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12월이 되면 정부와 국회는 ‘전쟁 아닌 전쟁’에 휩싸인다. 1년 동안 각 부처가 사용할 예산안의 심사를 두고 정부부처와 국회의원들이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따기 위해 벌이는 ‘예산전쟁’이다. 새해 예산안심사에서 예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새해 농사’의 성패가 달렸기 때문에 정부부처나 국회의원들이 연중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방예산 역시 다른 정부부처와 동일한 ‘전쟁’을 거쳐 예산안이 만들어진다. 국방예산을 집행하는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매년 5월31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새해 국방예산안을 제출한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검토해 10월2일 국회에 행정부의 새해 예산안을 보낸다. 정부가 국방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의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한다. 이 과정에서 육해공군과 국방부, 합참, 방위사업청, 병무청 등 군 관련기관 관계자들은 예산 자료를 들고 국회를 드나들며 국방예산을 조금이라도 증액하기 위해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부지런히 드나든다. 필요한 경우 정책설명회를 열고 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도 한다.
국방예산 어떻게 결정되나
국회 국방위 출석 장성들이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다른 정부부처의 예산안 심사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느 정부부처와는 다른, 국방예산만의 특징도 있다. 우선 국방예산은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행정부의 평균 예산증가율보다 높은 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다른 부처의 예산은 모두 삭감됐지만 국방예산은 동결로 그친 것이 대표적이다.
예산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적은 것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국민들(정확히는 지역구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사회간접자본·교육·복지예산 등은 총선을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표적이 돼 불필요한 증액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해당사자간 다툼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방예산은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어 이해관계를 앞세우기 어려운 데다 소관 상임위인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의 지역구와는 이해관계가 약해 예산을 둘러싼 정치권간의 갈등이나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은 거의 없는 편이다. 연말에 벌어진 치열한 ‘예산전쟁’을 통과해 확정된 2011년도 국방예산 규모는 31조4031억원. 이 예산은 예산 주무부처인 국방부, 방위사업청 등에서 차례로 집행된다.
30조원이 넘는 국방예산은 크게 국방부 소관의 경상운영비(병력운영비+전력유지비)와 방위사업청 소관의 방위력 개선비(무기 도입+연구개발비)로 나뉜다. 올해 국방예산에서 경상운영비는 총 21조7096억원이며 방위력 개선비는 9조6935억원 규모다. 국방예산은 약간의 변동이 있지만 대체로 경상운영비가 전체 예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반면 군 전력증강과 직결된 무기 도입에 소요되는 방위력 개선비는 현재 3분의 1 정도에 머물고 있다. 이는 한국군이 6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상운영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군의 규모를 줄여 경상운영비를 절감하고, 절감된 비용을 방위력 개선비로 전환해야 한국군의 전력증강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상운영비는 군 구조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의 합으로 국방부가 기획, 집행한다. 인건비와 급식, 피복비 같은 병력운영비와 국방정보화, 장병보건복지, 군사시설, 예비군 관리 등을 포함하는 전력유지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상운영비가 전체의 3분의2… 무기도입비는 10조원 미만
이러한 항목들은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지만 세부적인 항목은 사회적 변화에 맞추어 신설되기도 한다. 사이버지식정보방(PC방) 설치비와 IPTV 시청료, 기술 인력 양성을 위한 온라인 전문학사 학위취득(e-Military U) 예산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경상운영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항목으로는 방위비분담금이 있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한국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주한미군 인건비, 군사시설개선, 군수지원 등으로 나뉘어 집행된다. 이외에 군인복지기금, 군사시설이전 특별회계, 임대형 민자사업 등도 경상운영비에 포함된다.
국방부의 외청인 방위사업청이 기획, 집행하는 방위력 개선비는 무기 도입, 부대 개편 등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관련된 전력증강사업과 국방연구개발 사업에 주로 투입된다. 전력증강사업은 기동전력, 함정, 항공기, 감시정찰 및 정보전자전, 정밀타격으로 나뉘며 전체 방위력개선비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전력증강 사업비를 통해 도입되는 무기체계는 국내에서 개발이 가능한 경우에는 국내 개발해 생산·도입하고 경제성이 부족하거나 개발이 불가능한 장비는 해외에서 도입하거나 국내 면허 생산 방식으로 도입한다. 다만 최근에는 기술 축적 등을 이유로 해외 직도입보다는 국내 면허 생산이 선호되고 있으며 해외 직도입의 경우에도 절충교역의 일환으로 기술 도입을 명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국방연구개발 사업은 우리 군이 미래 전장에서 사용할 새로운 무기체계나 원천기술 등으로 개발하는 사업으로 대부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담당한다. 과거에는 국내 방산업체의 기술 수준이 낮아 대부분 무기를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해왔으나 국방 관련 원천기술의 부족과 국내 방산업체의 기술 수준 향상으로 일반적인 무기체계 연구개발에서는 국내 방산업체의 참여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외에 군수품의 품질을 검사하는 데 투입되는 국방품질경영 관련 예산과 방위사업청 운영에 쓰이는 방위사업 종합지원비가 포함돼 있으나 방위력 개선비에서의 비중은 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