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우주 산업의 패러다임이 위성에서 생성된 데이터의 실시간 가공과 분석으로 이동하고 있다. 과거의 위성이 지상의 명령을 수행하는 수동적인 ‘관측 도구’였다면, 현대의 위성은 스스로 판단하고 최적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지능형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한국 스타트업 텔레픽스(TelePIX)는 우주의 눈(고성능 카메라)과 뇌(AI 프로세서)를 동시에 설계하는 기업이다. 여타 위성 기업이 위성 사진을 판매하는 데 집중했다면, 텔레픽스는 위성 사진을 통해 고객들이 요구하는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 우주 부품 시장은 우주 환경 검증이라는 명목하에 동일한 사양의 부품도 가격이 10배에서 100배까지 치솟았다. 텔레픽스는 핵심 모듈과 광학계를 직접 설계·제작하며 가격경쟁력과 고객 맞춤형 제작 능력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헝가리 국가 위성 사업에 수천만 달러 규모의 고해상도 카메라 시스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금융시장에서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조성익 대표는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과의 POC(개념 검증)에서 위성 영상을 기반으로 평균 90~95%의 정확도로 원자재 물동량 분석 리포트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고객사가 요청한 80%의 기준치를 상회한 수치다.
조 대표는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1분이라도 투자 포지션을 빨리 잡길 원하는 트레이더들에게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라며, 위성 데이터가 트레이더들에게 1%의 수익률 격차를 만들어내는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위성 데이터 처리의 고질적인 난제는 지상국과의 협소한 통신 대역폭이다. 통상 위성이 지상국과 교신할 수 있는 시간은 회당 5분 내외로 극히 제한적이다. 텔레픽스는이 5분이라는 ‘골든 타임’ 내에 1GB에 달하는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전송하기 위해 온보드 AI 프로세서인 ‘테트라플렉스(TetraPLEX)’를 독자 개발했다. 기존 위성이 6분 이상 소요하던 이미지 전처리 시간을 11초로 단축하며 약 35배의 속도 향상을 이뤄냈다.
2024년 8월, 텔레픽스는 타 기업의 큐브 위성에 테트라플렉스를 탑재해 우주 궤도 내 AI 모델 추론을 성공시키며 기술적 실체를 입증했다. 이 성과는 특히 20W 미만의 제한된 전력과 영하 100℃에서 영상 100℃를 오가는 가혹한 열 환경, 그리고 강력한 우주 방사선 노출이라는 악조건을 직접 설계한 펌웨어와 소프트웨어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기술적 권위를 갖는다.
이러한 실시간 처리 능력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강력한 효용을 발휘한다. 2024년 8월, 대한민국 남해안의 적조 발생 당시 텔레픽스는 위성 데이터를 신속히 분석하여 어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우주 AI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실전적 도구임을 증명한 사례다.
텔레픽스는 2025년 1월 스페이스X(SpaceX) 라이드셰어 미션을 통해 자체 위성인 ‘블루본(Bluebon)’을 발사했다. 여기서 라이드셰어 미션이란 여러 위성을 한 로켓이 실어 발사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어서 6월에는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이 심우주를 항해할 때 카메라로 별자리 패턴을 분석해 현재 우주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내비게이션 장비 ‘디나브(DINAV)’를 발사했다.
당시 블루본에 테트라플렉스를 탑재, 방대한 데이터를 지상으로 보내는 대신 우주공간에서 AI가 직접 초고속으로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남해안 적조 현상 발생 시 넓은 해상에서 피해 범위를 빠르게 파악해 어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발사된 위성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진정한 군집 위성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수백 기의 위성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해야 하는 군집 위성 시대에, 초기 발사 모델과 최신 모델의 소프트웨어 환경을 동기화하는 능력은 위성의 수명 주기와 자산 가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실패 시 위성 기능 상실이라는 리스크에도, 텔레픽스는 위성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성공시키며 위성 운영의 패러다임을 ‘고정형 하드웨어’에서 ‘진화형 소프트웨어’로 재정의했다.
텔레픽스의 최종 지향점은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우주 데이터를 대중화하는 것이다. 이들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위성 특화 생성형 AI 챗봇 ‘샛챗(satCHAT)’은 우주에서 인공위성이 수집한 방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초거대언어모델(LLM)로 학습시킨 SaaS 기반 구독형 서비스다. 사용자는 생성형 AI에 질문하듯 최신 위성 데이터를 호출하고 분석 리포트를 생성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대시보드를 넘어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융합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지능형 솔루션이다.
[박수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