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국중견기업연합회와 공동기획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기업인과의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최근 중견기업은 사회·경제적 역할이 부각되며 일자리 창출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핵심주체로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중견기업을 결집, 현장감 있는 목소리를 대변하고 경제 한류를 주도하는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견인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한국의 중견기업을 응원합니다.
10살 소년의 손에 10마리의 병아리가 올망졸망했다. 죽이지 말고 잘 키워보라는 외할머니의 말씀이 늘 귓가에 맴돌았다. 소년은 병아리를 돌보고 키우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눈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소년에겐 이미 운명이었다. 18살이 되던 해에 외할머니가 선물하신 10마리의 병아리는 4000마리까지 불어났다. 청년이 된 소년은 고등학교에 다니며 ‘황등농장’을 세운다. 1978년 약관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축산인의 된 청년은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고, 1997년 코스닥에 상장하며 닭고기 육가공 분야에서 국내 최대 기업으로 올라섰다.
드라마틱한 영화 한 편이 떠오르지만 이 논픽션의 주인공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다. 축산인의 길로 들어선 지 올해로 37년, 그룹의 모태는 닭고기가 중심인 축산업이지만 하림그룹은 더 이상 닭 파는 회사가 아니다. 제일홀딩스와 하림홀딩스 2개의 지주사 아래 하림, 팜스코, 선진, NS쇼핑 등 5개의 상장사가 있고 계열사만 31개나 된다. 이제는 매출액만 총 4조3000억원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중견기업이다. 그런 하림그룹이 지난 2월 법정관리 중인 팬오션 인수 본 계약을 하며 최근 재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자리한 NS쇼핑 사옥에서 만난 김홍국 회장은 말 한마디 손짓 하나 하나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김 회장은 “규제 완화가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 기업가정신 회복, 투자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중견기업과 하림그룹의 미래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대동맥을 늘려야 실핏줄이 살 수 있어중견기업연합회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신데요. 쉽지 않은 일인데, 위원회를 맡으신 이유라면.
우리나라는 규제 때문에 경제의 숨통이 막혀 있습니다. 한국은 OECE국가 중 규제가 굉장히 많은 국가에요. 규제를 만들 땐 그 길로 가면 잘 될 거라고 믿는데, 막상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규제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규제개혁위원회에 가서 상당히 세게 말합니다. 주변에서 제발 청와대에 가서 이런 말까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웃음)
가장 심각한 규제는 무엇입니까.
차별규제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규제를 말하는 건데,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대기업이 되면 180여 개의 규제에 대한 지원이 없어집니다. 중소기업은 도와주고 대기업은 옥죄는 시스템인데 이게 차별규제에요. 생태계와 비교하면 한쪽에만 비료를 주고 한쪽에는 물도 주지 않는 것이죠. 그 부작용이, 우리나라 기업의 99.8%가 중소기업(소상공인 포함)입니다. 중견기업 이상이 0.2%밖에 안돼요. 대동맥이 0.2%, 실핏줄이 99.8%죠. 대기업이 잘 되더라도 온기가 퍼질 수 없는 구조에요. 독일의 경우 중견기업 이상이 9.5%나 됩니다. 여기에 차별규제가 없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율이 생성됐어요. 1 대 9 정도 되는데 납품할 곳이 많으니 중소기업도 호황이죠. 반면에 우린 대기업에 납품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럼 대동맥을 늘려야죠. 그래야 실핏줄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이 늘면 중소기업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해요. 독일의 경우는 정반대였어요. 대기업이 늘어나니 오히려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늘었습니다.
정부주도의 규제보다 시장의 자율경쟁에?
제 생각에 핵심은 규제개혁입니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한 차별규제를 없애야죠. 그럼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자율 경쟁이 시작됩니다. 자율경쟁을 통해서 창의력이 나오는데, 규제가 가해지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창조, 창의란 건 자유가 바탕이자 뿌리거든요. 규제 속에서 창조경제를 부르짖는 건 소의 뒷다리를 기둥에 묶고 코뚜레만 앞으로 끌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대동맥은 곧 대기업인데요. 대기업이 늘면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 겁니까.
우선 청년실업이 해소됩니다. 청년들이 가려는 곳은 중견기업 이상 대기업이에요. 그런데 중소기업을 육성해서 청년실업을 해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건 정치적인 용어일 뿐이죠. 결과적으로 청년실업이 해소됐습니까? 대기업이 늘면 서로 납품하려는 중소기업의 과당경쟁 또한 줄어듭니다. 자연스럽게 세금도 늘어나게 되겠죠.
기업의 연속성에 있어 상속 등의 문제도 자주 거론되곤 하는데요.
상속세의 경우 독일은 7년 이상 기업은 100% 면제에요. 그러니 대를 잇는 장수기업이 생깁니다. 독일 전체 기업의 96%가 가업상속기업입니다. 전 세계 히든챔피언의 42%가 독일에 있어요. 히든챔피언은 보통 70~100년 사이에 생기는데, 3대 쯤 되는 것이죠. 당대에 세계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 갈고 닦아서 3대에 가야 생기는 겁니다. 독일은 가업상속을 장려하고 있어요. 독일의 히든챔피언은 규모에 있어선 매출 50억유로 이내, 우리 돈으로 6조~7조원이죠. 전 세계 3위, 각 대륙의 1위가 히든 챔피언입니다. 전 세계 2700여 개 히든챔피언 중 1300여 개가 독일에 있어요. 그만큼 토양이 좋다는 방증이죠.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건 제대로 된 토양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정부가 직접 육성하고 성공시켜준다? 그건 립 서비스에요.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의 <히든챔피언>에 정부가 지원해서 만드는 건 국가챔피언이고 히든챔피언은 시장에서 경쟁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가업승계가 자리 잡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의 개혁이 필요합니까.
독일의 경우는 종업원 수가 20인 미만이면 상속세 면제가 불가능합니다. 우리와는 정반대 입장이죠. 20인 이상인 기업이 7년간 상속 받은 고용을 유지하면 100% 면제, 5년 동안 유지하면 80% 면제죠. 우리나라는 상속세로 인해 상속 이후 경영권을 위협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기업이 잘돼야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수순이죠. EU와 FTA를 체결했는데, 상품만 FTA하지 말고 규제도 FTA해야 합니다.
중견기업의 상속과 대기업의 상속은 좀 다른데요. 대기업의 경우 상속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이 호의적인 건 아닙니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죠. 어떤 게 기업과 국민에 유리한지 자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업의 대물림을 경제력의 대물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대물림은 리스크의 대물림이죠. 그 기업이 계속 잘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결국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침체된 경기활성화도 늘 거론되는 화두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여름 매일경제신문 1면 기사가 생각납니다. 통합경영학회에 참석한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이었는데,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물었더니 참석자의 절반이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답변했더군요. 규제가 심하면 기업가정신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의와 자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자유가 없어지면 의욕이 떨어집니다. 기업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기업의 연속성입니다. 다시 말해 상속이죠. 불확실하다고 느끼면 투자하지 않습니다. 만약 독일의 수준까지 상속세 분야를 완화한다면 기업가정신이 살아날 겁니다. 아마도 투자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팬오션 벌크선
내년 4월에는 대기업, 가장 유망한 미래 산업은 곡물재계에선 하림그룹이 이제 명실상부한 대그룹이 됐다고 합니다. 하림그룹의 미래가 궁금한데요.
앞으로 가장 유망한 미래산업은 곡물입니다. 미국의 투자자 짐 로저스는 농업이라고 해석했더군요. 농업의 기초는 곡물이죠. 전 석유, 석탄, 가스도 곡물이라고 봅니다. 태양열에 의해 식물이 자라고 동물과 사람이 이를 먹고, 그들이 땅에 묻혀 다시 석유와 석탄, 가스가 됩니다. 그런데 현재는 옥수수에서 에탄올을 얻고 에탄올로 석유를 만듭니다. 앞으론 먹는 걸 포함해서 모든 에너지 소스가 곡물에서 나올 겁니다.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3~24%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니 기초소재로서 곡물산업이 매우 중요할 겁니다. 하림의 미래는 어쩌면 카길(Cargill)과 닮았는데,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게 선박입니다. 카길은 회사 내에 500여 척의 선박이 있거든요. 곡물 유통의 부가가치가 선박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팬오션을 인수한 이유죠. 카길과는 반대로 팬오션이란 선박회사 안에 곡물사업부를 두려고 합니다. 일본의 경우 곡물 수입량의 96%를 자국 유통상인들이 공급하는데 한국은 제로에요. 일본이나 미국의 유통상에서 사다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림그룹은 곡물을 소재로 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한동안 팬오션의 감자설이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팬오션이 현재 법정관리 중이기 때문에 감자와 관련해선 법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있어요. 현재 팬오션의 소액주주들이 반발해 법원에서 중재한 상황입니다. 확정된 건 아니지만 1 대 1.25로 조절한 것 같더군요.
그 조건은 받아들일 만 하신건가요.
판사님 결정이니 우린 받아들여야죠. 힘이 없잖아요.(웃음)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희가 감자하는 게 아닙니다.
팬오션 이수 이후 재계에선 하림그룹을 대기업군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어떠십니까.
그렇게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매년 4월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을 지정하는데, 저희는 회계연도 결산시점이 6월이라 올해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내년 4월에는 들어갈 겁니다.
어떤 일이든 적성에 맞아야 성공, 그게 내 철학하림그룹의 또 하나의 이슈가 나폴레옹 1세의 모자입니다. 경매 낙찰 당시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강조하셨는데요.
나폴레옹은 평소에 좋아하던 분이에요. 제가 사업을 일찍 시작했는데, 어릴 때 닭 키우면서 부모님께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웃음) 그 시절에 나폴레옹을 접했는데, 참 긍정적인 분이더군요. 모든 사안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죠. 그런데 어떤 분들은 부정적인 면만 봅니다. 반면 긍정적인 면만 보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제가 바라는 사고입니다. 나폴레옹은 1%의 긍정적인 면만 있어도 도전하는 사람이더군요. 그는 왕족이 아닌, 코르시카 섬에 살던 평민이었는데 35세에 황제가 됩니다. 그건 1%가 아니라 0.00001%의 가능성도 없던 일이었죠. 그만큼 실천이 중요한 건데, 어쩌면 이게 기업가정신 아니겠어요? 모자가 아직은 프랑스에 있는데, 5월 초에 한국에 들어올 겁니다. 논현동 사옥이 완공되면 1층에 전시해서 나폴레옹 1세의 도전정신을 청년들에게 전파할 겁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병아리 선물이 하림그룹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셨는데, 혹 특별한 선물이라도.
아, 그런 건 없는데. 전 제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다른 건 잘 못해도 이 분야는 창의적으로 놀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나름의 적성이 있겠죠. 그걸 개발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일은 적성을 찾아주는 것이죠. 무슨 일이든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제 철학입니다. 아,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밤에 너무 늦게 다니지 않는 것. 가급적이면 밤 10시 전에 들어왔으면 좋겠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