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투자자들은 정말 투자를 할 줄 모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겁을 먹고 현금 같은 자산으로 들고 있다. 초저금리 국면이 이어져 물가가 상승할 경우 실질 자산가치가 줄어들 수도 있는데도 그러니 '바보 투자자'라고도 할 수 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한국 투자자들의 평균적 현실이다. 한국 투자자들이 얼마나 무지한지는 금융당국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기자는 “요즘 투자할 곳이 있냐”는 금융당국의 인사들에게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고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몇 개 회사를 거론하며 아는지를 물었다. “그런 회사가 있냐”란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무식한데 게으르기까지 하다는 얘기다. 그런 투자자들이 대다수다보니 지난 2월 12일 기준 주식형 펀드 잔액은 84조6172억원으로 초단기로 굴리는 MMF 잔액 81조3106억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2년여 전인 2011년 말에 주식형 펀드 잔액이 104조원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20조원 정도가 줄었고 144조원이 넘었던 2008년 8월에 비하면 60조원가량이나 급감했다.
투자자들은 이렇게 빼낸 자금을 대부분 현금 같은 자산으로 놀리고 있다. 2011년 말 이후 MMF는 28조원가량이 늘었다. 채권형 펀드는 같은 기간에 12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크게 보면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투자조차 주식을 외면하고 현금이나 채권에 넣어두고 있는 셈이다.
은행 예금이나 개인의 주식투자 자금을 제외한 간접투자자산(펀드 형태)만 놓고 볼 때 62%가 넘는 돈이 현금 같은 성격의 MMF나 아주 적은 수익만이 기대되는 채권 펀드에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주식형 펀드의 자산이 계속 빠져나가 2007년 말 9.7%였던 국내 가계의 금융자산 중 펀드 비중은 2013년 9월 말 3.1%로 급락했다고 밝혔다.
주식 외면한 자금도 손실
문제는 이 같은 주식기피 현상이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최근 시중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조짐을 보임에 따라 채권 펀드에 경고등이 켜졌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최근 디플레이션 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주택 임대료나 에너지값이 치솟는 상황을 감안하면 심각한 적자를 방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기나 에너지값은 전년 동기 대비 6.1%가 올랐고 주택 임차료는 지난해 이후 2.4~2.5% 정도의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다수 투자자들이 여전히 이자도 거의 나오지 않는 상품에 돈을 묻어두고 있다. 투자자들이 펀드 투자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다 판매사와 운용사들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지수형 펀드에 묻어두는 투자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최고의 자산운용가로 꼽히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지난 2007년 2070까지 갔던 코스피가 지금 1900대 중반에서 움직이고 있어 만 6년이 넘는 동안 코스피 펀드는 마이너스다”라고 지적했다. 투자 교과서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이 지수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것만 내세워 지수형 펀드에 묻어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가르쳐 왔다.
전후 미국 경기가 초장기 상승 곡선을 그리는 동안 인덱스 펀드로 회사를 엄청나게 키운 뱅가드의 성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수를 추종하는 전략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지수가 장기간 박스권에서 횡보를 하고 있어 관련 펀드들의 실적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지수형 펀드와 유사한 구조의 섹터 펀드나 테마 펀드, 특정국가 펀드도 유사한 경로를 걸었다. 중국펀드나 브라질펀드가 그랬고 녹색성장주펀드나 금펀드 유전펀드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형의 펀드들은 유행이 끝나면 이후 거의 잊힐 정도로 외면당했고 투자자 손실로 이어졌다. 이런 악몽이 되풀이되면서 투자자들이 주식형 펀드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김후정 동양증권 펀드 애널리스트는 주식 이외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초저금리 상태에서도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돌아오지 않는 까닭을 ‘신뢰의 위기’로 풀이했다. (주식에) 넣어야 할 때 인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업계가 신뢰를 잃었다는 것. 그는 지난해 배당주펀드나 중소형주펀드에 자금이 유입된 것은 신뢰를 회복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소장펀드 등장은 호기
그렇다면 투자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펀드 회사 믿을 수 없다고 실질적인 손실이 나는 현금성 상품에 묶어두는 게 옳을까.
우선 논리적으로 주식을 멀리해선 곤란하다.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현 시점에서 다른 상품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게 첫째 이유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국내 주식의 기대수익률은 은행 예금은 물론이고 부동산이나 채권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강조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때 채권 펀드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점도 주시해야 한다. 실제 지난해 시중금리가 급등락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본 채권형 펀드들도 있다. 올해도 이 양상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주식에 우호적인 환경이 전개되는 것도 주식 펀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우선 국민연금이 매년 6조원씩 주식을 순매수하기로 한 만큼 버팀목이 든든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새로 나오는 소장펀드(소득공제 장기펀드)가 펀드시장을 받쳐줄 가능성이다.
소장펀드는 기존 재형저축에 비해 세제 혜택이 월등히 크기 때문에 저소득 근로자나 사회 초년생의 목돈마련을 지원하는 도구로 주목된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소장펀드에 매달 50만원씩 연간 600만원을 내면 5년 동안 총 198만원의 절세효과가 있어 펀드 수익률이 0%라도 연이율 3% 수준의 적금에 가입한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이런 장점을 가진 소장펀드를 통해 증시에 자금이 들어오면 또 다른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펀드에 가입할 것인가이다.
과거 증시 관계자들은 펀드가 리스크 관리를 해주므로 시기에 관계없이 가입하라고 했다. 그러나 최근 나타난 양상을 보면 아무리 좋은 펀드도 잘못된 시점에 가입하면 수익률 회복이 쉽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펀드 가입에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선 지수형 펀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방어하는 운용사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최근 고수익을 유지하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은 가치주 펀드는 가치주 개념을 적극 해석해 종목을 대형주까지 확대해서 좋은 성과를 냈다.
펀드도 제대로 수익을 내려면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고 갈아타거나 잘하는 운용사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안으로 떠오른 롱숏 펀드
주식 이상으로 관심을 기울이라면 투자자들은 당연히 고민에 빠질 것이다. 최근 투자자들의 이런 고민을 덜어줄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헤지펀드처럼 ‘중위험 중수익’을 추구하는 롱숏 펀드다.
Fn가이드에 따르면 2011년 6월 설정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다이나믹코리아50A’펀드는 1년 10.83%, 2년 18.74%의 수익률을 올렸다. 2010년 11월 설정된 한화자산운용의 ‘한화스마트알파 c-i’펀드는 1년 3.47%, 2년 7.53%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지난해 6월 설정된 삼성자산운용의 ‘삼성알파클럽코리아롱숏 A’펀드는 6개월 기준 1.89%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들 펀드들은 떨어질 것 같은 상품을 팔고 오를 것 같은 상품을 사는 적극적 매매로 시장 변동에 무관하게 일정 수준의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이들 펀드도 적극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에 리스크는 안고 있다. 특히 지수 플러스알파를 추구하는 펀드들의 경우 시장이 한 방향으로 무너지면 일정 수준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주가하락에 대비해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승장만 바라보는 펀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실 가능성이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내 롱숏펀드의 역사는 아주 짧다. 그러나 회사에 따라서 수익률 차이는 크다. 펀드 전문가들은 롱숏펀드도 ‘승자독식’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투자자들의 세심한 선택이 필요하다.
펀드 투자 이렇게
국내 펀드애널리스트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 특히 리서치센터에 소속된 펀드 애널리스트는 동양증권의 김후정 과장이 유일하다. 그는 펀드 투자의 타이밍이 중요하며,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식형 펀드의 자금이 빠져나간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신뢰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투자자들이 자산 규모나 자산의 형식에 관계없이 함께 움직였다. 모두 같이 들어갔다가 같이 나왔다. 자신의 리스크 성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게 문제였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주가가 내려가면 들어오고 올라가면 나가는 식이다.
어떤 펀드를 들어야 하나.
펀드는 지금 굉장히 다양하다. 지금 어느 펀드를 들어라고 하는 것은 투자자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안 된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투자자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리스크가 싫다면 채권형으로 기대수익률을 낮춰야 하고, 낮은 기대수익률을 견딜 수 없다면 위험자산을 늘려야 한다. 펀드에 대한 세금도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해당하느냐 여부에 따라 다르다.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주식형 펀드만 본다면?
지난해 배당주 펀드와 중소형주 펀드의 성과가 좋았다. 올해는 국내 시장이 어렵다. 미국과 일본의 수출이 회복돼 선별적으로 차별화가 되고 있다. 길게 보면 지금은 대형주 펀드가 나을 것 같다.
펀드 투자의 타이밍은.
적립식은 타이밍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만 거치식에선 많이 한다. 거치식도 두세 번 나눠서 들어가라. 자유적립식으로 주가 하락기에 더 내는 방법도 있다. 펀드도 저가매수 고가매도 전략이 필요하다.
펀드도 분산투자를 해야 하나.
그렇다. 다만 펀드 숫자는 제한하라. 지금은 펀드가 너무 많아 슬림화가 필요하다. 개인은 2~3개 펀드 정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그 이상 가면 어떤 펀드를 들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최근 장이라면 인덱스 펀드 하나에 액티브 펀드 하나, 중소형주 펀드 하나 정도가 적당하다. 관심 있다면 해외주식형도 권고하고 싶다. 특히 미국 유럽을 주시하라.
펀드는 장기투자를 해야 하나.
1년 정도 보고 수익률에 따라 적극적으로 펀드 교체를 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연금은 불가피하게 장기로 가야 하지만 펀드는 시기에 따라 수익실현을 해야 한다. 유형변경도 하나의 전략이다. 연금처럼 묶어 놓으면 안 된다. 주식이 급락할 때는 주식형을 사고 상승하면 채권형으로 돌아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투자자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수익률 낮다고 내버려두어선 곤란하다. 펀드는 화분에 심은 식물과 같다. 관심을 가져야 잘 된다. 뉴스도 보고 목표수익률을 달성했다면 수익을 실현해야 한다. 너무 단기로 움직이는 것도 곤란하지만 너무 장기로 놔둬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