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득세 영구 인하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정부 정책 효과로 2014년 연초 국내 주택시장이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014년 1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는 총 4497건으로 전년 동월(1134건) 대비 4배를 기록했다. 2012년 말 취득세 감면 종료와 4·1 부동산 대책을 앞둔 대기수요로 2013년 1월 부동산 거래가 위축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2014년 들어 거래량 증가세가 뚜렷해진 셈이다.
사실 이런 시장 회복세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약간 늦은 감이 있다.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함께 겪었던 주요 선진국들은 위기 직후부터 내수 부양을 위해 주택경기 살리기에 적극 나선 결과, 대체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주택가격을 회복했다. 투자여건을 대폭 완화되면서 부동산 시장 자금 유입이 늘고 강력한 매수세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미국과 독일이 각각 11.2%, 일본은 7.6%, 영국은 5.4%씩 집값이 올랐다. 이 같은 글로벌 부동산 시장 분위기는 자금 지원과 세제 혜택 등 효과가 더 커지면서 2014년에도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한국은 2008년 이후 2009년 반짝 상승세가 나타났지만 2010년부터는 내리막을 걸어 왔다. 다소 늦긴 했지만 한국도 2014년 초부터 정부 정책 효과와 수요자 심리 개선 등으로 주택시장이 차츰 살아나기 시작해 경기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노무라연구소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은 2014년 한국 부동산 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다만 양적완화 이슈 등 대외변수가 많은 점은 부담이 된다. 주요 선진국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을 해외현지 취재 등을 통해 살펴봤다.
영국담보인정비율(LTV) 대폭 파괴
영국 정부는 2013년 4월 자가주택 소유 촉진 프로그램인 ‘홈바이(HomeBuy)’를 확대시킨 ‘헬프 투 바이(Help to Buy)’ 정책을 발표했다. 침체 늪에 빠진 영국 경제를 부동산 경기 진작을 통해 되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연소득 6만파운드 이하인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들이나 주택 교체 실수요자들의 경우 집값의 5%만 있으면 60만파운드(약 10억3706만원) 이하 신규 주택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집값의 20%는 5년간 공짜로 정부에서 투자를 받고 나머지 75%는 은행에서 대출받도록 했다. 고소득자들이 집을 살 경우에도 집값의 최대 95%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8년 이후 영국판 공유형 모기지 정책인 홈바이(HomeBuy) 정책을 도입해 금융위기 극복에 톡톡한 효과를 본 영국 정부가 부동산 경기 회복을 위한 파격 대출에 나선 것이다.
영국 정부는 홈바이 정책에선 집값의 최소 25%에서 최대 75%까지를 자기 자금으로 요구했지만 2013년 4월부터 신규 주택에 한해 5%만으로도 집을 살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유형 모기지 중 손익형은 정부(국민주택기금)가 향후 집값 지분만큼 손익을 공유하는 방식이라면, 영국은 정부 산하 주택협회가 투자 지분 비율만큼 집주인과 손익을 공유하는 형태다. 이 상품은 상품 출시 6개월 만에 1만8000가구나 신청했다. 큰 인기에 힘입어 영국 정부는 신청자 자격을 모든 잠재 구매자로 확대했다.
기존 홈바이 프로그램이 연간 5000가구 안팎의 수혜자를 끌어왔다면 ‘헬프 투 바이’는 더 많은 수요자를 만들어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정적인 국가 재정 문제로 지속적인 성공가도를 달릴 지는 조금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집 사면 현금 50만엔 지급
일본 정부는 2014년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거래 절벽’을 막기 위해 주택시장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은행 대출을 끼고 집을 사면 소득세를 깎아주는 ‘주택대출 세제 감면’을 2017년 말까지 연장하고 소득공제 한도를 두 배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규 주택을 사면 최대 400만엔까지(현재 200만엔) 그리고 친환경 주택은 최대 500만엔까지(현재 300만엔) 소득공제를 해준다. 20세 이상 성인이 직계존속에게서 주택을 증여받을 때 증여세를 면제해주는 ‘주택 증여세 비과세 조치’도 2014년 말까지 시행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본 정부는 2014년 4월부터 주택 구입자들에게 현금을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50㎡ 이상 구매자에게 주택 종류나 보유 수에 상관없이 소득 수준에 따라 최대 50만엔을 지급한다. 일본 정부가 주택 시장을 살리기 위해 현금을 뿌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새로 시행되는 ‘기존 주택(중고 주택) 거래 활성화 대책’도 눈길을 끈다. 증·개축한 노후 주택을 사들이면 등록면허세(소유권 이전등기)를 종전 0.3%에서 0.1%로 깎아주고, 낡은 주택을 매입해 내진설계를 하면 취득세를 감면해준다.
야마토 가오리 미즈호종합연구소 애널리스트는 “노후 주택 리모델링과 손바뀜이 활발해지면 건설경기는 물론 내수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회복세를 보이는 부동산 시장이 소비세 인상으로 다시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많아 일련의 대책들이 큰 반대 없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GDP 대비 부동산 거래세 비중은 0.29%로 우리나라(1.8%) 대비 16%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취득세 제로, 양도세도 감면
주택경기 활성화를 위해 세금 감면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만성적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이다. 미국은 주택경기를 회복시키고 안정적인 주택공급 물량 확보를 위해 다양한 세제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주택 매매와 관련한 세금을 깎아줄 때 발생하는 세수 손실보다 세금 감면으로 거래가 살아나 내수가 회복할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이 더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테드 가이어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은 “주택 구입자에 대한 다양한 세제 혜택이 주택시장과 경제를 살리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2008년부터 시행한 세액공제 프로그램을 통해 2010년까지 330만여 명에게 235억달러 규모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주택 구입자에게 3년간 26조원에 달하는 세금을 깎아준 것이다.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자 ‘쇼트세일’ 제도를 통해 주택을 매각하면 금융회사 부채를 탕감해주고 탕감액에 대한 소득세도 면제해주고 있다. 쇼트세일이란 모기지 취급은행과 대출자가 합의해 모기지 잔액 이하로 주택을 매도해 채권·채무 관계를 종료시키는 제도다.
맨해튼 소재 ‘퍼스트뉴욕’ 부동산컨설팅 관계자는 “쇼트세일로 탕감 받는 부채에 대해 미국 정부는 소득세를 부과해 왔지만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소득세를 면제해 줬다”고 말했다. 미국 대다수 도시에서는 주택 매수자에게 취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부부가 5년 이상 보유하고 2년 이상 거주한 주택을 매도할 때 50만달러까지는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 거래세 비중은 0%대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미국 연방주택청(FHA)이 제공하는 보증부대출(FHA loan)은 집값의 최대 96.5%까지 대출보증을 해준다. 실수요자 입장에선 집값의 3.5%만 있어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사실상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파괴한 혁신적인 조치다.
미국 동부지역 부동산 중개 사이트인 ‘USA라이프’의 애덤 글렌츠 매니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시중은행의 대출 조건이 까다로워지자 FHA론 이용자가 급증했다”며 “당장 목돈은 없지만 연간 5만~6만달러 이상 수입이 확실한 젊은 층이 주된 고객”이라고 말했다.
미국 의회예산처(GAO)에 따르면 2005년 580억달러였던 FHA 보증금액은 금융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2130억달러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nkⅡ 아파트
스웨덴도시재생으로 시장 숨통
스웨덴의 하마비 허스타드는 스톡홀름시가 1992년부터 기존 낙후된 공장·부두지역을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콘셉트 아래 만들어낸 계획도시다. 마그누스 페테르손 스톡홀름시청 과장은 “초기 사업은 1990년대 중반 경제호황 속에 주택난 해소를 위해 주거단지 재개발이 진행됐지만 이후 스웨덴 역시 불황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자 단순한 주거단지가 아닌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부동산 시장의 활로를 되찾았다”고 소개했다.
호수 주변에는 고급 레스토랑, 갤러리, 쇼핑몰 등이 자리 잡고 있어 과거 음산했던 공장·부두지역이 지금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로 환골탈태했다.
2000년 이후 스톡홀름 시는 하마비 허스타드 외에도 부두, 공장, 군사시설 등을 리노베이션하는 크고 작은 도시재생 사업을 다수 진행했다. 그 결과 10만개 이상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하마비 허스타드의 경우 전용면적 66㎡ 아파트 가격이 2010년 5억원에서 현재는 6억원을 넘어 스톡홀름 중심가보다 비싼 수준이다.
구스타프 베르메 웁살라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도시 인프라가 낙후되면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중산층 이상은 더 나은 곳을 찾아 그 도시를 떠나게 된다”며 “주민 재정착률을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도시재생”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톡홀름에서는 스웨덴 건국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라는 ‘로열 시포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실야라인, 바이킹라인 등 유명 크루즈가 정박하는 회르트하겐 항구 주변 236㏊터를 리노베이션해 주택 1만2000가구와 13만5000㎡ 규모 상업시설을 짓고, 일자리 3만5000개를 창출해 내는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