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전반으로 번진 구조조정과 금융공기업 성과주의 도입, 국책은행 자본확충 이슈까지 대한민국 전체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방위적이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청와대라는 워 룸(war room)에 더해 지난해 말에는 금융위원장이 이끌고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해양수산부·국토교통부 차관이 참여하는 일종의 작전사령부 ‘산업경쟁력 강화·구조조정 협의체’가 생겨나 재계와 금융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전략수립을 토대로 물밑에서 실제 전술을 집행하고 개별 전투를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은 따로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 △1948년 출생 △1966년 경북사대부고 졸업 △1970년 영남대 경제학과 졸업 △1970년 한일은행 입행 △1987년 신한은행 입행 △1999년 신한은행 부행장 △2002년 신한캐피탈 사장 △2006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 △2009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2016년 2월 KDB산업은행 회장 취임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 △1949년 출생 △1967년 삼선고 졸업 △1973년 서강대 수학과·경제학과 졸업 △1976년 미국 웨인주립대 석사 △1981년 미국 퍼듀대 경제학 박사 △1988년 금융산업발전심의위원 △2000년 대한투자신탁 사장 △2001년 우리은행장 △2014년 3월 수출입은행장 취임
▶적기 놓친 구조조정, 긴급 투입된 국책은행장들
바로 이동걸 KDB산업은행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두 국책은행 수장이 그들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유동성 위기인 조선·해운사 대부분의 주채권은행이자 동부제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비금융자회사 110여 곳의 대주주다. 지난해 대규모 부실 사태로 도마 위에 오른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다. 자산총액만 219조원으로, 국내 2대 대기업집단인 현대차그룹(210조원)보다 규모가 크다.
산업은행은 조선·해운사 자율협약을 진두지휘하는 산업 구조조정의 최전방 부대이면서 110여 개 비금융자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또 다른 중심축인 수출입은행 역시 삼성중공업의 성동조선해양 경영협력협약을 이끌되 주요 조선사의 최다 여신은행으로서 산업은행과 구조조정을 위해 손발을 맞춰야 한다.
최근 정부 재정뿐 아니라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까지 거론되고 있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이슈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금융공기업 성과주의 도입 이슈까지 불거지면서 두 국책은행은 안팎으로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은행 안팎으로 창사 이래 최대 난제에 맞닥뜨린 이들의 야전 리더십이 기업·산업 구조조정의 성패를 가른다고 할 정도다.
KDB 산업은행
▶40년 금융베테랑 리더십, 구조조정 성공 이끌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40여 년간 다방면에서 금융 실무경력을 쌓은 전문가다. 은행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40여 년 동안 은행 부행장, 캐피털사, 증권사 CEO 등을 역임한 금융권의 ‘올 라운드 플레이어(All Round Player)’로 평가받는다.
은행업부터 증권회사와 투자은행(IB)에 이르는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은행이 당면한 기업구조조정 추진과 실물경제의 활력 강화를 적극 뒷받침할 수 있는 적임자로 인정받아 산업은행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처음 산업은행에 들어가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노동조합이 그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 나선 것. 이 회장은 이를 피하지 않고 공개 토론회를 열고 정면 돌파했다. 토론회 이후 노조는 하루 만에 농성을 풀고 회장 취임식에 참석했다.
취임식 벽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는 이동걸 회장의 이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 회장은 임직원 누구라도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메일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부터 현재까지 바쁜 일정에도 직원들의 메일에 손수 답장을 보내며 소통을 하고 있다.
대학 시절 학교신문 편집장 출신이기도 한 그는 과거 CEO 시절, 직원들에게 직접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하는 등 감성경영을 실천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이후 행보도 명확했다. 취임 후 1주가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경영방침과 구조조정 원칙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구조조정에 있어 실기하지 않도록 기업구조조정의 데드라인을 정하고 상시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과거 은행 근무 시절의 다양한 해외 경력을 바탕으로 취임 초기부터 글로벌 경영과 해외 먹거리 발굴을 강조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거대 시장이 열리고 있는 이란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출할 것을 주문하고, 이란 주재원을 신속히 선발해 파견하는 등 한발 앞서 나가는 실속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뜨거운 현안인 구조조정과 관련한 행보에서도 거침이 없다. 지난 5월 12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과의 회동을 통해 자구안 마련을 압박했다. 이 회장은 박 사장에게 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삼성중공업도 조속히 자구안을 마련하고, 경영진단을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난 4월 정부가 발표한 기업구조조정 추진방안에서 정부가 해운과 조선을 경기민감업종으로 분류하고 집중 관리하기로 결정함에 따른 것이다.
▶우리은행장 시절 구조조정 경험, 이번에도 통할까
작년 8월 말, 이덕훈 행장이 이끄는 수출입은행은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 경영정상화 지원을 위한 경영협력협약’을 맺었다. 당장 9월에 성동조선해양은 자금 지원이 급박한 상황이었다. 협약을 위한 협의과정이 불과 몇 개월 전 시작되면서 준비과정이 상당히 촉박하게 진행됐다. 양측 의견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실무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협약 체결 직전, 대형 조선 3사의 해양플랜트 건조손실로 인한 2015년 상반기 대규모 영업손실 이슈가 부각된 후 조선업 자체에 대한 평가가 극도로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외부는 물론 내부적으로도 경영협력의 성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덕훈 행장은 핵심 인력을 집중 배치해 실무 검토를 진행했고, 우려에도 불구하고 협약 체결이라는 큰 결단을 내린 삼성중공업 덕분에 경영협력협약 체결에 성공했다.
이 행장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작년 7월 수은 내 기업구조개선실과 해양기업개선실을 통합해 기업개선단을 신설한 것이 예다. 기업개선단은 기업의 사전적 구조조정을 통한 부실화 방지와 재도약 지원을 위해 구조조정업무의 시너지를 높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 중이다. 또한 이 행장은 기업개선단 산하에 ‘기업구조혁신실’을 신설해 중소조선사 등에 대한 사전·사후적 구조조정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 행장의 구조조정 관련 업무능력은 이미 우리은행장 시절 검증받은 바 있다. 당시 우리은행은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현대석유화학 등 32개 워크아웃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서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은행이 외환위기 후 소매금융에 집중한 것과 달리 이 행장은 기업금융 전문은행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행장의 활약으로 우리은행은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등 워크아웃기업의 주채권은행으로서 이들 기업들을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덕훈 행장의 국제적 감각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행장은 이란 정부와 이란중앙은행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오는 한편, 제재 해제 이전인 2015년 상반기부터 이란 진출 전략을 수립해 언제든지 신속히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 왔다. 이란 시장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미리 인식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온 것이다. 제재 해제 이전인 2015년 7월, 이란 경제개발 계획에 맞춰 한국 기업의 진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분야별·단계별 금융지원 방안을 담은 ‘이란 종합 진출전략’을 마련했다. 국내 기업의 이란사업 진출 전략 수립과 수주 기회 확대를 위한 활동을 주도해 2015년 9월에는 국내 건설사와 종합상사 등 10여 개사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란 투자환경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행장은 이란경제 제재 해제 이후 총 150억달러 금융패키지를 마련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이동걸 회장과 이덕훈 행장의 어깨는 무겁다. 양대 국책은행의 수장으로서 기업 구조조정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 10일 열린 금융위원회-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 직후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둘만 따로 불러 면담한 것도 이들 역할의 중요성 때문이다.
백척간두에 선 백전노장인 두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협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결국 공동운명체다. 산업은행이 스스로도 여력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에 추가로 출자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