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발표한 지난 12월 18일부터 사흘 동안 중국 인민은행 대규모 자금을 시장에 쏟아냈다. 이 기간에 인민은행이 푼 자금은 무려 3000억위안(약 52조원)에 달한다. 인민은행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일을 벌였을까.
2014년 2월 1일, 세계 경제는 지난 2007년 이후 지속되던 글로벌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끈 버냉키 시대를 마감하고 노벨상 수상자의 아내 재닛 옐런의 시대를 맞는다. 대규모 자금공급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불식시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은 버냉키 이상으로 강력한 부양책을 지지하는 새 리더는 세계 경제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갈까.
6개월 후 삼바의 나라 브라질은 세계인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월드컵을 연다. 그런데 브라질 경제는 갈수록 물가는 올라가고 성장률은 떨어지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 것인가.
늘어나는 긍정적 전망
미국 연방은행이 테이퍼링을 발표하던 지난 12월 18일 BOA메릴린치는 대단히 긍정적인 내용의 세계 주요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4년 세계경제가 향상될 것이라고 답한 펀드매니저 숫자는 71%로 나타나 한 달 전 조사 때의 67%보다 4%나 늘었다. 전체 응답자의 3분의 2가 훨씬 넘는 전문가들이 세계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세계의 돈줄을 쥐고 있는 펀드매니저들의 시각이 개선됐다는 점에선 자금흐름이 나아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크레디 아그리콜도 “미국경제는 주가상승으로 인한 긍정적 자산효과와 실업률 하락 등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맥킨지가 전 세계 주요기업의 임원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제상황 인식 조사도 주요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들이 자산시장의 거품이나 정치적 갈등, 미국의 이상성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발전할 것을 기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경제 데이터에선 이렇다 할 부정적 영향을 줄 게 없지만 정치적 분쟁과 지난 10월 미국 정부의 셧다운 위기 등이 기업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시장의 수요나 수익성 등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세계경제의 견인차인 미국과 중국의 성장률은 이런 전문가들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나왔다. 미국의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2월 20일 4.1%의 성장률을 발표했는데 이는 시장의 예상치 3.1%보다 무려 1%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이에 앞서 블룸버그가 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4년 성장전망에서도 주택경기나 소비개선 등을 반영한 긍정적 답변이 크게 늘었다. 10월 조사에선 2014년 1분기와 2분기 성장률 전망치가 각각 평균 2.6%와 2.8%였는데, 11월 설문에선 각각 2.6%와 2.9%로 상승했다.
중국의 경제성장 전망도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3분기 성장률은 7.8%로 당초 예상치 7.7%를 소폭 상회했다. 대외여건 개선으로 수출 중심의 회복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게 국제금융센터의 분석이다. 블룸버그 조사 결과도 상승했다. 지난 7월엔 4분기 성장률 전망치가 평균 7.3%였으니 10월과 11월 설문에선 각각 7.6%로 나왔다.
이처럼 시장 참가자들이 장밋빛으로 경제를 보고 있지만 화려한 꽃 뒤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버냉키의 후임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재닛 옐런 차기 FRB의장
버냉키 “회복 아직 멀어”
버냉키 연준의장은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한 지난 12월 18일 연준 의장으로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버냉키 의장은 글로벌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며 향후 양적완화를 추가로 축소하는 문제 역시 “데이터에 입각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양적완화를 끝내는 첫 단추까지는 풀었지만 옐런 차기 의장에게 넘길 과제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버냉키가 이처럼 여운을 남기고 간 것은 양적완화를 조기에 끝내기엔 미국 경제가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일시적으로 넘어간 재정긴축 문제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지난 10월 미국 여야가 극적인 합의에 도달해 일시적으로 연기한데 이어 12월 초 다시 양당의 의견절충으로 2014년 예산안까지 통과시키기는 했으나 재정긴축 문제는 앞으로도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은 높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이미 16조달러인 GDP보다 훨씬 많은 17조달러를 넘었고 계속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 역시 “사람들이 아주 타이트한 재정정책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는 말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옐런 차기 의장이 상당기간 부양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증시 버틴 것은 연준 덕
시장 경제학자 중 대가로 꼽히는 조지 매그너스 전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은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주식시장의 회의론자들 가운데 시각을 바꾼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2014년엔 투자전략가들이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는 특히 지금 재정 구조조정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라면서 글로벌 증시의 추가상승에 미국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 상태에 있는 미국 정부가 불의의 재정절벽 걸림돌을 피해야 (추가상승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미국 연준 덕에 버티는 것이지 경제가 좋아서 증시가 좋아진 게 아니란 평가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바젤Ⅲ와 볼커룰 등 대형은행을 옥죄는 규제들이 계속 가동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의 대형은행인 JP모건체이스는 최근 아시아 투자사업을 매각키로 한 바 있다. 이에 앞서 BOA는 지난 9월 뉴욕과 펜실베니아 일대 40여 지점을 매각하고 1만6000여 명을 감원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씨티그룹도 학자금 대출사업부와 영국의 온라인 은행 서비스, 일본 주식중개사업 등 비핵심사업을 정리하면서 한국에서도 직원 10%를 감축한 바 있다.
이처럼 구조조정까지 해야 할 정도로 경영여건이 어려워 미국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보수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시중에 엄청난 자금이 풀리고 경기회복 조짐까지 보이지만 미국 연준이 섣불리 양적완화를 중단하기 어려운 것은 이런 속사정 때문이다. 양적완화는 미국의 상업은행들이 정상적으로 금융지원을 하지 못함에 따라 미 연준이 직접 시장에 참여해 상업은행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바젤Ⅲ 도입으로 대형화된 미국 투자은행들을 위축시킬 소지도 있다. 맥킨지는 이와 관련해 세계 시장의 54%를 차지하는 13개 대형 투자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012년 8%에 그쳤는데 바젤Ⅲ 도입에 따른 자기자본 규정 강화로 앞으로도 계속 위축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에 대형은행의 자기자본 투자를 규제하는 볼커 룰까지 나와 대형은행의 위축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2015년부터 투자은행들은 자기자산으로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직접 투자하는 게 제한된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이 법안이 만들어졌으나 수익성이 줄어들면 은행들은 일반 대출에도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로존 미미하게 나타나는 개선의 조짐
유로존 경제도 조금씩 개선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12월 초 위기의 진원이었던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C에서 Caa3로 두 단계 상향조정한 바 있다. 무디스는 또 그리스의 신용전망을 ‘안정적’으로 매겼다. 무디스는 그리스가 재정긴축을 시행해 2013년 목표를 맞출 수 있을 뿐 아니라 2014년에 더욱 개선될 것을 예상해 이 같은 등급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리차드 호이 BNY 멜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경제의 더블 딥 침체는 끝났고 지속가능하지만 지지부진한 확장기에 들어설 것으로 믿고 있다”며 “2014년 유로존 성장률은 1~1.5%로 예상한다. 이 정도면 유로존의 실업률을 끌어내리지는 못해도 현 상태에서 유지하기에 충분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부정적인 소식도 이어진다.
자금난에 몰린 스페인 발렌시아 주 정부는 지난 11월 지역 공영방송사를 폐쇄한 바 있다. 예산부족 때문에 1000여 명의 직원을 정리하려는 것을 법원이 막자 아예 폐쇄해버린 것이다.
프랑스에선 최근 부족한 연금재원 충당을 위한 증세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붉은 모자를 쓰고 시위에 나섰다. 붉은 모자는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자 시민들이 붉은 모자를 쓰고 반대하던 것을 본 딴 것. 반항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BOA메릴린치도 유로존 경기가 회복되고는 있으나 아직은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실업률이 이어지고 있다며 재정위기 전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2분기 동안 유로존 전반의 성장률이 양호해졌으나 아직은 독일이 주도하는 수준이고 나머지 지역의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는 것.
프랑스의 경우 재정위기 전 실업률을 회복하려면 2018년 정도가 되어야 하며 스페인은 앞으로 5년 정도 높은 수준의 실업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유로존의 회복이 지연되는 것 역시 이 지역 은행들의 자금지원 기능이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이 때문에 부실은행을 정리하기 위한 계획수립에 나섰으나 협상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마리오 드리기 ECB 총재는 “의사결정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금융지원 약정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우려되는 유로화 고평가
특히 미국경제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로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유럽 통화당국이 당황해 하고 있다. 유로화 대비 달러화 환율은 지난 6월엔 1유로 당 1.28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다시 1.38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특히 미국 연준이 테이퍼링을 발표한 뒤에도 유로화는 계속 강세를 보이고 있어 ECB가 고민하고 있다.
그리스의 파산 직면이나 이탈리아 정정불안 등 악재가 이어지며 존속 자체가 의심을 받을 때도 있었으나 어쨌든 유로화는 ECB가 본격적으로 양적완화에 나선 뒤 오히려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돈을 풀어 금리를 낮추는데 반대로 돈값이 올라가는 효과가 나타나니 환율을 통한 경기회복 기대감이 사라졌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는 데는 독일 경제가 워낙 건실한데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주변국도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고 있고 아일랜드가 유로존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구제금융을 탈피한 것도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