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 “중소기업이 완생(完生)할 수 있는 두 집은 인력과 마케팅입니다”
입력 : 2015.05.08 14:31:25
“대학교수가 이사장으로 온다니까 노조에서 두 가지를 걱정했더군요. 하나는 조직장악력이고 다른 하나는 대외교섭력이었어요. 사실 저도 이 두 가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웃음) 하지만 결국 공공이건 민간이건 그 존재가치는 고객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중소기업 발전에 기여하고 성과를 내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원시원했다. 지난 1월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창립 이래 최초의 민간 출신 수장이 된 임채운 이사장은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는 듯 거침없이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풀어냈다.
23년간 대학 강단에 서며 유통·마케팅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은 그는 그동안 한국유통학회장, 한국중소기업학회장을 역임했고, 동반성장위원회 위원과 중소기업 적합업종 공익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이력에 학계에선 “그보다 중소기업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다”고 말할 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다. 과연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국내 중소기업의 문제점과 가능성은 무엇일까. 임 이사장은 “밖에서 훈수 두다 선수로 뛰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사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새로운 세계, 현장파악에 주력많이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중진공 본부가 지난해 7월에 경남 진주로 이전했습니다. 일주일에 2~3일은 진주에서 업무를 보고 회의 일정이 있을 때 서울로 올라오죠. 대체로 월, 화, 수는 진주에 있고 목, 금은 서울에 있습니다.
중진공 이사장에 취임하신 지 석 달 남짓 지났습니다. 대학 강단과는 많이 다를 텐데요.
새로운 세계죠. 책임지는 입장이 되니 어깨가 무겁습니다. 경영학 교수였을 땐 훈수 두는 입장이었잖아요.(웃음) 이젠 선수로 뛰고 있습니다.
밖에선 느끼지 못했던 애로사항은 무엇입니까.
중진공은 정책기관이라기보다 집행기관이거든요.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보다 기존의 정책을 수행하고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 점이 제약이기도 합니다.
정책에는 다양한 관점의 이해관계자들이 있는데요. 조율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내부 혁신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입니다. 현업을 가장 잘 알고 있는 10명의 팀장이 독수리팀을 구성하고 있어요. TF팀이죠. 중진공의 조직 구조나 업무방식, 성과평가나 인사에 대한 자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취임하고 보니 칸막이가 많더군요. 그런 이유로 연계 지원의 경우 협업이 부족했습니다. 칸막이의 딜레마는 전문성과 통합성에 있습니다. 수평적인 협업이나 수직적인 연계가 부족하죠. 그런 부분은 혁신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사장이 새로 왔다고 ‘임채운표 사업’ 운운하면 안 되죠. 물론 그러한 면들이 중진공을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이사장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모든 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결정하는 역피라미드 조직이 돼야 합니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문제군요.
피플과 퍼포먼스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사람이죠. 중진공은 지금까지 정책을 잘 집행하는 기관으로 소명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수동적이죠. 시키는 일은 해내지만 능동적이지 못합니다. 그건 또 퍼포먼스 문제죠. 중소기업의 꿈을 성공의 꿈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직원 모두가 노력 중입니다.
원하는 방향이 있을 법 한데요.
제가 원하는 중진공의 모습은 이사장으로 누가 오든 자생력을 갖고 중소기업을 도와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죠. 중소기업의 자생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중진공도 자생력 강화가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안전판이자 성장판그렇다면 중소기업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중진공이 지금까지 어려운 중소기업에 ‘안전판’ 역할을 해왔어요. 여러 방면에서 중소기업을 진단하고 3조원에 달하는 직접 대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안전판에서 ‘성장판’으로 가야 합니다. 중소기업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정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한계기업과 조금만 도와줘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망기업입니다. 앞으론 한계기업뿐 아니라 유망기업을 해외로 데리고 나가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워내는 데도 역점을 두려고 합니다. 요즘 저희 건배구호가 안전판, 성장판입니다.(웃음)
중소기업의 안전판으로서 기업을 진단할 때 기준이 있다면.
여러 분야에 대한 진단과정을 거칩니다. 당연히 재무적인 상태를 살펴보죠. 부채 비율이라든가 기업주 자체의 신용도, 여기에 기술성 평가, 사업성 평가를 진행합니다. 물론 재무적으론 어렵죠. 기술이나 사업성 면에서 유망한 기업은 지원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재무적인 성과나 사업성이 모두 좋지 않으면 지원이 어렵죠. 결국은 예산이고 국민 세금이거든요. 또 자금지원이 진행됐는데 사업성과가 미약하면 중진공의 실적에 마이너스가 됩니다. 무조건 베푸는 건 결코 아닙니다.
히든챔피언이 화두가 되곤 합니다. 롤모델 국가는 역시 독일입니까.
궁극적인 롤모델이죠. 하지만 독일과 획일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독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우리처럼 갑을이 아니거든요. 히든챔피언의 규모도 이미 중견기업 수준이죠. 중진공의 역할은 그러한 히든챔피언 후보를 많이 만드는 데 있습니다.
국내 중소기업 중 눈여겨보시는 히든챔피언 후보가 있다면.
많습니다. 취임하고 여러 기업을 방문했는데, 하나같이 이런 기업이 있었나 싶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났어요. 진주·사천에 있는 토착기업 ‘세우’는 중장비에 사용되는 유압파이프를 제조하는데, 최근 관련 분야의 경기가 좋지 않아서 항공기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사천에 항공산단이 있고 한국우주항공산업(KAI)이 있거든요. 항공기는 파이프 덩어리라 할 만큼 파이프 수요가 많습니다. 지금 세우는 주문을 못 따라갈 만큼 호황입니다. 또 김해에 있는 ‘대원열판’은 열교환기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쉽게 말하면 에어컨 실외기죠. 대원열판은 조선소에 열교환기를 납품하고 있어요. 배에 들어가죠. 최근 조선경기가 좋지 않아서 해수를 담수로 처리하는 수처리기를 만들었는데, 기존에 해수를 담수로 만드는 기술은 비용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런데 이 기업의 수처리기는 비용이 5분의 1밖에 안됩니다. 매출이 약 200억원인 기업인데, 수처리기 한 대 가격이 20억원이에요. 지난해 개발해서 동해 포스코 발전소에 처음 납품했고 올해부터 중동에 수출한다고 합니다. 10대만 팔면 200억원이에요. 우리나라 지방에 이런 기업이 많습니다.
중소기업 간 과당경쟁의 돌파구는 수출결국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글로벌화가 관건이군요.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내수거든요. 수출 비중이 낮습니다. 산업재도 대부분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이니 그게 한계라는 겁니다. 내수에 갇혀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제로섬 게임입니다. 하나의 중소기업이 살면 다른 하나의 중소기업이 죽을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 간 과당경쟁이죠. 결국은 나가야 합니다. 우선은 수출도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도 글로벌 수준이 돼야죠. 경영도 글로벌 스타일에 맞춰야 합니다.
과거와 비교해 중소기업의 필요충분조건이 완전히 달라지는 셈입니다.
그렇죠. 그런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다면 충격이 됩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그런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세 가지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첫째, 구조적으로 대기업에 예속된 시장의 거래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둘째, 중소기업의 자생력 의지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자구노력이라든가 덧붙여 기관의 지원 등이 결합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결국은 글로벌화해야 합니다. 나가야죠. 과거 50여년간 대기업에 수출을 맡겼다면 이제 중소기업이 바통터치를 해야죠.
내수도 어려운데 해외라고 녹록한 건 아닐 텐데요.
물론이죠. 허허벌판에 나가서 싸워라 이런 건 아니라고 봐요. 대기업도 나가서 고전하는데 중소기업이 스스로의 힘으로만 나서는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진공을 비롯한 지원기관이 있는 것이죠.
중소기업의 자생력도 뒷받침돼야 하는 부분입니다.
고속성장기엔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기만 하면 팔렸어요. 대기업도 그렇지 않습니까. 1960~1970년대 정부가 정책적으로 자금도 제공하고 R&D, 세제혜택 등을 지원해 자생력이 생겼습니다. 중소기업도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자금과 기술로 발전했습니다. 사실 인력이나 마케팅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현 시기는 바뀌었죠. 사실 대기업 제품보다 훨씬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이 브랜드와 마케팅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중소기업이 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중소기업이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요소는 인력과 마케팅입니다. 자생력 강화를 위해선 당연히 인력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중소기업의 글로벌화에 앞서 선행돼야 할 조건을 꼽으신다면.
중진공과 코트라(KOTRA) 같은 중소기업 수출 지원 기관의 정책과 사업이 좁은 시장을 깊게 뜨도록 철저한 현지화를 도와줘야 하는데, 넓은 시장을 얕게 떠먹는 데만 치중했습니다.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과 바이어 상담회 개최 같은 일회성 지원으론 수익성 낮은 장돌뱅이만 양산하게 됩니다. 중국 시장을 예로 들면 현지 유통기업에 우리 중소기업 물건을 팔아주는 중계상(바이어)을 통해 중국 전역에 유통하는 방식보다 인구수는 500만~1000만명으로 비교적 적은 2~3선 도시라도 현지 유통망을 확보해 제품을 직접 납품하는 게 수익성이 훨씬 좋습니다. 중진공을 비롯한 중기 수출 지원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 기존의 일회성 지원을 과감하게 줄이고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에 적합한 지역은.
기술력이 강한 중소기업은 선진국 시장이 적합하지만, 대부분의 제조 중소기업에 적합한 시장은 우리보다 경제성장이나 산업의 발달이 조금 뒤진 곳이겠죠. 중국은 이제 우리보다 앞선 것 같고 동남아나 중동지역이 유망하다고 생각합니다.
홈런보다는 안타, 작은 성공에 만족해야눈여겨보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인을 꼽으신다면.
‘인터로조’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노시철 대표는 대부분의 콘택트렌즈 기업이 시력 교정용 렌즈만 제조하고 있을 때, 패션을 가미했어요. 그리곤 국내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을 겨냥했습니다. 이오테크닉스의 성규동 대표는 레이저 마커로 시작해 레이저 커터로 범위를 넓혔습니다. 오랫동안 연구를 거듭했는데, 반도체에 레이저 커터가 쓰이면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이 됐습니다. 형지의 최병오 회장도 동대문에서 장사꾼으로 시작해 브랜드를 만들었잖아요. 그 분은 당시만 해도 대기업만 하는 걸로 알았던 마케팅을 알았죠. 모두 훌륭한 기업인들입니다.
창업을 앞둔 청년들에게 조언하신다면.
창업은 곧 연습이죠. 미숙한 부분이 많은데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주커버그만을 얘기하죠. 그러한 성공 뒤에 실패 사례는 수백, 수천 개죠. 창업은 자기 노동뿐 아니라 자본에 인생을 거는 겁니다. 우선 취업을 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습니다. 가볍게 작은 성공에 만족하세요. 홈런보다 안타를 잘 때리는 게 중요해요. 처음부터 홈런타자는 없다는 걸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