. 골치 아픈 충전도 십여 분이면 충분한 양을 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걸 끌고 다니면 아무 곳에서나 (전자기기를 연결해) 전기를 펑펑 쓸 수 있다고 직접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 차만 있으면 언제든 산으로 들로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꿈을 꾸게 하는 차라니, 근사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아이오닉5는 헤리티지라는, 지금까지 현대차가 다루지 못했던 가치를 형상화한 첫 번째 현대차”라며 “포니에 대한 추억이 있는 이들은 이 차를 반드시 돌아봐 줄 것”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현대차 측이 아이오닉5에 400V ·800V 멀티급속충전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는 발표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며 “해당 시스템을 최초로 적용한 차는 포르쉐의 ‘타이칸’이며 다만 보급형 양산차량 중에선 최초라고 할 수 있다”고 정정했다.
멀티급속충전시스템은 현재 현대차와 포르쉐만 상용화한 기술이다. 기술의 근원은 크로아티아의 전기차 기업 ‘리막(RIMAC)’이다. 두 회사 모두 이 회사를 지분을 보유한 투자사로 광범위한 기술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기아 ‘EV6’에 적용된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제로백 3.5초, EV6 GT
국내 차 역사상 최고 퍼포먼스
차량의 공간효율성을 가늠할 수 있는 축간거리(자동차의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의 거리)는 현대차 ‘아이오닉5’(3000㎜), 재규어 ‘I-페이스’(2990㎜), 기아 ‘EV6’(2900㎜), 포르쉐 ‘타이칸’(2900㎜) 등이 길었다. 차량의 성능을 대변하는 퍼포먼스 중 하나인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이르는 시간)은 기아 ‘EV6’의 고성능 모델인 ‘GT’가 3.5초로 가장 빨랐다. 이는 국내 자동차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다. 베스트 전기차로 ‘EV6 GT라인’을 꼽은 최영석 차지인 CSO는 “기아는 브랜드 인지도가 현대차에 비해 떨어지고 특히 북미에선 인지도 확보가 가장 중요한데, 이를 극복하는 대표 차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EV6는 지금까지 기아에서 판매한 차량 중 가장 고가로 E-GMP 플랫폼이 현대차 아이오닉5와 동일하지만 디자인 면에서 대중적인 접근이 더 나을 것”이라며 “특히 GT라인은 빠른 고성능 기아차라는 이미지와 함께 ‘반값 타이칸’으로 인지도를 높이며 합리적인 소비자가 구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말 EV6의 사전계약을 진행한 기아는 첫날 예약대수만 2만1016대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월 출시한 4세대 쏘렌토가 보유하고 있던 SUV 최대 사전계약 대수(1만8941대)를 가뿐히 넘어선 기록이다. 세부 트림별로는 스탠더드가 10.3%, 롱레인지 64.5%, GT라인이 4.6%를 차지했다. 반면 ‘아이오닉5’ ‘모델Y’와 함께 포르쉐 ‘타이칸’을 베스트 전기차로 선정한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타이칸에는 후륜 양산형 2단 변속기가 처음 적용되는 등 신기술이 다수 탑재됐다”며 “럭셔리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 진정한 스포츠 전기차의 모습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EQC
▶전기차 구매 관건은 정부 보조금
그렇다면 과연 현 시점이 전기차를 구매해야 하는 적기일까.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보고서상에서 “2020년 전기동력차 시장의 성장은 각국 정부의 보조금 확대 등 적극적 인센티브 정책에 힘입은 결과”라며 “아직 전기동력차가 내연기관차 대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보조금 확대와 충전인프라 구축 확대, 충전 편의성 제고 등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한 조바심도 커지고 있다. 일례로 최근까지 현대차 ‘아이오닉5’의 국내 사전 예약은 약 4만 대 가까이 진행됐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합치면 약 1200만원을 지원받는데 이는 원 차량 가격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아이오닉5를 계약한 이들은 보조금 지급 대상자로 선정된 뒤 2개월 안에 차량을 받으면 보조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전기차 보조금이 마냥 지급되는 건 아니다. 확보된 예산을 넘어서면 전기차를 구매해도 보조금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올해는 보조금 신청이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서울시는 75%, 부산시는 56%나 접수돼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 보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 미리 보조금 접수에 나선 이들의 대다수가 테슬라 차량 구매자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올해 정부의 전기차 보급 목표량은 12만1000대. 현재 정부의 보조금은 마련됐지만 지자체 예산인 지방비 보조금은 보급 목표의 70%만 확보된 상황이다.
성능 면에선 어떨까. 한 전기차 전문가는 “아이오닉5나 EV5, 테슬라 모델을 제외하면 현재 판매 중인 전기차는 벤츠, BMW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차량도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앞으로 벤츠의 ‘EQB’나 BMW의 ‘iX’ 등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면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내 시장에 출시된 순수전기차 각 모델별 스펙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각사 발표 중심. 가격은 보조금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