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 저녁 박근혜 대통령은 여의도 CGV를 찾아 영화 <명량>을 관람했다.
당시 명량은 최단기간에 관객 900만명을 넘어 1000만명에 육박하던 베스트셀러 영화였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영화를 본 셈이다. 그런데 이날 영화 관람은 다른 이유로 꽤 관심을 끌었다. 청와대 일각에선 “명량이 작품이 좋긴 좋은가보다. 대통령이 CJ가 배급한 영화를 보셨네”라는 말이 나왔다. 또 “그동안 전전긍긍하던 CJ사람들에겐 희소식이겠네”라는 말도 나왔다. 실제 CJ 측에서는 박 대통령이 명량을 관람한 데 대해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CJ는 박근혜 정부 들어 여러 가지로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횡령·배임·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현 회장이 지난 8월 12일 항소심에서 징역 3년, 벌금 252억원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총수의 공백’이 1년을 넘어선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하면서부터 배임혐의 등으로 출국금지와 압수수색을 받다가 구속된 후 내내 수감돼 있는 셈이다. CJ그룹으로선 회장의 선처를 위해 정부나 사법부 등 여기저기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朴 틈만 나면 ‘영화배급 독점 폐해’ 거론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CJ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공개된 발언을 통해서 보면 그렇다. 박 대통령은 특히 영화배급의 독점과 수직계열화에 강도 높은 비판을 많이 해왔다.
올해 4월 박 대통령은 경기도 일산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서 문화융성위원회 3차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영화산업의 경우, 작년 동반성장 협약을 제정했지만 합의사항을 어기거나 계열사 밀어주기 관행도 나타났는데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영화산업에서 ‘계열사 밀어주기’에 해당하는 기업은 뻔하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이날 콘텐츠 산업 육성방안을 논의하며 “(콘텐츠의) 공정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앞서 3월 규제개혁민관합동회에서도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 산업이 불공정 거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고, 신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덕담 중에 이례적으로 특정 대기업의 영화배급 독점 폐해를 거론하는 등 여러 차례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실제 우리 영화시장은 강력한 배급망을 가지고 수직계열화를 한 CJ와 롯데가 사실상 독점처럼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명량>의 투자는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은 CJ E&M이, 상영은 주로 CJ CGV가 한다. 이런 구조를 갖고 있는 CJ로서는 총수가 구속 수감돼 있는데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는 것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CJ, 실제론 창조경제에 은근한 기여
박 대통령이 CJ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한 영화 제작업체 대표와 대화를 하고 나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한 문화행사에서 대통령이 관람했던 애니메이션 <넛잡>은 자본금 120억원 규모의 국내 중소업체가 제작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선 배급 파트너를 잘 만나 총 3472개 개봉관에서 상영하며 ‘사상 최대 개봉’으로 기록될 만큼 큰 성과를 기록한 반면, 한국에선 초기 배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이 같은 어려움은 우리 영화시장을 CJ와 롯데가 독점하며 전횡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졌고 박 대통령은 “말이 안 통하는 미국에 나가서도 개척에 성공한 업체를 정작 우리나라에서 재벌기업들이 어렵게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안타까워했다는 전언이다.
‘한류’ 등 문화산업에 혼신을 기울여 육성하려 하는 박 대통령에게 영화배급 독점 폐해는 그야말로 ‘암 덩어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이 업체는 박 대통령이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을 본받아 의욕적으로 시작한 무역투자진흥회의의 첫 번째 때 참석해 정부에서 80억원을 지원받기도 하는 등 박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업체다. 그러나 초기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은 CJ 측의 노력으로 상당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박 대통령이 올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방문했을 때 CJ 측은 이재현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회장이 직접 나서 ‘한국의 밤(Korean night)’ 행사를 도왔고, 이 자리에 한류의 대표 격인 가수 싸이를 초빙해 참석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를 하는 등 박 대통령의 정책에 적극 협조를 하고 있다. 실제 해외로 수출되고 한류를 주도하는 상당수가 CJ에서 나온다.
CJ는 지난해 말부터 광고마다 ‘CJ가 대한민국의 창조경제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를 넣기도 했고 현 정부에 직간접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 박 대통령이 가장 애착을 갖고 주창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국정기조에 파트너로 가장 걸맞은 기업이 CJ다. CJ로서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5년이 사업을 확장하고 국가에 기여하는 호기였을 텐데 어긋나서 상당히 안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