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스마트폰을 떠올려 보자.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화웨이 등 사람에 따라 어떤 스마트폰을 떠올렸는지는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스마트폰 모두가 ‘납작한 직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이 나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가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휘어진 라운드 화면, 베젤 크기 줄이기, 둥근 모서리 등 다양한 시도는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큰 틀에서의 디자인 변화, 다시 말해 폼팩터(form factor, 하드웨어의 크기, 구성, 물리적 배열) 혁신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은 직사각형 형태를 유지한 채 그저 디스플레이 자체의 크기나 배터리, 카메라 성능을 두고 경쟁을 벌 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폴더블폰(Foldable Phone)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울러 5G(5세대 이동통신)까지 등장하면서 보다 넓은 화면에서, 보다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위해 콘텐츠의 중요성이 함께 주목받게 되었다. 더 큰 화면과 화려한 그래픽, 더욱 좋아진 해상도와 빠른 통신 속도가 결합되면서 모바일 게임 역시 함께 진화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스마트폰 ‘폼팩터’ 바뀐다
스마트폰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올해인 2019년이다. 지난 2013년 국제전자박람회(CES)에서 화면을 접을 수 있는 폴더블폰 영상을 보여줬던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삼성 폴더블폰 ‘갤럭시폴드’를 공개하면서 마침내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 이보다 앞서 중국의 로욜이 세계 최초의 폴더블폰을 선보이고, 화웨이 역시 2019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폴더블폰 ‘메이트X’를 공개하면서 변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각 제조사의 기술 수준에 따라 시기는 다르지만 애플과 모토로라 등도 추후 폴더블폰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아직 접히는 부분에 위치한 액정의 손상 정도나 비싼 가격 등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남아있고, 가격도 최소 2000달러(약 220만원)를 호가하는 등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산하 위츠뷰(WitsView)는 “폴더블폰이 여전히 시장 반응 관찰, 제품 디자인 조정 단계에 있다”고 분석하며 “올해 폴더블폰의 시장점유율은 0.1%에 불과할 것이고, 패널 공급업체들이 늘어나 패널 비용이 떨어지고 나서야 2021년 시장 점유율이 1%로 올라서고, 2022년에는 3.4%를 넘어설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콤팩트한 사이즈이면서도 펼치는 순간 7인치를 넘어가는 커다란 화면을 쓸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 덕분에 여전히 폴더블폰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평을 듣는다. 인간의 손 크기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기에 더 큰 화면을 더 작은 스마트폰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접는 스마트폰의 시대를 여는 폴더블폰은 그 방식에 따라 인폴딩, 아웃폴딩, 클램쉘 등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소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아직까지 어떤 방식이 대세가 될지는 모른다. 폴더블이 아닌 롤러블 방식이 시장을 점유하게 될 수도 있고, LG전자처럼 듀얼 스크린 방식을 꺼내는 제조사도 있지만 이들 역시 기본적인 목표는 화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게임계에 넘쳐나는 ‘러브콜’
이처럼 스마트폰 폼팩터 경쟁이 격화되고, 화면이 커지면서 제조사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곳이 있다. 바로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사들이다. 폴더블폰은 접힌 상태에선 일반적인 스마트폰이지만 펼쳤을 때는 태블릿 컴퓨터와 가까운 UX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화면을 편할 대로 분할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한쪽에는 게임, 한쪽에는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띄울 수도 있다. 넓어진 화면을 마음대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바일 게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이미 2017년 말 미국 특허청(USP TO)에 게임 전용 폴더블 스마트폰 특허를 신청해 지난 1월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은 스마트폰 게임 기능 강화를 위해 지난해 8월 갤럭시노트9을 출시하면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포트나이트’ 등 게임 5종을 선탑재했다. 갤럭시S10에는 게임엔진개발사 유니티 테크놀로지와 손잡고 유니티 엔진을 적용하고, 입체적 음향으로 몰입감을 높이는 돌비 애트모스 기능을 지원한다. 추후 출시될 폴더블폰에는 아예 전용 게임이 선탑재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엔씨소프트, 펄어비스 등과 폴더블폰에 최적화된 게임 개발을 논의 중이기도 하다. 이외에 컴투스, 넥슨, 펍지 등 개별 게임사와 함께 게임환경 최적화 작업을 진행하는 방안도 고민한다.
게임사들 역시 제조사들과의 협업을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 기자간담회에 나선 심승보 엔씨소프트 전무는 “다양한 형태로 삼성전자와 협업 중”이라며 “폴더블폰뿐 아니라 UX 등을 포함한 플랫폼 전방위로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펄어비스는 “검은사막 모바일을 폴더블폰 등 신형 기기에 대응하는 방안을 제조사들과 논의 중”이라 말했고, 넥슨 역시 게임 개발 및 UI·UX 대응을 준비 중이다.
다양한 콘텐츠 중에서도 이처럼 게임에 관심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제조사 입장에서 고화질·고용량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사의 제품 성능이 좋다는 사실을 알릴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스마트폰 수명이 길어지고, 교체 주기도 역시 길어지며 이익을 올리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을 타깃으로 보다 많은 교체 수요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사들 역시 폴더블폰 전용 게임을 개발하면서 노리는 것들이 있다. PC 게임과 달리 모바일 게임 시장은 현재 애플과 구글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다. 각 게임사들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게임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고생도 직접 했는데 중간에서 플랫폼 역할을 하는 애플과 구글이 막대한 수수료를 떼어가는 상황을 보면 기쁠 리가 없다.
실제로 국내 앱마켓 전체 매출 중 94.4%가 게임에서 발생될 정도니 수수료 액수도 적은 수준이 아니다. 각 게임사가 아예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신제품 스마트폰에 자사의 게임을 선탑재하면 그만큼 싸고 쉽게 유저를 확보할 기회가 생긴다. 게다가 폴더블폰 등 각종 스마트폰들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노리는 상품이기에 진입 장벽이 높은 해외시장을 노리기도 쉬워진다.
▶게임 방식은 어떻게 바뀔까
그렇다면 폴더블폰의 출시와 함께 나올 전용 모바일 게임들에서는 어떤 변화를 찾아볼 수 있을까. 우선 사용할 수 있는 화면이 커진 만큼 기존의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 디스플레이 크기 때문에 포기해야했던 공성전, 수성전 등의 콘텐츠를 화려하고 방대하게 만들 수 있게 된다. 또한 이와 같은 이유로 모바일 게임에서는 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온 1인칭 총싸움 게임(FPS)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이럴 경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될 방식은 ‘닌텐도 DS’ 같은 게임기처럼 스크린을 두 개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이다. 비단 폴더블폰뿐만 아니라 듀얼 스크린을 채택한 제품도 이와 마찬가지다. 한쪽에서는 게임 화면을 보여주고, 다른 쪽에는 가상패드나 조이패드, 미니맵, 채팅창을 띄우는 식이다. 화면에 뜨는 정보량 자체가 달라지기에 기존 모바일 게임에서는 손가락이 화면을 가려 할 수 없었던 정교한 플레이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리듬액션 장르나 2인용 격투 게임이라면 아예 두 사람이 양쪽에서 각각 화면 하나씩 맡아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 쪽에서 피아노 화면을 띄워놓고 연주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드럼이 나오는 화면을 보며 리듬에 맞춰 화면을 두드리며 즐기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럴 경우에는 폴더블폰을 펼친 상태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는 방식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으니 스마트폰 하나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둘이 된다. 또한, 단순히 화면의 크기만이 전부는 아니다. 넓어진 화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하드웨어 자체의 스펙도 지금보다 좋아지고, 5G를 이용해 지연이 없는 통신도 쓸 수 있으니 고사양게임 개발에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 PC게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스타크래프트’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게임을 모바일 버전으로 바꾸는 일도 가능해질지 모른다. 창의력이 좋은 개발자라면 아예 ‘접는다’는 폴더블폰 특유의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계획도 세워볼 수 있다. 폴더블폰 기기 자체를 ‘ㄴ’ 모양으로 세워놓고 게임을 하는 방식도 가능하고, 접는 각도를 조절해가며 테트리스와 유사한 캐주얼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자들은 “힌지의 각도와 중력 센서 등을 잘 이용한다면 전에 없던 게임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폴더블폰, 한계는 있다?
다만 폴더블폰 게임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UI 기획부터 UX 디자인 까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므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섣불리 투자를 했다가 손해만 입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화면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이는 일반 태블릿 PC에서도 볼 수 있는 크기이기에 새로울 것이 없고, 화면을 분할하는 멀티태스킹 기능 역시 현재 기술 수준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에 새롭게 접근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의견이 있다. 한 개발자는 “디스플레이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신기하지만 게임 개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보다 현실적인 지적도 나온다. 접었다 폈다를 반복할 때 해상도와 화면비가 달라지는데 매번 이에 적합하게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삼성 갤럭시폴드의 경우 펼쳤을 때 화면비는 4.2대 3이며, 사실상 정사각형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초창기 4대 3의 화면비로 시작해 16대 9를 거쳐 18대 9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화면비가 바뀔 때 동영상 재생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18대 9 화면비가 등장한 초기에는 화면 위아래가 잘리는 레터박스, 좌우가 잘리는 필러박스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세로가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던 스마트폰 화면비 변화 트렌드가 폴더블폰 등장으로 인해 갑자기 가로가 넓어지면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글이 현재 게임에서 발생하는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폴더블폰이 얼마나 많이 팔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 게임을 신규 폴더블폰의 해상도와 화면비에 맞춰야 하는 작업이 추가되면 각 게임사로서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
커진 화면만큼 전력 소모량도 커지기에 게임을 얼마나 오래 즐길 수 있을지 여부도 고민해봐야 한다. 화면이 크다는 의미는 그만큼 발열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자연스레 폴더블폰은 같은 시간을 사용한다 해도 일반 스마트폰보다 전력 소모량이 많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일단 배터리 2개를 양쪽에 나눠서 배치하는 방안을 택했다. 접히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접히는 배터리는 그리 일반적인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발열 완화 장치를 탑재해 오작동 및 구동 지연을 최대한 막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잠깐이라도 오작동을 하거나 반응이 느려질 경우 승패가 갈릴 수도 있는 게임 특성상 안정성 담보가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려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폴더블폰도 개발 초기 단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도 콘텐츠 부재로 정작 시장에서 외면 받았던 3D TV처럼 유명무실해질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