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 중 하나는 ‘크고 고급스러운 SUV’다.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몰고 온 대형 SUV 바람이 그대로 시장에 안착했다. 올 7월까지 국산 대형 SUV 판매량은 팰리세이드가 3만5162대로 1위에 오르며 압도적인 시장 장악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수시장에서 국산, 수입 가릴 것 없이 SUV가 대세인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인데, 여기에 대형화 바람이 불면서 수입 SUV도 큰 차들이 대거 출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전보다 캠핑이나 다양한 레저 활동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대형화 바람의 원인 중 하나. 실제로 2010년에 60만 명이던 캠핑인구가 현재 600여만 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세단보다 공간이 넓어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하기 편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올 상반기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레저용 차량(RV)이 30만 대 이상 판매된 것도 이러한 현상을 뒷받침한다. 여기서 잠깐, ‘공간이 넓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차’라면 떠오르는 세그먼트가 하나 있다.
‘픽업트럭(Pickup Truck)’이 그 주인공이다. 소형트럭의 한 종류인데, 상용트럭과 달리 화물이 아니라 운전자와 탑승자에 초점을 맞췄다. 엔진개발이 이어지고 차체가 커지며 해외에선 SUV의 파생모델로 자체 시장을 형성할 만큼 인기가 높다.
국내 픽업트럭 시장의 터줏 대감은 쌍용차의 ‘렉스턴 스포츠 칸’. 그런데 최근 국내시장에 수입 픽업트럭이 출시되며 이 당연했던 공식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과연 픽업트럭이 국내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까.
쉐보레 ‘콜로라도’
▶수입 픽업트럭 포문 연 쉐보레
지난 8월 26일 강원도 횡성에 자리한 웰리힐리 파크에서 쉐보레의 ‘콜로라도(Colorado)’가 국내 첫 선을 보이고 사전계약에 들어갔다.
이후 콜로라도의 사전계약 물량은 3일 만에 700대를 돌파했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해 국내 시장에 처음 공개된 이래 오리지널 픽업트럭을 열망해온 많은 고객들께서 기다려 주셨던 리얼 아메리칸 픽업트럭 콜로라도를 출시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콜로라도는 정통 픽업트럭만이 가질 수 있는 헤리티지와 강력한 상품성을 바탕으로 국내 픽업트럭 마니아층의 잠재 수요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전량 수입되는 중형 픽업트럭 콜로라도는 3.6ℓ 6기통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하이드라매틱 8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최고 출력 312마력, 최대토크 38㎏·m, 최대 3.2t의 견인 능력을 갖췄다. 2열 좌석이 있는 4도어 모델로 휠베이스가 3258㎜(쉐보레의 SUV 이쿼녹스의 휄베이스는 2725㎜)나 된다.
넉넉한 실내공간과 함께 1170ℓ의 대용량 화물적재가 가능하다. 이밖에도 2열 시트 아래에는 공구 등의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적재함이 자리해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뒷유리에는 개폐가 가능한 리어 슬라이딩 윈도(Rear Sliding Window)가 적용돼 환기는 물론, 반려 동물과 함께 이동할 경우 실내 탑승이 어려운 대형 반려견의 상태를 뒷유리창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실내에는 가죽시트를 비롯해, 앞좌석에 전동 시트, 파워 요추 받침과 열선 시트가 적용됐다. 열선 스티어링 휠, 오토에어컨, 8인치 터치스크린 오디오, 크루즈 컨트롤 등 기본 모델에도 편의사양이 다양하게 탑재됐다.
▶쌍용차의 독점무대, 아성 흔들리나
앞서도 밝혔지만 2000년 이후 국내 픽업트럭 시장은 쌍용차의 독무대였다. 쌍용차는 2002년 ‘무쏘 스포츠’, 2006년 ‘액티언 스포츠’, 2012년 ‘코란도 스포츠’를 출시하며 국내 픽업트럭 시장의 원톱이 됐다.
지난해는 SUV 모델 ‘G4 렉스턴’의 파생모델인 ‘렉스턴 스포츠’와 짐칸의 길이를 확장한 롱보디 모델 ‘렉스턴 스포츠 칸’을 출시하며 라인업을 확장했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가 집계한 올 1~8월 외형별 신차등록 대수를 살펴보면 픽업트럭은 총 2만9462대가 판매됐다. 7월에만 3382대, 8월에는 3077대가 판매됐다. 국내 픽업트럭 모델이 한정적인 걸 감안하면 이 수치가 곧 ‘렉스턴 스포츠 칸’의 판매량이다.
내년 상반기에 국내 출시 될 ‘2020 올 뉴 지프 글라디에이터’
과연 콜로라도가 ‘렉스턴 스포츠 칸’의 아성을 흔들 수 있을까. 우선 가격만 놓고 보면 콜로라도는 3855만~4265만원으로 책정됐다.
2020년형 ‘렉스턴 스포츠 칸’은 2419만~3154만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저렴한 모델을 비교하면 콜로라도가 렉스턴보다 약 1400만원 이상 비싸지만 여타 수입차 시장의 가격대와 픽업트럭의 브랜드 파워를 감안하면 타깃이 전혀 다를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포드도 중형 픽업트럭 ‘레인저’의 국내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2011년 단종된 후 7년 만에 다시 출시된 레인저는 도심형 픽업트럭으로 타깃층을 넓혀 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
2.0ℓ 신형 디젤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가 탑재됐고, 기존 3.2ℓ 디젤엔진보다 연료효율성이 9% 이상 개선됐다. 동급 최고 수준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적용됐다고 알려졌다.
‘지프’를 판매하는 FCA코리아도 내년 상반기에 픽업스타일의 ‘2020 올 뉴 지프 글라디에이터’를 출시한다. 그런가하면 현대차그룹의 픽업트럭도 국내 완성차 업계의 관심사 중 하나다.
업계에선 2021년경 이 시장에 가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2015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중형 픽업트럭 콘셉트카 ‘산타크루즈’를 공개한 바 있다. 현대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에서 개발된 이 차량은 싼타페급 SUV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당시 현대차측은 “이전 트럭 소비자들과 다른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차”라며 “SUV와 픽업트럭의 장점을 합친 크로스오버 트럭”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현대차의 픽업트럭 콘셉트카 ‘산타크루즈’
▶픽업트럭의 가장 큰 매력은 세금
5인 가족이 타고도 짐칸을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픽업트럭의 또 다른 매력은 사실 세금이다. 승용차가 아닌 화물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자동차세가 저렴하다. 이건 쌍용의 픽업트럭이 그동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적재량 1t 미만의 화물차는 연간 2만8500원의 세금이 전부다. 콜로라도의 경우 동급 배기량(3649㏄)의 세단이라면 약 95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취·등록세도 차 가격의 5%로 세단(7%)보다 싸다. 여기에 개별소비세와 교육세가 면제되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하면 부가세 10%도 환급받는다.
쌍용차 ‘렉스턴 스포츠 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4만2000여 대였던 픽업트럭 시장은 올해 5만 대로 확대가 예상된다”며 “수입 픽업트럭의 활약이 시장을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저 톨레도 한국지엠 영업·서비스·마케팅 부문 부사장은 “콜로라도의 국내 도입은 정통 픽업트럭 출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천편일률적이었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세그먼트로의 확장을 알리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대표 모델로 자리 잡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