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에 설립된 ‘해줌(HAEZOOM)’은 IT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재생에너지 기업이다. 일반인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국내 1호 전력중개사업자(VPP), 국내 최초 온사이트 PPA(기업 부지 내 직접 공급) 시공사, 태양광 대여사업 1위 등 국내 에너지 시장의 ‘최초’와 ‘최고’ 기록을 보유한 강소 기업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설치가 아니라 데이터 비즈니스”라고 말문을 연 권오현 대표는 “지난 10년간 1만여 개 발전소의 운영 데이터가 차곡차곡 축적됐다”며 “경쟁사들이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데이터 진입 장벽이자 해줌의 보고”라고 소개했다. 분산된 재생에너지 자원을 하나의 발전소처럼 통합 관리하는 VPP(가상발전소) 시장에서 실전 노하우(빅데이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인터뷰는 서울 송파구에 자리한 해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한쪽 벽면의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제주 앞바다 풍력과 호남 들판의 태양광 발전량 등 에너지 데이터가 인상적이었다.
Q 해줌은 일반인에겐 아직 낯선 기업인데요. 사명에도 여러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요. 첫째는 ‘해(태양)를 줌인한다’는 의미예요. 저희가 처음 만든 서비스가 햇빛지도였거든요. 특정 주소지에 태양광을 설치했을 때 얼마나 발전이 되고 수익이 얼마나 나는지 지도에서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서비스예요. 둘째는 ‘해를 드린다’는 의미고, 셋째는 말 그대로 ‘서비스를 잘해드린다’는 뜻이죠. 지도 서비스로 시작해 현재 전력중개사업(VPP)까지 진행 중이거든요.
Q 해줌의 미션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재생에너지를 최대 전력원으로.’ 이게 저희 미션입니다. 물론 재생에너지는 언젠가 최대 전력원이 될 겁니다. 다만 시간이 걸리겠죠. 저희가 하는 일은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에요. 두 가지 방향인데, 하나는 구독형, PPA(전력구매계약) 모델로 초기 비용 부담 없이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합니다. 보급 촉진이죠. 또 하나는 재생에너지의 약점인 간헐성과 변동성을 VPP 기술로 극복하고 있어요. 이 두 가지가 선순환을 이루면 에너지 전환 속도가 달라집니다.
Q 국내 VPP 1호, 온사이트 PPA 시공 1호, 태양광 대여사업 1위 등 최초와 최고의 기록이 유독 많습니다.
A 기존 에너지 기업과 해줌은 근본적으로 DNA가 다릅니다. 대기업은 대형 발전소 중심의 자본 집약적인 사업 구조를 갖고 있어요. 반면 저희의 타깃 시장은 소규모 분산 발전소의 보급과 그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죠. 대기업들이 태양광 대여사업에 대거 진출했다가 1년 만에 빠져나온 이유도 규모와 수익 등 DNA가 맞지 않아서예요. 우선 많은 인원이 투입되거든요. 저희는 4000~5000개의 발전소를 직원 2명이 원격으로 관리합니다. 처음부터 자체 개발한 시스템이 지금의 해줌을 만들었어요. 또 에너지 시장에선 퍼스트무버가 중요합니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정확도가 높아지고 시장 인지도 또한 올라가죠. 선점 효과가 복리처럼 작동하는 시장이에요. 지난 10년간 1만 개 이상의 발전소에서 얻은 기상·발전량 데이터는 경쟁사가 단기간 복제할 수 없는 저희만의 해자(垓字)지요.
Q 태양광 대여사업은 이전 정부 때 사실상 중단됐다고.
A 대여사업은 저희가 7~8년간 운영하며 점유율 1위를 유지했던 핵심 사업이었어요. 단독주택의 경우 이전 전기요금이 10만원이라면 태양광 설치 후 2만원 수준으로 줄어들거든요. 소비자 입장에선 편익이 명확한 서비스죠. 하지만 당시 해당 사업 예산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미국이나 호주에선 태양광 대여사업이 재생에너지 보급의 핵심 수단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아쉬운 부분이죠. 그래서 당시 사업 방향을 민간 B2B 시장으로 피봇했어요. 보조금 없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직접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온사이트 PPA 모델이에요. 다행히 이러한 사업 구조 전환이 해줌을 더 탄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부 정책 의존도가 낮아졌고, RE100이라는 강력한 민간 수요와 연결됐으니까요. 다행히 현 정부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이어가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Q 해줌은 태양광·풍력 발전량 예측 1위(AAA 등급 특허)의 기술력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예측 정확도가 VPP 수익성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습니까.
A 우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어요. 현재 한국전력거래소(KPX)의 정산금 체계에선 예측 오차율이 낮을수록 더 높은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데, 저희는 자체 VPP 플랫폼인 ‘해줌V’를 통해 2024년 10월부터 2025년 3월까지 6개월 연속으로 풍력·태양광 혼합자원 부문 전국 최소 오차율을 기록했어요. 예측 정확도가 고객에게 분배하는 수익과 직결됩니다. 또 페널티를 방어할 수 있어요. 올 하반기에 전국으로 확대될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에선 예측 오차가 임밸런스 페널티라는 금전적 손실로 이어집니다. KPX가 타깃 출력값을 제시하면 저희는 전날 1시간 단위로 입찰하고, 실시간으로 구름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보면서 변경 입찰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측 오차가 작을수록 페널티가 적고 수익이 많아지죠.
Q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해줌만의 차별점이라면.
A 현재 1GW 이상의 자원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저희까지 세 곳에 불과합니다. 스타트업 중 1GW를 넘긴 곳은 해줌이 유일하죠. 차별점은 자체 솔루션 여부예요. 해줌은 알고리즘부터 예측 엔진, 실시간 제어 시스템까지 전부 자체 개발합니다. VPP 관련 개발 인력만 20명, 데이터 사이언스 포함해 30명 수준이죠. 또 하나는 앞서도 언급한 데이터 볼륨이에요. 태양광 대여사업 사이트가 4500~5000여 개에 달하고, 지난 10년간 쌓인 장기 데이터는 경쟁사가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수준이죠. 이 발전소들이 센서 역할도 합니다. 인근 발전소의 발전량을 비교해 이상 감지 알람을 자동으로 발송하는 서비스인데, 이건 경쟁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Q 1GW라는 숫자의 의미가 특별해 보이는데요.
A 원자력 발전소 1기의 발전 용량이 보통 1GW 정도예요. 저희가 현재 관리하는 VPP 용량이 1GW를 조금 넘습니다. 물론 원자력은 24시간 동안 돌고 태양광은 낮 시간대만 발전하니 이용률은 다르죠. 하지만 전기 수요가 집중되는 피크 시간대의 기여나 계통 안정화 측면에선 원자력 1기와 견줄 수 있는 규모예요. 분산된 수만 개의 소규모 자원이 하나의 거대한 발전소처럼 작동하는 게 바로 VPP의 핵심입니다.
Q 대기업들의 RE100 이행을 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A 하나는 패러다임 전환이에요. 초기에는 녹색 프리미엄(전기요금에 추가 요금을 내고 RE100 인증서를 구매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탄소배출권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해요. 전기요금 절감 효과도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PPA나 자가 태양광 같은 직접적인 감축 수단으로 이동하는 추세죠. 재생에너지 공급량이 부족하고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언제 계약하는 게 득인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운영 중인 RE100 관리 플랫폼 ‘해줌R’을 활용해 10~20년 장기 고정가격 PPA 계약으로 가격 리스크를 줄이려는 수요도 늘고 있어요. 이미 본사뿐 아니라 협력사들까지 RE100 이행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라 최근엔 대기업 1차 벤더들의 관련 문의도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Q GS에너지 등 대기업과 손잡은 방식이 단순 투자 유치와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A 저희 2대 주주가 GS에너지인데, 공동으로 투자법인을 만들었어요. 기업이 부지를 제공하면, 투자법인이 태양광 설비에 투자하고 해줌이 시공과 운영을 맡게 됩니다. 기업 입장에선 좀 더 저렴한 수준의 재생에너지를 공급받게 되죠. 초기 투자도 없고 RE100도 달성되고 탄소배출권도 확보됩니다. 일석삼조 모델이랄까요.
Q 중소 기업들도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까.
A 영농형 태양광인 햇빛소득마을 모델도 있습니다. 최근 MOU를 체결해 지역 주민의 실질적인 소득 창출로 연결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에너지 모델을 추진 중이에요. 중소기업과 건물 신축주들을 위한 제로에너지빌딩(단열 성능을 높이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건축물)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재생에너지 규제 시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고객층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Q 상장을 준비 중인데, 구체적인 일정은.
A 지난해에 주관사를 선정하고 기초 작업을 마쳤어요. 올 상반기 실적을 기반으로 지정 감사를 진행하고, 하반기에 예비 심사를 청구해 내년 상반기쯤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도 도입 시점과 연동해 준비 중이라 다소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Q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매출에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A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는 그동안 전력시장 외에서 거래해왔던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을 전력시장 내로 편입하는 거예요. 원자력과 석탄 화력, 가스 발전 등 자원들이 거래해온 하루 전 시장에서 재생에너지도 입찰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제주도에서 시범 도입 중인데, 연내 전국으로 확대되면 지난해 259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 100%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Q 상장 이후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A 세 가지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첫째는 플랫폼 투자예요. 공급자(발전소)와 수요자(기업·가정)를 직접 연결하는 에너지 거래 플랫폼을 구축할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토스가 금융 서비스를 통합한 것처럼, 해줌 플랫폼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거래할 수 있는 ‘에너지 토스’를 만드는 게 목표죠. 둘째는 에너지 자산 확보예요. 지금은 에어비앤비처럼 외부 발전소를 가져와 운영하고 있는데, 직접 태양광 발전소와 ESS에 투자해 자산을 자체 보유하는 방향으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셋째는 해외 진출이에요. 독일에 법인을 두고 있다가 최근 정리했는데, 유럽·북미·동남아를 모두 검토한 결과, 해줌과 가장 잘 맞는 시장은 동남아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급격한 산업화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전기차나 전기 오토바이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전기 수요도 늘고 있어요. 또 섬이 많아서 소규모 VPP에 대한 수요가 높습니다. 사업적으로는 동남아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공장들의 RE100 수요도 있어요. 현지 업체보다 한국 업체가 해야 신뢰한다는 니즈도 있더군요. 현재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현지 에너지, 건설 기업들과 협력 구조를 마련 중입니다.
Q 현재 VPP 활성화 협의회 의장으로도 활동 중인데, 10년 후 한국의 전력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A 솔직히 내년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주식시장보다 심한 상황이에요.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앞으로 짧으면 3년, 길면 5년이 한국 전력시장의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 거예요. 한전 중심의 독과점 시장이 분산 에너지 시장으로 재편되는 변곡점이죠. 그 중심에 해줌이 서 있습니다(웃음). 아마도 10년 후에는 대부분 전기차를 타고 있을 텐데, 그건 모두 배터리를 들고 다닌다는 의미예요. V2G(Vehicle-to-Grid, 전기차, 전력망 연계) 기술이 보편화되면 일반 소비자도 에너지 생산자이자 거래자가 됩니다. 저희가 꿈꾸는 건 토스가 금융 서비스를 한 플랫폼에 통합한 것처럼 내가 생산한 전기를 관리, 거래하고 수익을 내는 ‘에너지 자산화 플랫폼’입니다. 누구나 프로슈머(Prosumer, 생산+소비자)가 되는 세상, 해줌은 그 인프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안재형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