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60달러 돌파, 원유 슈퍼사이클 올까… 경기 회복 기대감에 고공행진, 투자 리스크는 높아
류지민 기자
입력 : 2021.03.08 17:28:48
지난 2003~2004년 석유시장 슈퍼사이클을 예측해 유명해진 골드만삭스의 베테랑 애널리스트 제프리 커리는 최근 “코로나19 대책으로 나온 중산층과 저소득층 지원에 주력하는 경기부양은 원자재 수요를 크게 증가시킨다. 유가가 올해 배럴당 80달러대, 혹은 그 이상 수준에서 거래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05년 국제유가의 100달러 돌파 예상을 적중시켰던 석유 애널리스트 아르준 무르티도 “아직 슈퍼사이클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지만 유가가 크게 오르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원유 전문가들이 유가 상승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회복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오른 국제유가가 새로운 슈퍼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유가가 2014년 이후 최고치인 배럴당 100달러를 회복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물론 슈퍼사이클 진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유가가 당분간 현재의 강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 않다.
국제유가 상승세에 무게가 실리면서 유가 관련 상품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원유 선물 ETF를 비롯해 원유 인프라와 원유 관련 기업 투자, 원유 파생결합 상품 등이 주목을 받는다. 다만 원유 투자는 변동성이 크고 유가 움직임에 다양한 수급 요인이 얽혀 있어 리스크가 높은 투자로 분류된다. 향후 유가에 영향을 미칠 여러 변수와 효과적인 투자법에 대해 살펴봤다.
▶일본 지진·미국 한파에 급등
2월 1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전날보다 배럴당 1.8% (1.09달러) 오른 61.1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월 코로나19 쇼크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이후 약 1년 만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이다. 특히 올 들어 가파른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하반기 내내 배럴당 40달러 선에 머물던 유가는 1월 6일 50달러를 돌파했고, 2월 16일 배럴당 60달러를 넘었다. WTI 기준 올해 유가 상승률은 26%에 달한다.
최근 국제유가 상승의 배경에는 일본 지진과 미국 한파가 있다. 미국 석유 정보업체 플랫츠에 따르면 지난 2월 13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현지 최대 정유사 에네오스의 센다이 정제설비가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이 외에도 다수의 설비가 지진으로 인해 가동이 중단되거나 화재가 발생하면서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정유업계에서는 일일 약 124만 배럴의 공급이 난항을 빚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일본 전체 생산능력의 28%, 아시아 전체 생산능력의 4%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 텍사스에서 발생한 한파도 유가 상승 요인이다. 텍사스 지역은 미국 전체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의 각각 40%, 25%를 차지하며, 전체 정제 생산능력의 30%를 차지하는 북미 최대 정제설비 지역이다. 30년 만에 발생한 기록적인 한파는 원유 생산과 파이프라인 이동을 비롯해 정전에 따른 주요 정제시설 가동 중단 등 에너지 공급망 전반에 타격을 입혔다. 미국 원유 정제능력의 약 20%가 가동을 멈췄고 모티바, 엑손모빌 등 약 400만 배럴 규모의 정제설비가 가동을 중지했다.
동파된 설비가 복구된다면 원유 가격은 상승 이전 수준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지만, 공급 측면에서 유가 강세를 지지하는 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은 2월 기준 2018년 10월 대비 일평균 712만5000배럴을 감산하면서 유가 상승 압력을 더하고 있다.
이진호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미국 셰일업체들이 생산을 재개할 만큼 유가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전통 에너지 업체들의 신규 투자를 제한하고 있고, 신규 유정이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량 증가 속도가 빠르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생산량 증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OPEC+가 적극적인 증산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백신 보급에 펜트업 수요 회복
55~65달러 ‘스위트 스폿’ 유지 전망도
유가 방향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수요 측면이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펜트업(pent-up, 억눌린) 수요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선진국 대비 코로나19 봉쇄의 강도가 낮고 경제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신흥 아시아의 원유 수요가 빠르게 개선되는 중이다. 선진국의 경우 백신 보급에 따라 올 2분기 중 집단면역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진종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유 수요 회복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선진국 중심의 추세적 경기회복이 시작되면 원유 수요가 이에 따라 연중 회복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세계 석유 수요량은 일일 약 1억 배럴 수준이었다가 지난해 약 9000만 배럴로 떨어졌다. 코로나19 백신 상용화로 장거리 항공 여행이 대부분 회복되는 2022년까지는 석유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행정부의 코로나19 경기부양책 도입이 임박하며 소비 회복세가 큰 폭으로 반등하는 등 미국 경제가 청신호를 보이는 것도 유가 강세를 떠받치는 요인이다.
황현수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유의 쓰임새는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신흥국 대비 차량 보급률이 높은 선진국의 원유 수요 개선이 중요하다. 올 하반기 중에는 선진국 중심의 면역체계 형성에 기인한 원유 수요 개선 가능성과 바이든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 가시화 등이 유가 상승에 일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 이상으로 큰 폭의 추가 상승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통상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에 근접하면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빈번히 발생해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OPEC이 유가의 급등보다는 현 수준의 강보합세를 유지할 정도의 가격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배럴당 55~65달러를 유가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고 부르는데, 유가가 55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생산이 줄고 65달러 위로 올라가면 수요가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다.
김희진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유가 강세 기조가 나타나겠지만 하반기 글로벌 수요 회복 여부에 따라 조정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산유국의 여유생산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과거 2005~2008년 슈퍼사이클과는 차별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원유 ETF·ETN ‘고난이도 투자’
롤오버 비용·괴리율 꼭 살펴야
개인투자자의 경우 유가 상승이 예상된다고 해서 기름을 현물로 직접 사서 쟁여 놓는 식의 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유 투자는 일반적으로 원유 ETF(상장지수펀드)나 ETN(상장지수증권), DLS(파생결합증권) 등 파생상품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원유 파생상품 투자는 가격의 괴리와 선물 롤오버 비용을 고려해야 하며, 레버리지 투자 시에는 변동성도 감안해야 하는 상당히 난이도 높은 투자로 꼽힌다. 물론 변동성이 큰 만큼 방향만 잘 잡으면 높은 수익을 낼 수도 있다.
원유에 투자하는 파생상품은 크게 ETF와 ETN 두 가지 상품으로 나뉜다. ETP는 이 두 가지를 통칭하는 용어로, 원자재나 변동성 등 실물에 직접 투자하기 어려운 상품일수록 ETN의 형태로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원유 ETP는 통상 WTI 선물을 활용해 원유 가격을 추종하는데, ETF는 원유 선물에 직접 투자하는 반면, ETN은 선물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원유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지수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국내에도 원유 ETP가 상장돼 있지만 미국 증시에 상장된 ETP가 종류도 훨씬 다양하고 유동성도 크다.
2월 14일 일본 후쿠시마현 니혼마쓰시의 한 자동차 경주도로가 산사태로 막혀 있다. 전날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강한 지진이 발생해 피해가 속출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베팅하는 국내 상장 ETF에는 ‘미래에셋TIGER원유선물’ ‘삼성WTI원유’ ‘삼성KODEX WTI원유선물’ 등이 있다. 대부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WTI 원유 선물 가격으로 산출되는 기초지수(S&P GSCI Crude Oil Index Excess Return)를 추종한다. ETN 상품에는 WTI 선물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신한WTI원유 선물’ ‘대신WTI원유선물’을 비롯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신한 브렌트원유선물’, 두 원유 가격을 혼합해 따르는 ‘미래에셋 원유선물혼합’ 등이 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ETF에는 USO(United States Oil Fund LP), DBO(Invesco DB Oil Fund), USL(United States 12 Month Oil Fund LP) 등이 WTI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상품들이다.
원유 ETP 투자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만기가 있는 선물의 특성상 추종하는 기초지수에 따라 선물 롤오버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USO와 DBO, KODEX WTI원유선물(H), 신한WTI원유선물 ETN(H) 등이 추종하는 지수는 원유 선물의 최근월물에 투자하며, 만기가 도래하기 전 4~5일에 걸쳐 차근월물로 롤오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방식은 유가의 움직임을 잘 반영할 수 있으나, 유가 급락 시 만기가 긴 원유 선물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되는 콘탱고(Contango) 현상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롤오버 비용이 커진다.
원유 ETP 투자 시에는 괴리율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괴리율은 시장가격과 실제가치의 차이를 나타내는 투자위험 지표로, 시장가격이 고평가되거나 저평가되는 정도에 따라 괴리율이 커지거나 작아진다. 괴리율이 크다는 것은 매매 가격이 기초자산보다 고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파는 사람은 이득이지만, 사는 사람은 유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이상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괴리율이 줄어든 후에 매입하는 것이 좋다.
▶장기투자는 원유기업 ETF
국내 정유주도 실적 개선 기대
비용에 민감하고 보다 장기투자를 고려하는 투자자라면 유가와 상관관계가 높은 에너지 섹터 주식이나 원유 생산기업 주식으로 구성된 미국 상장 ETF에 투자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주식에 투자하는 ETF는 WTI 가격을 직접 추종하는 ETP와 비교해 단기 유가 상승 시 수익률은 낮을 수 있으나 저유가가 장기간 지속된 후 유가 반등 시 롤오버 비용 없이 유가 상승에 동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IEO(iShares US Oil & Gas E&P ETF)와 XOP(SPDR S&P Oil & Gas E&P ETF)는 미국 셰일과 석유개발(E&P) 업종에 투자하는 대표적 ETF다. XOP는 미국의 중견 에너지기업들로 이뤄진 ETF로 유가 반등 시 큰 수익이 기대되지만 그만큼 변동성이 커 파산의 위험도 있다. 반면 IEO는 미국에서 가장 큰 석유 시추업체인 Anadarko Petroleum과 EOG Resources를 비롯한 대기업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석유 시추 관련 장비업종 지수를 추종하는 ETF로 OIH(VanEck Vectors Oil Services ETF), XES(Oil&Gas Equipment&Services)도 있다. 국내에 상장된 ETF 중에는 ‘KBSTAR미국S&P원유생산기업’이 탐사·굴착·시추 등 미국 원유생산기업의 주가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국내 정유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이다. 정유사는 유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을 남길 수 있어 대체로 실적이 유가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5866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흑자전환에 성공할 전망이다. S-Oil은 7609억원으로 흑자전환이, GS는 1조689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74% 영업이익 증가가 예상된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중 신규가동·폐쇄를 감안한 올해 정유업종의 공급 부족분은 532만 배럴로, 2017~2018년 이후 수요 우위 기반의 견고한 수급이 예상된다. 올해 1분기부터 경기회복이 본격화되는 만큼 영업환경이 호전되는 정유업종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