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또 다시 사랑’, 2016년 ‘내가 저지른 사랑’, 2018년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2019년 ‘십삼월’까지.
해마다 가을이면 컴백 소식을 전해주는 덕분에 언제부턴가 그는 가을이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됐다. 역으로 그의 컴백 소식이 들리면 새삼 계절을 떠올리게 된다. ‘아 가을이구나’.
가수 임창정(46)이 정규 15집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마치 농부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맺듯, 올해도 어김없는 ‘약속의 계절’ 가을 컴백이다.
“매년 9월 앨범이 나오고 나면 한 달 정도 활동을 즐기고, 곧바로 10월부터 이듬해 가을에 내놓을 다음 앨범 구상에 들어가요. 틈틈이 떠오르는 멜로디를 저장해뒀다 6월쯤부터 작사·편곡 작업을 하고, 7·8월 마무리해서 9월에 내게 돼요. 제 루틴이, 스스로 생각한 다짐이 그래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곡으로 써서, 정 할 얘기가 없을 땐 1년 쉬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매년 가을 앨범을 낼 생각이에요.”
정규 앨범을 고집하는 건 굳이 ‘장인정신’이라 표현하긴 쑥스러운, ‘임창정 세대’가 으레 해왔던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는 “음악 듣는 사람 중엔 젊은 친구들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세대도 있으니까, 그분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 앨범은 ‘일월’부터 ‘십삼월’까지 순차적으로 나열된 열세 곡으로 채워졌다. 각각의 월(月)이 주는 느낌과 비슷한 감정과 분위기가 매월을 제목으로 소박하게 담겼다. 트랙리스트 콘셉트는 타이틀곡 ‘십삼월’ 작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잡혔다.
▶“우리 세대에게 특별한 선물”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외사랑을 테마로 한 곡을 만들겠다 생각하고 가사를 쓰다 13월이 떠올랐어요. 현실에는 있지 않은, 영원히 오지 않을 달이죠. 사랑이 있지만, 이 사랑이 13월처럼 영원히 오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으로요. 써놓고 보니 나머지 곡이 열두 곡이더라고요. ‘이것 봐라~’ 하면서 각 곡들을 월별로 배치했죠. 그 달마다 분위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배열을 했어요. 그렇게 하고 보니 매달 내 노래가 통할 수 있겠더라고요 하하.”
‘십삼월’은 자신의 사랑을 모르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한결같이 바라보는 남자의 회한, 슬픔 등을 아프지만 아름답게 표현한 곡이다. 평소 고음역대 곡으로 뭇 남성들의 백기를 들게 했던 임창정이지만 “이번 곡은 노래깨나 한다는 남자라면 노래방에서 실패 안 하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며 “유튜브에 커버가 많이 나올 것 같다”고 기대했다. 특유의 내지르는 고음 스타일에 대해선 “일부러 절규하게 만들겠다는 건 아니다. 이십여 년 전부터 해오던, 그냥 그게 내 스타일인 것”이라며 싱긋 웃었다.
20년 이상 꾸준히 이별 감성을 노래하면서도 세대를 초월해 계속 대중에 통하는 비결은 뭘까.
“뭘 노리고 하는 건 전혀 아니에요. 진정성 있게, 내 감정은 이렇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누군가에게 그 노래가 위로가 되고, 듣고 싶은 노래가 되는 게 아닐까요? 그건 나이와 장소를 가리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가수이기에 앞서 그는 배우였다. 1990년 영화 ‘남부군’을 통해 연기자로 먼저 데뷔한 임창정은 5년 뒤인 1995년 가수로도 데뷔, ‘이미 나에게로’를 히트시키며 ‘특급 행보’를 시작했다. ‘그 때 또다시’, ‘결혼해줘’, ‘늑대와 함께 춤을’, ‘날 닮은 너’, ‘소주 한 잔’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로 사랑받았지만 2003년 연기에 집중하겠다며 돌연 가수로서 은퇴 선언을 하기도 했던 임창정. 이후 6년 만인 2009년, 은퇴를 번복하고 ‘오랜만이야’로 돌아온 뒤 지금까지 가수이자 배우로서 쉼표 없는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1990년대를 풍미한 ‘대상 가수’인 그가 2020년을 바라보는 현재까지 근 30년간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게 저도 참. 연구 대상이에요.(웃음) 일단은 참 복이 많은 것 같아요. 운도 많이 따랐고, 앨범 발매시기에 적절하게 힘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역주행도 했죠. 요즘 아이돌이나 요즘 세대 가수들처럼 기대 심리 속 젊은이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서 1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팬덤도 없고요. 그런데 참 운 좋게도, 여러 프로그램들의 지원사격도 많이 받아 왔어요. 지금은 제 인생에 주어진 보너스 같은 시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즐기고 싶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올라왔으면 내려가는 게 당연하죠. 특히 저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더 받았는 걸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합 문화기업도 시작
개인으로 이뤄온 발군의 성과를 발판으로 최근에는 자신의 회사 예스아이엠(YES IM)을 설립, 아카데미 및 제작, 외식 사업에도 도전했다. 예스아이엠은 프랜차이즈 2개, 예스아이엠 코리아(카페 프랜차이즈), 엔터, 예스아이엠 픽처스(드라마 제작사), 예스아이엠 플래닛(광고회사), 예스아이엠 트레이닝 센터와 플레잉 센터(아카데미) 등으로 구성된 종합 문화기업이다.
“모든 연예 사업을 한 회사에서 해결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예를 들어 음반을 발표해도 홍보를 하려면 외주업체를 써야 하고, 녹음을 하려면 스튜디오를 찾아야 하고, 외부에서 곡을 받아야 하고. 배우를 키우고 싶어도 드라마에 출연시키려면 작품마다 찾아다니며 프로필 돌리고 오디션 봐야 하는데 그걸 안에서 한 번에 다 해결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각 회사가 분야, 파트별로 각자의 일을 하면 경비도 절약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죠.”
예스아이엠은 임창정의 “오랜 꿈”이었다. 사명 ‘예스아이엠’ 역시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태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누구든 전 세계에서 알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덧붙였다.
가수, 배우이자 사업체의 대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창정이지만 그 역시 평범한 ‘가장’. 그것도 늦가을이면 다섯째 아이를 품에 안게 되는, 복이 아주 많은 아빠다. 아이들 이야기엔 마냥 미소를 띤 얼굴이었지만 ‘프로’ 가수 아빠로서 첫째부터 아직 태어나기 전인 다섯째까지 예리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첫째, 둘째는 가수 되긴 틀렸어요. 둘째가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학원도 보내줬는데… 여기까지 얘기할게요 하하. 웬만하면 이런 얘기 안 하려 했는데 진짜 너는 안 될 것 같다고 대차게 얘기한 적도 있죠. 셋째는 외모도, 피아노도, 성량도 월등해 아마 연예인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넷째는, 일단 보컬로 완전 끝날 거예요. 두 시간을 내리 우는데도 목이 안 쉬어요.(웃음) 다섯째는 일단 초음파 사진으로는 제일 잘 생긴 아이가 나올 것 같아요. 그래도 제일 고마운 건, 다들 건강하다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늘 고마워요.”
혹자에겐 탄탄대로였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임창정 역시 47년이라는 삶을 통해 수없이 많은 인생의 파도를 넘어왔다. 때때로, 예기치 않게 닥쳐오는 인생의 난관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그만의 ‘만능 키(key)’는 어떤 고민이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게 하는 그 자신의 마인드, 예스 아이엠이다.
데뷔 30주년을 앞둔 시점, 그는 자신의 음악으로 채워진 특별한 공연도 기획 중이다. 기존 ‘주크박스 뮤지컬’과는 차원을 달리 한, 홀로그램과 VR 등 최첨단 기술력을 동원한 공연을 위해 벌써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그는 “임창정의 히트곡으로 입담 터는 뻔한 공연이 아닌, 굉장히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못 말리는 열정의, 생각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임창정의 변주는 어쩌면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