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뇌수술에 해당한다. 외과수술은 그냥 짼다고 해서 하면 되겠지만 뇌수술은 다르다. 사전에 환자가족들과 만나 위험성도 얘길한다. 만약의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저축은행 문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농협경제연구소장으로 있을 때부터 저축은행 문제를 유심히 봤다고 한다. 하지만 위원장 내정 직후 금융위 실무진들의 저축은행 관련 보고를 받으면서 부실규모 등이 당초 예상보다 커서 많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저축은행은 곧 터질 문제였다. 언제 터뜨려야 할지 아니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민일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Viewpoint1. 저축은행 부실의 단초
삼화저축은행
그렇다면 저축은행은 어떻게 이 지경까지 갔을까. 저축은행 정책의 시작은 1972년 8.3 사채 동결조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금융 양성 방안이 나오면서 상호신용금고법 제정을 기반으로 저축은행의 전신인 상호신용금고가 등장한다. 워낙 규모가 작아 정책당국의 관심권에서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도 쉽진 않았다.
당시 정부에서는 보험업 정책과 감독을 맡고 있던 재무부의 보험담당 사무관이 상호신용금고에 대한 정책 업무를 겸하도록 했다. 보험담당이 곁다리로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큰 무리 없이 굴러갔다. 금융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에 큰 주목도 받질 못했다.
지금의 저축은행 문제의 단초는 1997년 외환위기 때 시작됐다. 극도로 위축됐던 금융시장의 불안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나온 것이 1인당 예금보장한도(당시 2000만원) 무제한 확대다. 저축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정부에서 고객들의 예금을 전액 보장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시 정책을 맡았던 재경부 출신의 전직 고위 관료는 “외환위기 때 그야말로 한시적으로 풀어준 것이기 때문에 다시 원위치를 시켰어야했는데 그게 안됐다. 불씨가 그때 붙은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2000년 들어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정부는 저축은행에 대한 예금보장 한도를 어떻게 할지 논의가 시작됐다. 논란이 많았다. 위기 때 임시 조치로 무제한 보장을 해주기로 했는데 과연 얼마로 되돌릴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5000만원으로 결정됐고 2001년부터 시행됐다. 저축은행으로 돈이 급격하게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이때 생겼다.
사실 5000만원이라는 금액은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5배 수준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한 전직 금융당국 관계자는 “참고 사례가 된 다른 나라들은 1인당 GDP의 2~3배 수준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를 결정하고 있었다”며 “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아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이 필요했지만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름도 근사해졌다. 2000년 잇따른 게이트로 신용금고의 신뢰가 추락하자 업계는 자구 노력 차원에서 명칭 변경을 요청했고 2001년 법 개정을 통해 상호신용‘금고’에서 저축‘은행’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저축은행 측 경영환경 변화를 고려한 면도 없지 않다. 시중은행들의 영업전략이 바뀌면서 저축은행업권이 위협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 대규모 기업대출 때문에 휘청거렸던 시중은행들이 기업대출을 크게 줄이고 가계대출쪽으로 빠르게 눈을 돌렸다. 사실 그전에는 일반인들이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이 일반가계대출을 늘리면서 저축은행 창구에 가서 돈을 빌리려했던 일반인들이 은행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됐다.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에 나서면서 기존에 가계대출을 맡았던 저축은행들의 영업기반이 빠르게 잠식당했다. 저축은행들의 생존차원에서라도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당국이 들어준 것이다.
1인당 5000만원까지 예보 한도를 높여 놓자 한 사람이 여러 저축은행으로 계좌를 나눠 돈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겨도 정부가 보증해 주는 데다 금리도 은행보다 많이 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은 계속 유입되는 예금자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기 위해 우량기업 대출 등 안정적인 자금 운용처가 필요했다. 하지만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했다. 이는 은행 여신금지 업종을 폐지한 영향이 컸다. 정부는 골프장, 콘도미니엄 등 일부 업종에 대해 은행이 대출해주는 것을 금지하다 1998년 해당 규제를 철폐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은행 여신금지 업종은 대부분 저축은행의 영역이었는데 규제가 철폐되면서 결국 대부분 은행들에 장악 당했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발을 풀어준 대신 저축은행에 대한 대안을 만들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업계가 찾아낸 돌파구가 ‘신용대출’이었다. 2002년 신용카드 대란이 터지자 정부는 저축은행에 3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을 확대하도록 조치했다. 구체적으로 300만원 이하 대출에 대해 위험가중치를 50% 감면했다.
정책당국도 2002년에 저축은행의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서민소액대출을 늘리는 쪽으로 유도했다. 하지만 오히려 독이 됐다. 당시 고객들의 신용정도를 제대로 파악할 능력이 안됐던 저축은행들이 신용대출을 늘렸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는 결과가 벌어졌다. 대출 규모는 급증했지만 부실이 커지면서 연체율은 최고 60%까지 올라갔다. 이 여파로 저축은행들은 2004년 3379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다시 큰 위기에 빠졌다.
Viewpoint 2. 신천지에서 독으로 바뀐 부동산PF
중앙부산저축은행
그러나 이때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위기를 빠져나왔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라는 신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2006년에 도입한 ‘88클럽’이라는 또 다른 정책을 봐야한다.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이상이면서, 고정이하 여신비율 8% 이하’면 우량저축은행로 분류해줬다. ‘88클럽에 가입된 저축은행은 우량하다’라는 딱지를 붙여준 셈이다. 동시에 88클럽에 가입한 저축은행들에겐 개별법인 한곳에 80억원 이상 대출이 가능하도록 해줬다. 그동안 발이 묶였던 저축은행들이 거액 대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해준 것이다. 예금보장한도 5000만원 등으로 몰려든 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하던 저축은행에겐 숨통을 터주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이 소액서민대출이라는 본업을 벗어나 거액대출에 나서면서 리스크를 확대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건설회사들이 원했던 자금을 부동산 PF를 통한 대규모 대출로 저축은행들이 적극 나섰다. PF대출은 부동산 바람을 타고 2005~2007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물론 부동산시장이 호황을 누릴 때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일정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매력이 있었지만 부동산시장이 침체의 길로 접어들면서 하나둘씩 부실로 쌓이게 됐다. 부동산시장이 늘 상승세만 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을 저축은행들이 하나둘씩 안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대형 저축은행의 출현으로 대규모 PF 대출은 날개를 달았다. 정부는 부실 저축은행 문제를 최대한 업계 내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지점 추가 설치 인센티브까지 줘가며 저축은행 인수를 유도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꺾이는 상황에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PF대출은 대거 부실화됐고 이는 위기로 이어졌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감독강화까지 겹치면서 저축은행 부실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9년 재무부 사무관시절 저축은행을 맡았던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오자마자 “저축은행에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저축은행업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한 진동수 전 위원장은 규정을 강화하고 기준을 명확히 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감사원에서 저축은행 PF실태를 감사하면서 감독원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감독원의 기존 저축은행팀 직원들을 전원 교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새롭게 저축은행을 맡게 된 감독원 직원들은 규정대로 엄격하게 나섰다.
결국 진위원장과 감사원 감사결과가 겹치면서 저축은행에 대한 감독이 빠른 속도로 강화됐고 경기는 침체국면에 빠져들면서 부실로 분류되는 저축은행들이 크게 늘어난 것처럼 확대 해석될 소지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최근의 저축은행 문제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는 2007년 7월 한 조찬 강연에서 “저축은행 PF 쏠림 현상이 우려스럽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우려만 나왔을 뿐 실질적인 대책이 이뤄지지 못한 채 그동안 시간만 보냈다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들다. 적절한 감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PF대출을 크게 4등급으로 분류한다. 정상적으로 원리금이 상환되고 있거나 연체되더라도 1개월 미만으로 연체되면 정상대출,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연체의 경우는 연체대출,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 연체는 요주의대출, 6개월 이상 연체는 고정이하대출로 분류한다.
금융당국은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1개월 이상 연체대출이 전체 PF대출 가운데 24.3%(2010년 9월말 기준)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연말 저축은행 PF대출 총액을 약 17조~18조억원으로 봤을 때 연체되고 있는 대출이 4조원을 훨씬 넘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문제는 앞으로 연체율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정부가 지난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저축은행 PF대출을 3조8000억원 어치 매입하면서 저축은행들의 PF대출 연체율을 2010년 3월 13.7%에서 6월 8.7%로 크게 떨어뜨린 바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오래가지 못했고 잠재 부실이 계속 표면화되면서 연체율은 다시 20% 이상으로 급등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캠코 매입으로 PF대출 총액 자체를 3조8000억원 줄였지만 지난 6월 저축은행들이 일반 대출로 분류해 왔던 3조1000억원의 PF대출이 추가로 드러난 바 있다”며 “이 대출과 기존 대출에 잠재돼 있던 부실이 드러나면서 연체율이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특히 88클럽 제도가 문제를 더욱 키웠다. 88클럽에 속한 저축은행 중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8% 조건을 못 맞추게 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88클럽에서 탈락하자마자 기존에 해줬던 80억원 이상 대출들이 기준에서 벗어난 대출로 분류되면서 일시에 부실대출이 대규모로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대규모 충당금을 일시에 쌓아야하기 때문에 부실을 더더욱 키우게 되는 사태가 초래됐다. 지난해 9월 PF대출 연체율이 갑자기 24%까지 치솟는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앞으로 추가 부실이 얼마나 드러날지는 저축은행들이 대출해준 PF 사업성에 달려 있다. 금융감독원은 2009년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들이 대출해준 PF 사업장 714곳 가운데 24.8%만 정상 사업장으로 분류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체 PF대출 가운데 최대 75%가 부실화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현재까지 연체율이 24.3%인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지금까지 연체된 대출의 2배 이상이 새로 연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업계 여신 건전성도 악화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6월 현재 저축은행들의 고정이하여신은 5조9977억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5310억원 늘어났다.
Viewpoint 3. 예금자, 정부, 저축은행 모두 도덕적 해이
삼화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서울 삼성동 본점에 가지급금을 신청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금융권은 최근 저축은행 상황에 대해 ‘위기가 위기를 낳았다’고 분석한다. 그간 여러 위기가 있을 때마다 땜질식 처방이 동원되면서 새로운 위기의 단초가 됐다는 설명이다. 임시방편이 문제의 근본을 치유하지 못한 채 병을 오히려 키운 것이다.
PF대출 문제로 본격화되고 있는 저축은행 위기는 예금자, 정부, 저축은행이 서로 경쟁하듯 벌인 삼각 도덕적 해이의 결합물이다. 우선 예금자들은 은행이 문을 닫아도 원리금 5000만원까지 보장이 되는 예금자보호제도를 등에 업고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으로 대거 몰렸다.
특히 서민들보다는 이자에 민감한 부유층이 5000만원 이하로 쪼개서 여러 저축은행에 예금하는 사례가 많다. 투자할 때는 손실에 대비해 투자회사의 건전성에 대해 면밀히 관찰해야 하지만 저축은행 예금자들은 5000만원 예금자보호제도를 무기로 이 같은 ‘의무’를 게을리했다.
정부의 도덕적 해이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00만원이던 예금보험 한도를 외환위기 때 일시적으로 무한대로 올린 뒤 재조정할 때 당장 업계 반발을 피하기 위해 당시 경제 수준에서 과도하게 5000만원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 전직 관료는 “예금자와 업계 반발을 우려해 업계 의견을 지나치게 반영해 준 측면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2003년 저축은행 신용대출 대란 사태와 대형 저축은행의 출현도 정부의 도덕적 해이 탓이 크다. 신용대출이 급증하던 2002년, 정부는 경기 회복이 답보 상태에 빠지자 내수 진작을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장려한 바 있다. 그러면서 저축은행들이 신용대출을 늘리도록 유도했고 이는 무분별한 대출의 기반이 됐다. 또 부실 저축은행이 나올 때면 정부는 심각한 고민 없이 업계 내부 해결이라는 가장 빠른 방법을 택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선두 업체들에 부실 저축은행 인수를 유도했고, 이에 따라 지방은행 규모를 뛰어넘는 대형 저축은행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금융당국은 심각한 지방저축은행의 부실문제를 풀기 위해 합병을 유도했다. 가급적 저축은행 업계 내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때 나온 대책이 부실 지방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우량저축은행들에게 120억원 투입할 때마다 지점을 1개씩 허가시켜주기로 한 것이다. 특히 서울 경기지역에도 지점을 열어준다는 당근이 제시되자 우량저축은행들이 부실저축은행 인수에 적극 나섰다. 급하게 인수하는 경우도 많았고, 인수해보니 실사 때보다 부실규모가 큰 경우도 상당수됐다. 부실저축은행을 인수했던 우량저축은행들이 탈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지점개설허가 기준을 강화해 240억원에 지점 1개 허가로 바꿨다. 어쨌든 정부가 손쉬운 방법에 매달리면서 대형 저축은행은 늘었고, 이는 대규모 부동산 PF대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아울러 저축은행 스스로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를 더욱 증폭시켰다. PF대출 부실의 경우 저축은행들이 대출 심사 의무를 게을리 한 채 무모하게 사업을 진행한 영향이 크다. PF대출 3조1000억원 어치를 일반 대출로 편법 분류했다 적발된 것은 저축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PF대출은 일반 대출보다 대손충당금 적립 의무가 강하게 부여된다. 이 과정에서 충당금이 많이 쌓이면 저축은행으로선 손실이 증가한다. 저축은행들 사이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PF대출을 일반 대출로 분류하는 일이 횡행했다. 이를 통해 저축은행이 감춘 손실은 900억원에 달했다.
또 최근에는 일부 저축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분식회계를 하다 적발된 일이 있었다. 이 밖에 자체적인 위험관리 노력도 미흡했다.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위험성이 높은 고객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은행과 비교해 리스크 관리 노력을 덜 기울였다는 평가다.
Viewpoint 4. 앞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삼화저축은행 공고문
정부 저축은행 정책의 큰 틀은 저축은행을 장기적으로 최대 20개 수준까지 줄이는 방향이다. 현재의 5분의 1수준까지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게 금융당국자들의 전반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저축은행 신규허가는 80년대 이후 사실상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인수합병 또는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저축은행 수가 크게 줄어들면, 정부의 감독정책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저축은행이 지방은행 역할을 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다만 저축은행 스스로가 은행에 걸맞게 고급스런 금융기법을 갖게 해야 한다는 중장기 구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발전하는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시중은행 같은 곳에서 인수해 내부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요구도 당국 내에서 나온다. 연초부터 시중은행들과 짝짓기 시도가 벌어지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저축은행문제를 투트랙 방식으로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후방 모두를 동시에 방어할 수 있는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최전방 실탄은 예금보험기금 내 공동계정 마련을 통해 충분히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금융당국이 부실저축은행 처리를 위해 동원 가능한 자금은 2조원에 불과하다. 정확히는 1조8000억원 수준이다. 이 정도로는 2~3개 부실저축은행 처리도 쉽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예보공동계정만 마련되면 일단 10조원이라는 실탄 확보가 가능해진다. 저축은행의 예보기금은 이미 2조8282억원 적자인 상태여서 추가로 자금을 빼내서 쓴다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하지만 공동계정이 만들어지면 은행이나 보험 등 금융권을 통해서 올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7600억원을 이용해 10조원규모의 자금을 충분히 차입해 쓸 수 있다. 연 이자율을 5%라고 해도 10조원에 대한 이자 5000억원을 갚고, 나머지는 원금상환 등에 사용하겠다는 얘기다. 대신에 금융위는 은행권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금융권역별 계정의 적립목표액을 절반으로 낮춰주겠다는 당근을 줄 예정이다. 저축은행들이 내는 예금보험료율도 올 7월부터 기존 0.35%에서 0.4%로 높이기로 했다.
한편 후방 안전망으로 세운 유동성확보 방안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부실저축은행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 예금자들의 예금인출사태(뱅크런)가 벌어지더라도 멀쩡한 저축은행들이 유동성 부족으로 문을 닫게 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단 4대 시중은행들이 2조원을 마련하고, 정책금융공사가 1조원을 추가로 넣기로 했다. 당국도 충분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최전방에서 부실저축은행 처리를 마음놓고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 처리과정에서 우량저축은행에서까지 예금인출사태가 심각하게 벌어졌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대신에 금융당국은 가급적 속전속결로 부실저축은행을 일시에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을 처리할 때 금융위는 앞으로 저축은행문제는 선제적이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저축은행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제거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실저축은행들을 서둘러 솎아내 우량저축은행을 비롯한 업계 전체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전염효과 차단이 목적이다. 예금 인출 사태 발생도 막겠다는 의도다.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철저한 대주주 책임 추궁’이다. 부실책임이 있는 저축은행 대주주나 경영진이 증자를 비롯한 자구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문을 닫게 하겠다는 정책당국 의지도 뚜렷해졌다. 실제로 삼화저축은행의 경우 한 달 이내에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체 경영정상화를 하면 영업을 재개시켜주겠다고 했지만 매각절차도 병행하기로 했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예금보험공사가 삼화저축은행 매각절차를 동시에 진행시켜 한 달 이내에 새 주인을 찾아주기로 했다. 대형금융지주사들을 중심으로 짝짓기해주기로 했다. 신규 저축은행 영업인가를 비롯한 절차를 감안할 때 3월 하순까지는 새롭게 영업을 시킨다는 게 금융당국 계획이다.
금융당국이 곧바로 매각절차에 들어간 것은 삼화저축은행이 자체적으로 한 달 이내에 경영 정상화를 달성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당국의 칼날은 대주주와 경영진으로 겨눴다. 현재 매각 또는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부실저축은행에 대한 강한 경고이기도 하다. 매각을 추진 중이었다 하더라도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삼화저축은행처럼 직접 처리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렇게 되면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는 좀 더 많은 값을 받으려다 자칫 한 푼도 못 건지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또 대주주뿐 아니라 임원까지 소송하는 등 보다 강한 책임론을 제기받을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매각을 진행 중인 대주주들은 가격을 대폭 낮춰 시장에 내놔야 한다. 그래야 강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 M&A가 보다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송성훈 /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ssotto@mk.co.kr 사진 =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호(2011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