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혹은 멋진)데 성격도 좋고, 또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 못하는 게 하나도 없다. 남녀를 떠나 이상하게 그들은 밉상 그 자체다. 뭔가 하나쯤 못난 구석이 있어야 사람 같고 친근한데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그 ‘잘난’ 사람이 나와 이름까지 같다면?
학교에서나 회사에서, 또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비교될 수밖에 없다. 으~ 상상하기도 싫다.
나이가 들면 괜찮아질까? 나름 괜찮은 위치에 올랐어도 나와 같은 이름의 그는 항상 비교 대상일 수밖에 없다. 사표를 내고 다른 곳에 가지 않는 한 의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최근 끝난 드라마 <또 오해영>의 전혜빈이 맡은 ‘예쁜’ 오해영은 ‘그냥’ 오해영(서현진)을 항상 주눅 들게 했다. 그냥 오해영 입장이 되면 예쁜 오해영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지 않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본의 아니게 갖은 수모를 겪었는데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돼 오게 되다니… 아, 이런 변이 있나!!
▶2002년 비운의 걸그룹 LUV 출신, 10년째 따라다닌 별명 ‘이사돈’
TV 속에서는 ‘예쁜’ 오해영이었으나, 현실 속 전혜빈은 힘들고 어두웠던 과거가 많다. “TV에 나오는 사람이기에 어둡고 힘든 부분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 애써 미소 지었을 뿐”이다. 어찌 보면 ‘그냥’ 오해영이 전혜빈 본인 자체에 더 가깝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거대 매니지먼트사 중 한 곳인 싸이더스HQ 소속 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그는 비운의 그룹 멤버였다. 2002년 월드컵이 모든 걸 압도할 당시 등장한 그룹들은 운이 없었다. 잊힌 이들이 너무도 많다. 전혜빈과 함께 그룹으로 활동한 오연서가 최근 연기자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과거 오연서도 존재감은 전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혜빈은 그룹 활동의 부진을 딛고 ‘이사돈’으로 이름을 알렸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돌고 돌았다. 24시간 돌 수 있을 것 같다는 칭찬(?)에 ‘이사돈’이 됐다.
유명세는 독했다. 시트콤 <논스톱3>를 통해 연기자로 전향,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려고 했는데 오디션을 볼 때마다 예능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고 퇴짜를 맞았다. “거절의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큰 상처였다”고 기억한다. <내 인생의 콩깍지>, <상두야 학교 가자>, <온리유> 등으로 얼굴을 내밀었으나 이렇다 할 시선을 끌진 못했다. 그렇게 잊혀 갔다. 재기를 꿈꾸며 드라마나 영화의 문을 두드렸으나 쉽지 않았다. <직장의 신>, <왕과 나>, <신의 저울>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간신히 다가갔으나 이번에도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영화계에서 그는 아예 ‘무 존재감’이었다. 2005년 <몽정기2> 이후 영화 출연작은 없었다. 전혜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잘할 수 없는 역할만 들어왔다”고 한다. 쓸데없이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고, 벗기려고 한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충무로 입성이 이런 루트밖에 없나?’라는 고민에 빠졌어요. 이 세계에 들어서려면 신고식처럼 뭔가 치러야 하는 게 싫더라고요. 자신감 없는 연기하기도 싫었고, 잘하지도 못하는 걸 할 수도 없었죠. 그런 작품을 남기기도 싫었고요.”
그러다 보니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고, 가수 꼬리표 달린 퇴물, 재기 불능한 인물”이 됐다. “가수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애매한 방송 이미지”였다. 하지만 독이 된 예능은 다시 그를 살렸다. 예능 <정글의 법칙> 속 ‘여전사 이미지’다. 기껏 발을 다시 담은 연기 문턱에서 또 넘어질지 몰라 두려웠으나 도전하기로 한 그는 결국 헤쳐 나왔다. 그는 “내 인생에 좋은 약이 된 것도 예능인 것 같다”며 좋아했다
“정글에 다녀오니 오히려 더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그런 반응이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는 누가 ‘이사돈!’ 하면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알아서 돌아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인지, 능글맞아져서 그런 건지 의연해요(웃음). 과거의 내게 미안할 정도죠.”
▶과거를 부끄러워했던 제 자신이 더 창피해요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방송인 강호동과 함께했던 예능으로 ‘이사돈’이 된 그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강호동과 다시 만났다. 1시간 동안의 게스트였을 뿐이지만 과거를 훌훌 털게 한 계기가 됐다. 전혜빈의 의지가 강하게 발현돼 과거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호동 오빠도 조금 달라졌더라고요. 예전에는 정말 열심히 안 하면 ‘쟤 빼’라고 할 정도로 무서운 MC였는데 여러 가지 고비를 견뎌내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와의 추억을 얘기하는데 가슴 찡하고 짠하더라고요. 벌써 10년 전 일이잖아요. 같이 추억할 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워 녹화가 즐거웠어요.”
전혜빈은 “순수했던 그 시절, 전혜빈에게 부끄러워 한 내가 미안했다”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고 반짝반짝 빛난 순간이었는데 왜 지우려고 하고 없애려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짚었다.
과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성장한 전혜빈. 사실 그렇게 생각한 게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열등감이라는 용어가 우리를 열심히 살게 해주고 일도 열심히 하게 하는 좋은 단어이기도 하더라고요. 자꾸 무언가에 도전하게 하고, 또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죠. 소심한 편이라 자책도 많이 하고 걱정도 하지만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해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열등감을 만들어 찾아내려고 하고, 제게 당근도 주며 자신감을 회복해 나가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같이 있는 게 사랑이죠”
최근 개봉한 영화 <우리 연애의 이력>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또 오해영>을 통해서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 정립했다. “어렵게 생각할 건 없는 것 같아요. 뭐가 맞는지 답은 없잖아요.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같이 있고 싶으면 있고, 싫으면 떨어져 있는 거죠.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특히 <우리 연애의 이력>의 여주인공 우연이를 통해서는 사랑받는 역할도 해봐 여한이 없다. 그는 “매번 죽거나 상대를 떠나는 캐릭터만 연기했다”며 “사랑받는 캐릭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소원을 영화로 풀었다”고 좋아했다. 비록 작은 영화라 관객의 관심을 받진 못했으나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을 해 기쁘다.
“우연이처럼 저도 어릴 때 데뷔했어요. 예전에는 내가 생각한 대로 세상이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죠. 세상은 생각보다 두려운 존재였고, 사기와 배신을 당하면서 안 좋은 일도 겹쳤거든요. 우연이의 불안정한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처럼 저도 제 상처까지 치료한 것 같아요.”
전혜빈은 <또 오해영> 속 예쁜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악역으로 전락해 마무리되기에 십상인 캐릭터인데 그는 시청자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았다. 전혜빈도 그 점이 기분 좋다. “예쁜 해영이도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았겠지만”이라고 아쉬움을 전하면서도 나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끝이 나 만족스럽다. 나름 해피엔딩이었단다. 현실 속 전혜빈의 삶도 해피엔딩, 아니 행복한 현재진행형이길 빈다.
[진현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사진 나무엑터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