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보다 뛰어난 전기차 회사가 크로아티아에? 제로백 단 1.85초… 전기차판 포르쉐 ‘리막’의 超기술
안재형 기자
입력 : 2019.07.26 16:23:19
수정 : 2019.07.26 16:24:09
지난 5월 중순 현대·기아차가 크로아티아의 고성능 하이퍼 전기차 업체 ‘리막 오토모빌리(Rimac Automobili·이하 리막)’에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고성능 전기차 개발을 위한 상호협력이라고 밝혔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있는 리막 본사에서 현대차와 기아차, 리막의 주요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계약식에서 정의선 현대차 그룹 수석부회장은 “리막은 고성능 전기차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업체로 고성능 차량에 대한 소비자 니즈 충족과 우리의 ‘클린 모빌리티’ 전략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라며 “다양한 글로벌 제조사와도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해 우리와 다양한 업무 영역을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C_Two
정 수석부회장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리막의 활력 넘치는 기업 문화가 우리와 접목되면 많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리막의 마테 리막 CEO는 “현대차그룹의 신속하고 과감한 추진력과 미래 비전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이번 협력으로 3사는 물론 고객에 대한 가치 극대화를 창출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이날 계약 체결로 현대차는 6400만유로(약 854억원), 기아차가 1600만유로(약 213억원)를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적으로 고성능 전기차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이번 협업으로 보다 빠른 시간에 고성능 전기차 기술을 전동형 차량에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N브랜드의 미드십 스포츠 콘셉트카의 전기차 버전과 별도의 수소전기차 모델 등 2개 차종에 대한 고성능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선보일 계획이다.
고성능 수소전기차 모델이 양산에 이를 경우 세계 최초의 고성능 모델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될 전망이다. 올 초 CES에서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누군가 수소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차를 만든다면 현대차가 처음일 것”이라고 밝히며 고성능 수소전기차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잠깐, 리막은 어떤 자동차제조사이길래 현대차그룹에서 1000억원이나 투자를 받은 걸까.
▶크로아티아의 유일한 자동차 메이커, 리막
2009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설립된 리막은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고성능 전기차 업체다. 현재 총 직원이 500여 명으로 늘어날 만큼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여타 유럽국가와 비교해 완성차 업체가 없는 크로아티아의 유일한 자동차 브랜드이기도 하다. 2011년 북미국제모터쇼, 제네바 모터쇼와 함께 전 세계 3대 모터쇼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리막은 슈퍼 전기차 ‘콘셉트원(Concept_one)’을 공개한다. 리막이 내세운 콘셉트원의 성능은 최대 출력 1088마력에 최고속도 305㎞/h, 제로백은 단 2.8초에 불과한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고성능 슈퍼카였다. 하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모터쇼 현장에는 똑같은 모양의 모형 차량이 전시됐다. 실체가 있다고 공표했지만 막상 실체를 공개하지 못한 이 난감한 상황에 당시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5년 뒤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리막은 콘셉트원의 양산형 모델을 공개하며 모터쇼의 주인공이 됐다. 5년 전 발표한 성능보다 최고속도는 50㎞/h나 높은 355㎞/h, 제로백은 0.3초 단축한 2.5초로 향상됐다. 고작 14.2초면 최고속도에 도달한다. 알루미늄과 탄소섬유가 내장재로 사용된 2인승 슈퍼전기차인 콘셉트원의 중량은 1850㎏. 배터리가 중량을 무겁게 했지만 휠마다 모터를 붙여 속도를 높였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배터리팩에서 1000kW의 전력이 구동되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최대 400kW를 흡수하는 회생제동시스템이 적용됐다. ABS, 트랙션 컨트롤, 스테빌리티 컨트롤 역할을 하는 AWD 토크 백터링 시스템 ‘R-AW TV(Rimac All Wheel Torque Vec toring)’도 개발해 탑재했다. 자동차 마니아들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 일대 사건은 그해 8월에 일어난다. 테슬라의 ‘P 90D 루디크러스’, 페라리의 ‘라 페라리’와 400m 직선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경주인 드래그레이스를 펼치는 영상이 공개됐고, 승리의 주인공은 콘셉트원이었다.(10월엔 드래그레이스에서 ‘포르쉐 918’을 제치며 화제가 됐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충격적인 영상으로 존재를 알린 리막의 설립자 마테 리막은 그 때부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비교되기 시작한다.
콘셉트 원
리막의 기술력은 고성능 전기차에 특화돼 있다. 모터와 감속기, 인버터 등으로 구성된 고성능 전기차용 파워트레인과 차량 제어, 응답성 향상을 위한 각종 제어기술, 배터리 시스템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전기차를 직접 만들고 또 타사에 전기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도 납품한다. 일례로 스웨덴의 슈퍼카 브랜드 ‘코닉세그’의 하이브리드카 ‘레제라’에 리막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팩이 탑재된다.
리막은 지난해 3월 제네바모터쇼에서 ‘C_Two’를 공개하며 다시 한 번 진일보한 기술력을 자랑했다. 콘셉트 모델을 공개한 지 1년 만에 내놓은 양산형 모델이다.
1888마력의 최고출력을 바탕으로 최고속도는 412㎞/h, 제로백은 단 1.85초에 불과하다.(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량으로 공인받은 코닉세그의 ‘아게라RS’가 제로백 2.6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20kW의 리튬 망간 니켈 배터리를 장착한 이 차량은 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방식(WLTP) 기준으로 한 번 충전에 550㎞를 달릴 수 있다.
기존 모델인 콘셉트원과 비슷한 디자인에 파워트레인도 4개의 바퀴에 각각 모터를 탑재했다. 전륜 1단, 후륜은 2단 카본 듀얼 클러치를 적용했고 자동 제동, 차선 유지 보조장치 등 첨단 안전사양도 탑재됐다. 여기에 8대의 카메라, 한 쌍의 라이다, 6개의 레이더, 12개의 초음파 센서를 적용해 레벨4 수준의 자율 주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150대만 한정 생산될 예정인 C-Two의 가격은 한화로 약 22억8000만원(약 200만달러)이다.
▶유럽의 일론 머스크, 마테 리막
2009년 21살의 나이에 리막을 창업한 마테 리막 CEO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피해 독일로 이주했고,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후 14살에 가족과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정착했다. 고등학생 시절 마테 리막은 졸업 프로젝트로 키보드와 마우스 역할을 하는 장갑을 만들어 국제발명경진대회에서 우승한다. 장갑의 엄지와 검지에 클릭과 스크롤 기능 버튼이 장착됐는데, 그는 이 제품으로 2006년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KOSIE)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8살에 폐차 직전의 BMW E30를 구입한 그는 자기 집 차고에서 가솔린 엔진을 전기 파워트레인으로 바꾸는 연구를 시작한다. 기술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축전지를 연결한 후 중국산 새 배터리로 전환했다. 이후 마테 리막은 배터리·모터·전력공급 장치의 개선 작업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 무렵 ‘액티브 미러 센서’라는 차선 변경 시 사이드 미러가 운전자의 시각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돼 사각지대를 예방하는 기술로 특허를 획득하는데, 바로 이 특허권이 창업의 밑천이 됐다.
자동차 업계에선 그를 ‘유럽의 일론 머스크’라 칭하지만 머스크보다 어린 나이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곤 한다. 테슬라나 리막 모두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가 아닌, 전기차 제조회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2008년 첫 차를 선보인 일론 머스크가 당시 37세였던 것과 비교해 마테 리막은 올해 고작 31세라는 게 그 이유다.
리막은 지난해 포르쉐로부터 10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마테 리막은 당시 “포르쉐와 손을 잡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우리의 목표는 전기차에 쓰이는 주요 부품을 모듈화해 자동차 생산업체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5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 리막은 설립 후 단 3년이 지난 2012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고 알려지고 있다. 2014년 리막의 가치를 약 7000만유로로 내놓은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예상을 유보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